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어빙?
누구지?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은 이름이었지만 떠오르는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슬리피 할로의 전설’이라는 표제는, 할로윈 데이의 으스스하면서도 유희적인 느낌을 연상시키는 표지와 함께, 무겁다고도 가볍다고도 할 수 없는 낯선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바로 다음에 펼쳐진 스스럼없는 작가의 말은,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자, 긴장 풀고!’라며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파리의 에펠탑이나 로마의 신전을 구경하러 가는 길에 버스 옆좌석에 앉은 사람과 친해져서 그 사람 동네에 가서 술 한잔 얻어먹고 동네 사람들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며칠씩 머무르는 그런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더이상 이 책에 그렇게 큰 기대를 할 필요가 없어졌으나, 그건 반대로 그렇게 크게 실망할 위험이 사라졌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제부터 펼쳐질 이야기들은, 무슨 위대하고 거창한 모험담이 아니라 동네 호프집에 매일 죽치고 앉아 있는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아저씨의 소싯적 무용담 같은, 어디서 본 것 같고 만났던 것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에는, 해가 점점 길어져서 아무리 늑장을 부리고 공원의 그늘을 어슬렁거려도 밤이 쉬 오지 않는 지금 같은 여름날에, 간단히 저녁을 때운 뒤에 생맥주 한 잔이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옆에 놓고 뒤적이기 좋은 열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여기 실린 단편들을 크게 두 가지 조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는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또 어느 시대에든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인 죽음, 실연이나, 시골의 장례풍습 등을 다룬 소박한 스케치들이고, 다른 한 가지는 전설, 역사적 사실이나 여행지에서의 체험을 저자의 기지와 상상력으로 풀어낸, ‘다시 쓴’ 이야기들이다.
그는 자기 마음을 동하게 하고, 끌어당기고, 훈훈하게 덥혀주었던 것들이라면 무엇이든 그것에 대해 썼다. 낚시를 즐기며 여생을 보내는 ‘세상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노인, 유일한 삶의 이유이자 낙이었던 아들을 잃은 노모, 사랑 때문에 시들어 죽은 처녀들... 그러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의 단편집 안에서 부유한 영주의 딸이나 도서관에 잠들어 있는 거장들, 자기 민족을 위해 끝까지 투쟁한 인디언 영웅의 이야기와 똑같은 무게와 정취를 지니고 똑같이 사랑스럽게 이야기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내 마음을 끌었던 이야기는 <립 밴 윙클>과 <포카노켓의 필립>, <슬리피 할로의 전설>이었다. 이것들은 모두 ‘나는 이야기하고, 당신은 듣는다’라는, 이야기의 가장 순수한 속성에 충실한 단편들이다. 각각 미국의 독립 전쟁, 식민지 개척 초기 원주민들과의 전쟁, 독일 산간지방의 전설을 소재로 삼고 있는 이 단편들은, 그 소재나 배경에서 끄집어낼 수 있을 법한 어떠한 교훈이나 뚜렷한 문제의식들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채, 단지 어디어디에 이러이러한 사람이 이러이러하게 살고 있었는데 믿을 수 없게도 이러이러한 일이 일어났다, 라는 서사의 흐름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2세기가 흐른 지금까지도 특유의 맛과 매력을 간직한 채 독자들을 만날 수 있는 비결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단편들에서 이야기꾼(화자)의 존재는 전면에 드러난다. 어빙은 이것이 (어디서 들은, 어디선가 본) ‘이야기’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이 점이, 비슷한 류의 전설이나 역사적 일화를 다룬 다른 작가들과 구분되는 어빙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그는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오해하지 말자”는 구호라도 외치듯이, 서두는 영감에 찬 시인들의 싯구로 장식하고 말미에는 (구태여 ‘추신’을 달아서라도) ‘이야기를 전하는 이야기꾼의 시선(혹은 견해)’을 덧붙인다. 이러한 이중의 강조는, 현대문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상호 텍스트성’을 상기시킬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본질인 허구와 사실(넓게는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독자의 사유를 자극시킨다.(실제로 나는 어빙을 읽는 내내 보르헤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모든 이야기들은 단지 이야기일 뿐이기 때문에, 딱히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듯하지만 독자의 해석에 따라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라도 될 수 있으며, 작가 자신이 그러했듯, 이 이야기를 접한 또 다른 이의 펜에 의해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여지를 무한히 열어두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결코 잊고 싶지 않은 장면 하나를 되새기며 두서없는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