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슬리피할로의 전설 펭귄클래식 132
워싱턴 어빙 지음, 권민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6월
평점 :
판매중지



유쾌한 이야기꾼들의 세계

-슬리피 할로의 전설



마치 유럽 대륙으로 여행을 갔다가 어쩔 수 없는 방랑벽에 이끌려 벽지와 변두리와 곁길에서만 그림을 그린 어느 불운한 풍경 화가처럼 나 역시 그런 실망감을 안길까 걱정스럽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런 화가의 화첩에는 시골집과 풍경과 외딴 폐허만이 가득할 뿐, 성 베드로 대성당이나 콜로세움, 테르니 폭포나 나폴리 만 등은 등장하지 않으며, 빙하나 화산 등은 전 화첩을 뒤진다 해도 찾아볼 길 없다. (p.10 작가의 말)



  워싱턴 어빙?

  누구지?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은 이름이었지만 떠오르는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슬리피 할로의 전설’이라는 표제는, 할로윈 데이의 으스스하면서도 유희적인 느낌을 연상시키는 표지와 함께, 무겁다고도 가볍다고도 할 수 없는 낯선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바로 다음에 펼쳐진 스스럼없는 작가의 말은,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자, 긴장 풀고!’라며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파리의 에펠탑이나 로마의 신전을 구경하러 가는 길에 버스 옆좌석에 앉은 사람과 친해져서 그 사람 동네에 가서 술 한잔 얻어먹고 동네 사람들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며칠씩 머무르는 그런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더이상 이 책에 그렇게 큰 기대를 할 필요가 없어졌으나, 그건 반대로 그렇게 크게 실망할 위험이 사라졌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제부터 펼쳐질 이야기들은, 무슨 위대하고 거창한 모험담이 아니라 동네 호프집에 매일 죽치고 앉아 있는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아저씨의 소싯적 무용담 같은, 어디서 본 것 같고 만났던 것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에는, 해가 점점 길어져서 아무리 늑장을 부리고 공원의 그늘을 어슬렁거려도 밤이 쉬 오지 않는 지금 같은 여름날에, 간단히 저녁을 때운 뒤에 생맥주 한 잔이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옆에 놓고 뒤적이기 좋은 열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여기 실린 단편들을 크게 두 가지 조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는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또 어느 시대에든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인 죽음, 실연이나, 시골의 장례풍습 등을 다룬 소박한 스케치들이고, 다른 한 가지는 전설, 역사적 사실이나 여행지에서의 체험을 저자의 기지와 상상력으로 풀어낸, ‘다시 쓴’ 이야기들이다.


 그는 자기 마음을 동하게 하고, 끌어당기고, 훈훈하게 덥혀주었던 것들이라면 무엇이든 그것에 대해 썼다. 낚시를 즐기며 여생을 보내는 ‘세상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노인, 유일한 삶의 이유이자 낙이었던 아들을 잃은 노모, 사랑 때문에 시들어 죽은 처녀들... 그러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의 단편집 안에서 부유한 영주의 딸이나 도서관에 잠들어 있는 거장들, 자기 민족을 위해 끝까지 투쟁한 인디언 영웅의 이야기와 똑같은 무게와 정취를 지니고 똑같이 사랑스럽게 이야기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내 마음을 끌었던 이야기는 <립 밴 윙클>과 <포카노켓의 필립>, <슬리피 할로의 전설>이었다. 이것들은 모두 ‘나는 이야기하고, 당신은 듣는다’라는, 이야기의 가장 순수한 속성에 충실한 단편들이다. 각각 미국의 독립 전쟁, 식민지 개척 초기 원주민들과의 전쟁, 독일 산간지방의 전설을 소재로 삼고 있는 이 단편들은, 그 소재나 배경에서 끄집어낼 수 있을 법한 어떠한 교훈이나 뚜렷한 문제의식들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채, 단지 어디어디에 이러이러한 사람이 이러이러하게 살고 있었는데 믿을 수 없게도 이러이러한 일이 일어났다, 라는 서사의 흐름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2세기가 흐른 지금까지도 특유의 맛과 매력을 간직한 채 독자들을 만날 수 있는 비결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단편들에서 이야기꾼(화자)의 존재는 전면에 드러난다. 어빙은 이것이 (어디서 들은, 어디선가 본) ‘이야기’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이 점이, 비슷한 류의 전설이나 역사적 일화를 다룬 다른 작가들과 구분되는 어빙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그는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오해하지 말자”는 구호라도 외치듯이, 서두는 영감에 찬 시인들의 싯구로 장식하고 말미에는 (구태여 ‘추신’을 달아서라도) ‘이야기를 전하는 이야기꾼의 시선(혹은 견해)’을 덧붙인다. 이러한 이중의 강조는, 현대문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상호 텍스트성’을 상기시킬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본질인 허구와 사실(넓게는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독자의 사유를 자극시킨다.(실제로 나는 어빙을 읽는 내내 보르헤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모든 이야기들은 단지 이야기일 뿐이기 때문에, 딱히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듯하지만 독자의 해석에 따라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라도 될 수 있으며, 작가 자신이 그러했듯, 이 이야기를 접한 또 다른 이의 펜에 의해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여지를 무한히 열어두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결코 잊고 싶지 않은 장면 하나를 되새기며 두서없는 리뷰를 마친다.

  


  화자는 이야기를 끝낸 후 목을 축이려고 포도주 잔을 막 입에 가져가다, 잠시 동작을 멈추고 무한한 존경심으로 질문자를 바라보더니, 이어 잔을 천천히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하길, 이 이야기가 더없이 논리적으로 증명하려는 바는 “우리가 농담을 있는 그대로 웃어넘길 수만 있다면, 인생의 모든 상황에는 나름대로의 이점이나 즐거움이 있지요. 따라서, 요괴 기병과 경주를 벌이는 자는 혼쭐 깨나 나기 마련입니다. 그런고로, 시골 선생의 경우 네덜란드계 상속녀에게 퇴짜 맞은 것은 높은 지위로 나아가는 일보가 되지요.”

  신중한 노신사는 이와 같은 삼단논법의 추론에 몹시 어리둥절하여 설명을 듣고 난 뒤 열 배는 더 이맛살을 찌푸렸고, 그동안 희끗희끗한 옷을 입은 노인은 (내 생각에) 의기양양한 눈초리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노신사가 말하길, 다 좋다 쳐도 그의 이야기는 다소 얼토당토않은 면이 있다고, 의심쩍은 부분이 한두 군데 있다고 했다.

  “믿음이죠, 나리.” 화자가 대답했다. “그 문제에 관한 한, 저 자신도 반쯤은 믿지 않는답니다.” (p.214~215 <슬리피 할로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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