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영어'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알러지 반응을 보여왔었다. 비싼 토익 시험을 매달 치르던 정성에도 불구하고 그에 보답할 생각을 않던 토익 점수가 미워서이기도 했지만 어쩐지 어린 시절부터 '영어'는 나랑 좀 안 맞는 언어라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그래도 어떻게든 이런 뜻하지 않은 반응에 대항하여 글로벌 시대에 발 맞워 영어와 가까이 해보려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굴욕 영어에서 탈출하는 방법들을 서술한 책들까지 찾아보면서 말이다. 그러다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영어 산책'이라니... 영어를 접하고 그에 가까이 다가가는 게 심심해 바람을 쐬러 동네를 슬슬 산책하는 것 만큼이나 쉬우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멋진 제목 하나에 이끌려 난 또 영어에 한발짝 더 다가서기 위한 노력을 시도했다. '빌 브라이슨'이라는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다. 알아보니 '빌 브라이슨 발칙한'시리즈가 여러 권이 있던데 난 어쩌다 이 작가를 이제야 만났단 말인가. 첫 장을 시작으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영국과 결별하고 지금의 거대한 국가가 되기까지의 과정들은 그 자체로 놀라웠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에 관한 부분들을 읽고는 어디가서 아는 척 하다 창피를 당하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평소 잘못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 하나 둘 제대로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예전의 나는, 지금 내가 살고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역사 지식도 많이 부족한지라 다른 나라의 역사까지 들춰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빌 브라이슨' 이라는 작가를 만나게 된 후로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외국의 역사에 대한 관심도 더 높아졌다. 이 책을 통해 '영어'뿐 아니라 '역사'에 대한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가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고, 자신의 머리 속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그 지식들을 재미있고 유쾌하게 타인에게 풀어나가는 실력에 또 놀라고, 이 두껍지만 무겁지 않은 책 한 권을 읽으며 놀라기를 몇 번인지...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솔직히 기대와는 다른 측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라고 하더니 기대했던 엉뚱함과 발랄함은 어디가고 약간 지루해지려던 찰나였다. 그러나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빌 브라이슨의 매력이 가슴으로, 머리로 전해졌다. 나로서는 도저히 어떻게 읽어야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드는 영어 단어들, 아니 내가 느끼기에 그것은 단어가 아니라 영어 스펠링을 그냥 쭉 모아 놓은 듯한 것이었다. 그 단어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사라지기도 하며 오늘날 사용하는, 뜻은 몰라도 내가 읽을 수는 있는 영어 단어가 되었을까 생각하니 그 단어에서도 세월이, 역사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 신선했다. 이 책을 읽으며 영어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흥미가 생기는 것은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얼굴이 좀 붉어지기도 했다. 내 나라의 역사와 언어도 잘 알지 못하면서 남의 나라의 언어와 역사에 대해 알아가려니 스스로가 좀 부끄러워서였다. 우리나라에도 빌 브라이슨과 같은 작가가 있어 우리의 아름다운 한글에 대한 역사와 또 우리나라의 역사를 서술한 책을 만들어줬음...싶기도 했다. 어쩜 이런 책들은 이미 시중에 많이 나와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동안 너무 관심이 없던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을 만나 그동안 거부 반응을 보여왔던 영어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또 스스로 반성까지 하게 되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단 사실이 다행이다. 빌 브라이슨의 매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기뻤고 아직 읽지 못한 그의 책이 많다는 사실이 기쁘다. 영어에 한발짝 다가서려는 내 시도가 헛일이 아니었음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