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의 가격 - 원자재 시장은 어떻게 우리의 세계를 흔들었는가
루퍼트 러셀 지음, 윤종은 옮김 / 책세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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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고유가 시대’라는 말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출퇴근시간, 즉 매일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을 확인하는 일은 습관이라기보다는 ‘일상’이다. 실제로 내가 사는 곳의 인근 지역에서, 휘발유 가격이 한창 오르던 시기, 이벤트로 리터당 1200원에 판매하자 해당 지역 뿐 아니라 주변 도시에서까지 차량들이 몰리면서 일대 도로가 주차장이 된 적이 있었다.
 
뉴스에서 물가 안정을 위한 정부 대책 발표, 실제로 완화되었다는 그래프 등이 첨가된 (신문) 기사 등을 보아도 와닿지 않던 체감 물가와 경제상황.
경제 용어에 능숙하지 못한 ‘일반인’이어서, 혹은 타고난 금수저가 아닌 흙수저파 시민층이어서 그런가보다 했던 이 문제들이, 이 문제들의 시작이, ‘원자재’와 그로부터 비롯된 ‘가격 전쟁(price wars)’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부터도 그랬지만, 코로나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으며 기후 위기에 관한 여러 기사, 연구 결과 등이 제시 되었다. 실제로 몇 년 전에 읽었던 환경 단체 대표가 쓴 기후 관련 책의 예상 시나리오가 불과 몇 년 뒤에(그 시기가 이미 코로나 이전이었다) 현실화 되는 모습들을 봐왔고, 그런 책에서 늘 따라붙는 말이 ‘나비효과’였다.
 
나비효과의 사전적 의미나, 사례들을 모르지 않았음으로 ‘공급과 수요에 따라 정해지고 변동되는 것이 가격’이라는 ‘과학적’ 사실(이라 믿고 있는 허구)에 이 현상이 적용된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원자재에서 시작되어 금융상품이나 시스템에 의해 번성, 붕괴 등이 일어나며 이것이 다시 상호 작용, (악)영향이 되는 ‘되물림 현상’은 기존의 교과서적인 경제 과학 상식을 철처히 녹아내렸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가격
2부 전쟁
3부 기후
4부 상상의 산물
 
가격과 관련된 나비의 최초의 날개짓, ‘아랍의 봄’이 시작된 튀니지였다.(p.35)
물이 끓는 현상을 빗대어, 나비효과로 인한 혼돈이 반드시 서서히 불어오는 폭풍적 현상이 아님을 설명하고 있다.
책에서 특히 주목하는 원자재 식량, 원유(석유), 천연가스 중에서 식량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룬다.
98도에서는 끓지 않던 물도 2도만 더 올려 100도가 되면 끓게 되고, 한 알 한 알 쌓이던 모래가 마지막 한 알이 더해지면서 무너지는 ‘모래효과’에서 처럼, 느닷없이 튀어오르는 식량가격은 마지막 모래 한 알이다. 이 모래알이 떨어지면 점점 더 많은 모래알들이 떨어지면서 사태로 번진다. 그러나 사태가 일어나는 동안 원인이 된 모래알(식량가격)은 시야에서 사라지거나 기억에서 잊히기 쉽다. 그 대신 전면에 드러나는 것은 더 깊이, 더 오랫동안 묻혀 있던 다른 모래알들이다.(p.44)
여기서 말하는 다른 모래알이란, 기존에 이미 쌓여 있던 모래알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이를 부패, 극심한 가난, 높은 실업률, 인종 박해 등이 사회에 쌓이는 모래알이라고 표현했다.

