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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엘리베이터 ㅣ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만약 내가 엘리베이터 안에 갇히게 된다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상상은 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갇히게 된다면 모를까 잠시라도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그 좁은 공간 안에서 함께 있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정말 끔찍하다.
『 악몽의 엘리베이터』는 이 끔직한 소재를 이용해 만든 '기노시타 한타'의 악몽 3부작 중 첫 작품이다. 작가의 처녀작에 흔한 소재라면 흔한 소재라 할 수 있는 『악몽의 엘리베이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이한 공포를 느끼게 해준다.
처음 악몽을 겪게 되는 사람은 오가와.
오가와는 다니는 직장의 아르바이트생을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길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후 엘리베이터 안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상한 사람들과 조우한다.
엘리베이터를 탄 이유도 가지각색.
자살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는 까만 옷을 입은 젊은 여자, 도둑질을 하러 아파트에 오게 되었다는 지저분한 수염에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 그리고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이라는 오타쿠로 보이는 젊은 남자...
좋지 않은 분위기를 마구 풍기는 그들에게서 얼른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설상가상 엘리베이터는 운행이 멈추었다.
아무리 비상벨을 눌러도, 살려달라는 구조의 요청에도, 누구 하나 오는 사람 없고 엘리베이터는 전혀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특히나 오가와의 부인은 곧 자신의 아이를 낳게 생겼다는데…….
『악몽의 엘리베이터』는 이렇게 '오가와의 악몽'을 시작으로 '마키의 악몽', '사부로의 악몽' 이 세 가지 악몽으로 나뉘어 있다.
같은 상황이 서로 다른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되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혹시나...했던 일들이 사실이 되고 또 그 사실에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기분,
결말을 알았나 싶으니 또 다른 결말이 존재한 느낌,
이처럼 반전의 반전이 거듭되는 이야기는 소설의 재미를 한껏 높여준다.
작가는 흔한 소재를 가지고 특이한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악몽을 꾸는 듯한 공포와 동시에 그 속에서 웃음까지 전해준다.
코믹 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다는 책 소개에 실망스럽지 않았다.
선혈이 낭자한 표지와 함께 책 속에 잠깐씩 등장하는 일러스트는 책의 느낌과 아주 잘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같은 상황이 세 명의 악몽으로 전달되다보니 이야기하는 사람은 달라도 중복되는 내용이 있을 수밖에 없어 장르 소설을 볼 때 계속해서 다른 이야기를 기대하는 나에게 이 점은 조금 실망스러운 부분이었다.
책을 더 빨리 읽을 수 있어 장점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상당히 깔끔하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들었다.
마지막 결말 이후에도 군더더기 없이 설명이 길지 않아 좋았다.
엘리베이터라는 한 공간 안에서 특이한 사람들이 이루어내는 재미있는 설정들도 한번 경험해보길 바란다.
해설자 '나가에 아키라'가 자신은 장이 좋지 않아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게 너무 무섭다는 글에는 내가 했던 상상과 같아 웃음이 났다.
난 장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고 멋진 남자와 밀폐된 공간에 단 둘이 있게 되었는데 만약 생리적 현상을 해결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이라는 웃지 못 할 순간을 상상해보았었기 때문이다.
『악몽의 엘리베이터』는 책을 덮은 후에 왠지 기분 나빠지는 질퍽한 공포가 아니라 좋았다.
무겁지 않고 그렇다고 절대 가볍지 않은 산뜻한 악몽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