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의 마지막 여름
마이클 셰이본 지음, 이선혜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사람은 누구나 찬란한 청춘을 기대하고 또 찬란했던 청춘의 시절을 가슴 속 어느 곳에 담아두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찬란함'이라는 단어였다.

그 '찬란함'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함께 떠오르는 단어는 '청춘'.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내고 있는 이 '여름'의 시간은 그 '청춘'과는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시간이다.

「피츠버그의 마지막 여름」은 그 찬란했던 청춘의 여름을 고통스럽지만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다.

 

'청춘'이라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던 주인공 아트는 함께 소꼽장난을 하며 쉽게 친해지는 어린 아이들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같은 이름을 가진 아서 그리고 그의 친구 클리블랜드, 제인과 친구가 된다.

아트는 그들과 우정을 나누면서 플록스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고 그녀에 대한 마음과 아서에 대한 마음으로 갈등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차츰 자아를 찾아나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의 나를 생각해보았다.

아트처럼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 나의 모습은 어땠을까.

과연 내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시간을 갖긴 했을까.

나 스스로도 생각하기 꺼려하며 가슴에 품었던 것들을 다른 어느 누구와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긴 했을까.

안타깝게도 답은 '아니다'였다.

난 그때 이 사회가 더욱 어렵게 만든 취업과 진로라는 문제를 가지고 씨름해야했고 사랑도 우정도 그리고 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도 모두 그 시간 속에서 생략해버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트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함께 희열을 느끼기보다 어느 시간보다 찬란하고 아름다웠을 그 시절을 그냥 그렇게, 어느 '무엇'도 없이 보내왔다는 사실에 괴로웠다.

 

내가 십대이던 시절에 이십대의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어느 누구보다 뜨거운 사랑을 하고,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를 만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만 들어줄 소중한 친구를 만나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내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십대 초반의 나는 너무도 허무하게 아름다운 그 시간들을 흘려보내고 말았다.

솔직히 난 지금도 내 자신에 대해 스스로 어떤 의식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서는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행동하고 있는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내가 남들 대하듯 나를, 스스로를, 그냥 그렇게 무심히 생각하고 방치하며 살아가는건 아닐까 조바심이 난다.

 

아쉽게도 내가 보내온 지금까지의 '청춘'은, 그 단어와 어울릴만큼의 '찬란함'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을 지금이라도 만났다는 사실이 다행이다 싶다.

지금 내가 청춘을 완전히 벗어나 살고 있는 건 아니니까.

뜨거운 여름날과도 같은 이 찬란한 청춘을 아직 살아가고 있으니까...

시간이 조금 흘러 다시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는 주인공 아트의 청춘을 통해 내 청춘을 되돌아보며 미소지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

'찬란함'이라는 단어와 너무도 잘 어울리도록 남은 청춘을 살아가고싶은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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