전쟁은 우리가 경제적 용어로 말하는 ‘가격 전쟁’뿐만이 아니라 진짜 전쟁이었다. 문제는 이 가격 전쟁은 공급과 수요라는 원리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금융파생상품과 조작되는 시스템의 영향과 집단 인식으로 형성되는 ‘가격’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흔히 자유 시장 경제주의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 말한다.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조지프 스티클리치는 이렇게 말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존재하지 않기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마법사의 지팡이, 즉 ‘보이지 않는 손’이 힘을 발휘하려면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할 법한 조건이 갖춰져야 했다. 그 조건이란 완벽한 정보와 완벽한 경쟁이다. (p.84)
 
‘정보 비대칭’이나 정보 오류는 그것을 생산해내는 시스템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이 오류임을 알면서도 반영되고 현실화 되는 양상을 보였다.
 
런던의 몇몇 은행은 사무실에 컴퓨터 온도를 낮출 냉방 장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컴퓨터가 연산 능력을 덜 사용하도록 공식을 변형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공식이 산출하는 가격도 제각각이 되면서 파생상품을 사고팔기가 어려워졌고,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당사자들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합의해 파생상품 가격을 결정했다.(p.85)
 
가격은 이야기를 하고, 속임수를 쓰기도 한다. 가격은 정보를 숨기며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부를 가져 가기도 한다.(p.139)
 
“(전략)내러티브가 가진 힘은 객관적인 현실에서 나오지 않아요. 그 힘은 이야기의 되먹임과 전염에서 나옵니다.”
...투기자는 가격에 반영되는 모든 ‘정보’를 이야기의 형태로 받아들이며, 투기자의 해석에서 자유로운 순수한 정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가 매매자들 사이에서 유별나게 인기를 끌면, 그 이야기는 단순히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을 넘어서서 자기강화적 self-reinforcing인 가격 상승 장치로 변모한다.
(p.137)
 
그것이 틀린 해석이나 계산값이어도, 현상화 되면 ‘사실’이 되는 것이고 이것은 가격에 반영이 된다는 것이다. 금융의 혼돈이 현실의 혼돈과 직접 맞닿아 있을 뿐 아니라, 두 가지가 서로 다시 순환성 영향을 주고 있었다.
 
가격은 현실이 아니라 현실에 관한 집단적 인식, 즉 통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적 게임에 휘둘렸다.(p.149)


《네이쳐Nature》에 실린 한 설문 연구에 따르면, 기후 전문가들은 지구 온도가 4℃ 상승하면 무력 분쟁이 일어날 확률이 다섯 배 증가하리라 예측했다.
여기서 말하는 ‘분쟁’이란, 우크라이나, 그리스, 베네수엘라에서 목격한 ‘분열된 삶’이었다.
기후 변화로 인한 혼돈을 부추길 원동력을 자원으로 생각했다...그런데 식량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분쟁, 즉 ‘프로그램들이 벌이는’ 투기 전쟁이다.(p.288)
혼돈은 기후가 아니라 금융에서 비롯되었다.(p.282)
알고리즘은 인구는 많고 식량은 적은 상황이 오지 않더라도 공급에 교란을 일으킬 수 있다. (p.289)
결국, 가격을 움직이는 것은 현실 자체가 아니라 집단이 공유하는 현실 인식이었다.(p.284)
 
2019년, 세계적인 사태가 일어났다. 바로 코로나 발생이었다.
책에서 이 장의 부제를 ‘기후-금융 종말 장치의 폭발’이라고 이름했다.
시장의 질서나 경제 논리 같은 것이 전혀 교과서적이지 않음(또는 못함)을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코로나는 또 다른 하나의 ‘시스템’이었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 ‘코로나 상황 덕분에’ 수익을 창출하는 아이템이라며 장례식장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는 이를 본 적이 있다. 그때, 그야말로 오만가지 생각과 감정이 떠올랐다. 이 책의 4장을 읽는 동안 딱 그 기분이었다.
후기에서 저자가 말한 이 한 줄이 마치 요약본을 본 기분이었다.
 
가격은 혼돈을 유발하는 장치이자 현실의 혼돈과 시장의 혼돈이 커지며 서로를 증폭하게 만드는 되먹임 고리였다.(p.400)
 
나는 부유하지 않다. 아니, 못하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나의 빈곤의 가격은 얼마이며 어디서 정해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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