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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은 죽었다 ㅣ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2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내 기억엔 미스터리나 추리같은 장르 소설을 단편으로 읽어본 적이 없는 듯하다.
모르면 겁이 없다고, 책을 읽기 전에는 가볍게 볼 수 있는 단편 소설이라 여겼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것도 엄청나게...
일본 문학을 접하게 되면 가끔 경험하는 어려움이 있는데 바로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헷갈린다는 것이다.
이름 뿐만 아니라 성별마저도 긴가민가 할 때도 있다.
덕분에 책의 내용보다는 오히려 남자로 알았다가 나중에 '그녀'라는 단어로 여자임을 알았을 때 느끼는 반전이 더 충격적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애로사항으로 날 참 많이도 괴롭혔다.
그렇지 않아도 어렵고 헷갈리는 일본인의 이름인데 총 아홉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각각 다르니 원...
메모라도 하면서 책을 읽지 않은 걸 후회했다.
『의뢰인은 죽었다』는 이런 엉뚱한 것에서 내게 어려움을 준 책이기도 하지만 또 단 한 권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운을 남긴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주인공인 우리의 여탐정 '하무라 아키라'가 어떤 한 해의 겨울을 시작으로 다시 두 번 더 겨울을 맞이하기까지의 탐정 생활을 총 아홉 편의 이야기로 담고 있다.
나는 이 이야기들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들-그것이 꼭 '범인'이 아니더라도 각 아홉 편의 단편에 모두 등장하는 '하무라'의 탐정으로서의 능력이나 의뢰인을 포함한 각 등장 인물들의 내면을 읽어내는 능력 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본인조차 알지 못하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이야기를 짧은 이야기들 속에서 풀어나가는 작가의 능력에 더 놀랐다.
미스터리 소설에서 오랜만에 접한 듯한, 마지막에 툭 내던지는 충격적인 한마디와 말 줄임표는 왠지 조금 복고적인 인상을 풍기기도 하고 과거의 충격들을 되살려내는 듯도 했다. 하지만 그만큼 여운을 길게 끌 수 있는 장치이기도 했다.
책을 읽을 때 본인의 몸 상태나 정신적인 상태는 그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내가 이 책을 읽을 때는 정신적으로 좀 지쳐있던 상태였기에 거의 일주일을 이 책을 붙들고 있었다.
진도도 잘 나가지 않고 짧은 단편 하나도 한 번에 보지 못하고 쉬기를 몇 번.
그러니 안그래도 헷갈리는 인물들이 제대로 뇌리에 박힐 리가 있나...
그래서 사실 지금 이렇게 짤막한 서평을 쓰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죄스러운 마음이 있다.
제대로 접하고 또 느껴보지도 못하고 그냥 내 생각을 무심히 던지는 건 아닐까 싶어서...
하지만 그렇다고 책을 언제나 내 컨디션에 따라 골라볼 수는 없는 법.
이 책을 읽고 느낀 지금의 생각들도 쉽게 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나중에 다시 이 책을 읽었을 때 느낄 생각들과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할테고...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이 아홉편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단편이기에 다른 책들보다 느끼는 어려움도 컸지만 단편이기에 다시 또 책을 펴보기에 부담이 덜할 것 같다.
과거에 출간된『네 탓이야』와 출간 예정인『나쁜 토끼』, 여탐정 '하무라 아키라' 가 등장하는 다른 책들도 무척 궁금하다.
미스터리 소설을 단편으로 만나긴 처음이었는데 이 정도면 그 첫 만남이 성공적이었다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