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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함께 춤을 - 아프다고 삶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
다리아 외 지음, 조한진희(반다) 엮음, 다른몸들 기획 / 푸른숲 / 2021년 8월
평점 :
아픈 게 죄는 아닌데, 아프고 나는 정말 죄스러웠고 나를 미워했던 것 같다. 똑같은 몸인데 일상에서, 병원에서조차 아픈 몸이라는 이유로, 젊은 사람이 어쩌다가, 그 집 딸은, 그 집 며느리는, 그 집 누나는, 니네 부인은, 걔는 아프냐는 오지랖 담긴 질문과 걱정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처음에는 아플 수도 있지 빨리 나아라는 말이 진심어린 걱정이라 생각했지만 3년이라는 긴 시간 아프자 언제 낫냐,아직도 아프냐, 너랑 언제 얼굴 보냐, 언제 노냐 등 안부 문자조차 부담스러웠다. 매번 아픔을 설명하는 것도 지치는데 왜 자꾸 묻는 건지. 어느 순간부터 힘들고 지쳐갔다. 통증으로 잠을 못자거나 누워있다는 걸, 아무리 말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내가 '건강하지 못해서' 힘들었다. 난 왜 아픈건지, 언제 나을 건지 묻는 질문에 어느샌가 몸도 힘든데 마음까지 상처받고 부정적인 감정 등이 생겨났다. 왜 나는 남들과 다른가. 울기도했고, 소리치기도 했고 나를 원망하고 자책하기 바빴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나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신기하게도 세계 자살 1위이면서 건강제일주의가 공존하고 있다. 건강한 사회, 건강한 사람만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기에 아픈 사람은 자신과 다른 몸, 죄스러운 몸, 실패한 몸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조금씩은 아프고 만성질환 하나씩은 개성처럼 달고 사는데 건강중심사회의 눈으로 자신의 몸을 보다 보니 우울해지고 자책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아픈 사람이 너무나도 많은데 왜 건강한 사람의 눈으로 자신의 아픈 몸을 보면서 부족하고 열등하다고 낙담하고 있었는지, 나의 아픔과 통증을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이후 만성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나이가 들면 아플 수도 있고 아프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쉬어도 되는 게 당연한 건데 왜 우울하고 불안하고 죄스럽고 눈치를 봣을까.
나는 이제 겨우 아픔을 받아들이고 아픈 몸으로 바뀐 생활 속어서 잘 살려고 노력한다. 근데 아직도 시선들이 힘들다. 3년째 아프다고 말할 때마다 기우뚱하는 그 시선은 이제 그만 해줬음 좋겠다. 진심 어린 걱정이면 고맙지만, 같이 놀고 싶어서, 그냥 내 아픈 소리가 듣기싫어서라면 나는 이제 사양한다. 솔직히 짜증나고 화가 난다.
누구나 아프다. 좀 더 많이 아플 뿐이고 아파서 마약성 진통제를 먹고 신경안정제를 먹는다.10 개의 약을 시간맞춰서 먹을 뿐이다.
아파서 약 챙겨 먹고 겨우 자고 조금 운동하고 내 정신 건강과 위로를 위해 책을 읽으며 괜찮다하며 나를 이해하고 토닥이기도 바쁜데 걱정하는 척 놀자고 연락오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다. 아파서 화나고 싫은 건 싫다고 그냥 말하고 싶지만 그것마저도 눈치 봐야 하고 통증을 참아내는 것도 힘든데 빨리 나아서 내가 놀아야하는지도 사실 모르겠다. 그래서 아픈 뒤 친구들과 연락하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관계정리도 한 것 같다. 내 생일, 가족생일, 결혼기념일 챙길 여유도 없는데 어떻게 남을 챙길 수 있는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도, 하나하나 신경쓸
시간도 없는데, 그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섭섭하다거나 비난을 쏟아냈다. 그래서 연락을 하지 않는다. 아프기 전 늘 내가 먼저 연락했는데 그럴 여유가 얷다.
결국 내 속내는 남편과 가족에게만 털어놨던 것 같다. 그래서 아픈 뒤 좋았던 건 가족애와 가족들의 소중함, 표현의 소중함이었다.
아프면 전화를 못받는다는 걸, 바로 약을 넣고 꼼짝없이 눕고 열나면 응급실에 가야한다는 걸 아는 건 가족이었다. 친구도, 지인도 아닌.
