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 삶의 완성으로서의 좋은 죽음을 말하는 죽음학 수업
박중철 지음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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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프기 전에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3년 전,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병원을 전전하고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에 들어가며 죽음이란 무엇인가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는 황폐한 죽음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세상을 고발하고 죽음이 존중 되기를 바라는 소망과 제안을 담은 책이다.
평균 수명은 점점 늘어 우리는 오래 산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럼 과연 오래 사는 것은 좋은 것일까?
남편과 딸을 비롯한 모든 가족들이 먼저 세상을 떠날 때, 그것을 지켜봤고 이젠 눈도 거의 보이지 않고 걸을 수 조차없는 의존적인 상태에서 살아간다면 오래살아가는 것이 행복이고 축복일까.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 하지만 품위 있게 죽기를 원한다. 결국 우리는 죽고 늘어난 수명가 더해진 시간 속에서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도 아니다 자기 수명을 80% 만 건강하게 살고 마지막 20%는 병에 시달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나마 17%의 말기암환자는 남은 삶을 정리하는 시간이 주어진다. 호스피스 기관을 이용하지만 나머지는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삶을 시간을 마무리할까.

말기 암 진단 후에도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기존에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다 사망하거나 퇴원후 집과 병원으로 가며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이 중 중환자실에서 기계호흡 장치를 달고 연명치료를 봤다 죽거나 응급실에서 무의미한 심폐소생술을 하다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병에 시달리면 살아야 하는 시간도는 것이다. 나의 할아버지도 6 -7년을 집-병원 하며 엄마와 남동생이 간병하다 병원에서 호전되었다가 다시 중환자실에서 1년 정도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했다.살고 싶다고 하는 할아버지,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받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가족들도 또한 고통스러워하는 할아버지 모습에 괴로워했다 .

잘 죽는 것도 한 삶에서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좋은 죽음은 아쉬움없이 살다가 죽는 것일까. 좋은 죽음은 원하는 장소에서 잠들듯이 죽는 것, 고통 없이 죽는 것, 사람들의 존중과 존경을 받으면서 죽는 것, 평소대로 살다 죽는 것 등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한다. 이런 좋은 죽음을 위해서는 고통과 두려움 없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떠날 순 없을까
병원과 의료진에게 책임을 남기기보다 병원에서 겪지 않아도 될 육체적 고통을 피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의학도 죽음에 친절해야 한다. 환자가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잘 사는만큼 잘 죽는 것 또한 쉽지 않는 세상에서 과연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봤던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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