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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다섯 마리의 밤 - 제7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채영신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7월
평점 :
추운 어느 날 밤, 박혜정과 세민이는 꼭 끌어안고 잠이 든다. 아주아주 오래 전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 추운 밤에 개를 끌어안고 자듯, 박혜정과 세민이는 추위와 고통, 핍박 속에서 살아간다.
개 다섯마리의 밤이 필요해 보이는 모자의 모습에 읽는 내내 화가 치밀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던 것 같다.
동네 아파트 단지 인근 폐가에서 초등학생 남학생 두명이 차례로 살해된다. 범인은 동네 태권도장 권 사범. 그는 왜 아이들은 죽였을까. 세민이는 권 사범이 아이들을 죽인 이유를 진짜 아는 듯하다. 요한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유일하게 세민이를 알고 세민이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세민이는 알비노다. 그러나 자신이 알비노인 걸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했다. 알비노인 것만 빼면 똑똑한 녀석이다. 토익, 텝스, 학력평가, 수학경시대회까지 성적이 모두 우수하고 말도 잘한다. 그런 세민이는 계속 왕따를 당한다. 전학을 왔음에도 또 이 학교에서도, 이제 전학 다니는 것도 지칠 정도다. 늘 당당하게 행동하지만 세민이는 알비노의 시간과 보통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자신의 눈이 점점 멀고 오래 살 수 없다는 것을, 엄마를 원망하는 자신이 싫어지기도 한다. 엄마에게 의지하기도 하지만 술을 마시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때면 요한을 찾는 세민이다. 눈이 먼다는 차원이 다른 외로움을 느꼈고 남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에 참아왔다. 그런 세민에게 폐가는 요한과의 추억이 있고, 유일하게 울 수 있고 거룩한 땅 성소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살인 사건이 일어난 으스스한 빈집이었지만. 세민이를 토닥여주고 싶었고 안아주고 싶었다.
한편 안빈 엄마와 안빈이는 박혜정과 세민이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4년 전 일하던 매장에서 안빈 엄마는 자신이 닿을 수 없는 꼭짓점에 도달해서 일상을 누리고 부와 여유로운 삶을 사는 혜정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고 친하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안빈엄마는 술취한 박혜정을 데려다 주게 되고 낡은 공책 대여섯권을 읽게 된다. 일기장인지 소설인지 모를, 그 속에서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되고 자신이 세민이와 그녀의 인생을 쥐락펴락할 수 있을 거라 착각한다.
이후 세민이가 전학온 뒤 안빈이는 1등을 놓치게되고 그 스트레스로 반년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세민이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안빈엄마도 여기에 합세한다. 자신의 남편이 박혜정에게 푹빠진 것도, 안빈이가 스트레스 받는 것도 보기 싫었던 그녀는 자신의 학창시절, 소아마비 고교동창과 마찬가지로 세민도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무릎 꾾게 만들고 싶어한다.
연극을 하는 아이들 중에서도 안빈이가 훌륭해야한다며 대본을 세민이 쓰는 것도, 안빈이가 복서인 것도 마음에 안들어하던 안빈엄마. 모든 게 박세민 때문이라고, 저주받은 아이가 내뿜는 저주의 기운이 모든 걸 망쳤다며 그 아이를 자기 영역에서 추방해야한다고, 안빈의 곁에 이대로 놔둬선 안된다며 반 아이들과 엄마들 앞에서 세민이의 출생의 비밀을 말해 버린다.
도대체 그녀는 그들에게 왜 이렇게까지 할까.
그들은 약해서 약해빠져서 이렇게 당하고 결국 약해질 수밖에 없는 건가.
학교폭력은 날로 심해진다. 세민이가 장난으로 한 토끼 마술을 진짜로 몰아가는 안빈이와 안빈엄마. 안빈이가 지휘하듯 두 손을 흔들며 '박 근친상간 잘난 재수 알비노 세민'을 외치자 아이들은 한목소리로 합창하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을 세민이는 연극에서 따돌림 당하는 역을 맡은 것이라 애써 웃어보는데 그 모습이 더 마음이 아파온다. 남들 앞에서 제대로 울지 못했던 그 마음이, 올가미에 갇혔던 그 모습과 옷을 벗으라고 소리치고 그걸 사진 찍으려던 아이들은 마치 악마와 같았다.
자기 자식만 귀하고 남의 자식에게는 상처를 주는 안빈엄마와 알비노라는 이유로 세민을 괴롭히던 아이들의 모습에 화가 치밀었다.
장애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계속 고통과 추위, 핍박 속에서만 살아야 하는 걸까, 그들에게너무나도 가혹했던 현실이 안타까웠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