내 짜증과 화를 이해해주는 것도 기족이었고.
의사조차 나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했다. 약만 처방해줄 뿐.
약먹는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가만히 누워 묵묵히 통증을 참다 잠깐 잠들거나 자는 동안이라도 안 아프고 푹 자고 싶어 약을 먹고 자다보니 밤낮이 바꼈다는 것을. 분주히 열 알이 넘는 약을 먹고 사는 나를. 그들은 몰랐다. 이해를 비나지도 않는다. 이젠. 그냥 신경을 끄려고 노력한다.
아마 질병을 겪고는 익숙하던 일상이 낯설어지고, 늘 듣는 건강 안부 인사가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성격파탄자라도 된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들고 불편하고 이상한 경험을 해석할 언어나 이야기가 없어서 질병이 불행이고 아픈 게 죄인이라는 감정에 휩싸여 괴로웠다는 것을 건강한 이들은 모를 것이다.
그런 나에게 '질병과 함께 춤을'은 위로와 공감을 줬다. 읽는 내내 울컥하기도 했고 고개를 흔들기도 했고 마음이 편해졌다. 내 속내와 같아서 그랬던 것 같다. 이제 나를 더이상 미워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픈 초기에는 아픈 것을, 나타나는 증상을 숨기기 바빴다. 건강해보이고 싶었다. 정상이고 싶었다. 그런데 아프고 나서야 알았다. 아플 수도 있다고 아프다고 비정상은 아니라는 것을. 아픔은 숨기는 게 아니라 많은 이에게 알려야한다고, 그래야 정보도 공유하고 빨리 치료할 수 있다고, 병원과 친해져야 한다고.
나는 왜 아플까, 나는 왜 남들과 다를까에 대한 자책이 아닌 누구나 아프고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을.
그러기 위해서는 '아파도 괜찮은 사회'가 만들어져야한다고 책은 말한다.
책 속 '질병과 함께 춤을' 모임은 아픈 사람들이
자신들의 속내를 털고 편히 약먹고 이야기하면서 걷기도 하고 누워서 참여하기도 했다. 규범화된 몸을 내려 놓고 자신에게 맞는 편안한 자세로 참여할 수 있는,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아픔을 말하는 모임. 아픈 사람들이 아픔을 이야기하는 그 모임에 기회가 된다면 꼭 참석해지고 싶다.
그들은 나와 같이 처음에는 오진일까, 나에게 왜 이런 질병이 왔을까 여러 가설을 세웠고 이유를 이해하려하다가 이제는 나에게 이 질병 경험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건강한 몸이 아닌 아픈 몸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을 때 무겁게 짓누르던 고통에서 해방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염려의 말이 아닌. 내가 속좁고 문제가 있는 인간이 아니라. 건강 중심 사회에서 살아 그렇게 된 거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아픈 몸에서 오는 혼란과 잘 아플 수 없게 만드는 일에 대한 경험을 나누고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프다고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위로였다.
아픈 몸은 열등하고 혐오스럽고 쓸모없는 존재로 규정하는 사회의 시선이 아닌 질병을 가졌지만 서서히 자신의 아픈 몸을 편안히 껴안을 수 있었다. 질병과 함께 사느라 고통스러웠던 시간과 경험이 쓸모없는 게 아니었고 건강한 몸에 대한 선망과 완전한 회복에 대한 막연한 강박이 아닌 지금 몸을 인정하고 아픈 몸으로 살아가기로 선택하면서 불투명했던 삶이 선명해질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아픈 몸을 해명하려 들지 말고 해명할 필요도 없다. 질병이 우리 삶을 낚아채 내동댕이치는 게 아닌 질병에 대한 사회적 태도와 사회구조적 측면으로 우리는 아플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내면화된 낙인의 허구성에서 벗어나 내가 잘못해서 아픈 게 아니란 것을, 서로의 고통을 알고 더이상 아픈 것 때문에 또다른 아픔을 얻지않길 바라본다.
나는 예전 그대로인데 단지 질병이 생겼다는 이유로 모든 게 달라졌다.질병을 받아들이는 일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설명하는데도 많은 노력과 에너지과 시간이 들었다. 그 속에서 더 지친 것이다. 이제는 당당하게 아프고 더이상 내몸을 괴롭히기 보다 아플 수 있다고 나를 더 사랑하고 아픔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야겠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