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거울이 될 때 - 옛집을 찾았다. 자기 자신을 직접 이야기한다. 삶을 기록한다. 앞으로 걸어간다.
안미선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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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들이닥친 팬데믹 속에서 문을 닫은 채집안에만 갇혀 지내던 작가는 집과 자신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평범한 일상이 그리워지는 요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들이 그립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지자 벽이 눈에 들어왔고 어느새 집의 벽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들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벽을 내편으로 삼고 기대어보았다. 우리의 이야기를 보는 듯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던 어느 날 무엇이 나를 이자리에까지 데려왔는지를 생각하게 됐고 그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 자신이 살았던 동네를 찾고 돌아보기로 한다. 어쩌면 그 곳에서 
작고 빛나는 그 어떤 것을, 소중하기도 했고 한편으론 잊고 싶기도 했던,  그러다 잊고 말았던 것들을 찾아 떠난다. 

 봉화의 외딴 골목 안에 있는 낡은 기와집 앞에 섰다. 자신이 태어난 그 집 앞에서 설렘과 긴장으로 떨리는 마음으로 까치발을 하고는 담 너머를 훔쳐보는데 약간의 죄책감과 두려움이 들었지만 동시에 다시 오지 않을 이 기회를 누려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이기에.

 슬레이트 지붕의 오래된 변소는 어릴 적 혼자 변소에 갈 때 무서운 나머지 요강에 걸터앉았던 기억을 떠올리는가하면 신비하고 어둠에 잠긴 기분이 들게도 한다. 마른 잡초투성이었던 화단은 여전히 있고 다만 살뜰이 물을 주는 사람이 없어 노인의 미소처럼 그녀의 기억에만 잠겨있는 듯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그 자리에 있었기에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방이 남아있다는 이유만으로 든든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전봇대에 빼곡히 앉은 제비들은 작은 검은돌들이 모여있는 것 같아 반갑고 신기하다고 나고 자란골목을 마주하니 그 날의 기억이 펼쳐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비들은 그 자리에 있었다.

지금도 제비들이 그때와 지금을 이어주는 바늘땀처럼 하늘에 검은 자국으로 남아있었다.
그리곤  무엇을 보고 싶었던 걸까, 무얼 찍어야할까 생각에 잠긴다.

 어딘가에서 그때의 나를 만날 것 같다. '누구세요?'나를 올려다보는,  한참 놀고 있던 아이와 마주칠 것 같다. (p23)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할지, 잘자랐다고 말해야할지 이렇게밖에 되지못했다고 사과를 해야할 지 알 수가 없었고 어쩐지 부끄럽고 미안해서 눈을 뜰 수 없었다. 해가 집들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어른이 되어 다시 본 그림자는 유년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이어주고 세월에 이리저리 지친 나를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는것 같았다. 그림자는 내 속에 감춰진 여전히 꼿꼿하고 자유로운 나였다. 마치 끊어진 다리를 잇는 것처럼 물러난 세상을 불러 모아 내몸을 꿰매는 것처럼, 그날 저녁 내내 나는 구석에 쭈구려 앉아 내 그림자를 찍었다. (64쪽)



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안방 벽에 비쳤다. 사각의 작은 자리가,  그 자리가 환하고 따뜻해보였다.
직을 찾는 마음은 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마음은 자신의 힘만으로 살 수 없어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고  간절히 기대는 마음이었다. 그녀는 햇빛 쬐는 자리에서 몸을 맡겨본다. 그것만이 자신에게 필요했기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그림자 안에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내 그림자를 보고 난 다음에 만난 풀의 그림자는 평범하지 않았다. 커보였고 단단해보였다.어쨌든 풀은 이곳에서 살아내야만 한다는 것을 묵묵히 이곳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후 아플 때도 있었고 외롭고 혼자인 것 같은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 그랬지, 네가 그랬지.그래도 괜찮아졌지' 하고 집이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작가의 손에는 한장의 마지막 사진이 남는다.  어둠속에서 작가와 나뭇잎들이 반짝이는 긴 머리카락을 곤두세우고 빛의 고삐를 쥐고 즐거운, 영원한 행진의 맨 앞에 서 있는 그림자를 보았다.

 집은 결국 거울처럼 작가를 비추고 그림자를 하나하나 되돌려주었다.이제 우리는 작가를 통해 하루하루 만나는 짧은 빛이 성에 차지 않거나 보잘 것없어도 나에게 주어진 진짜 삶인 것을 알게 된다. 기억으로 일으켜 세운 집이 우리가 기댈 유일한 자리고 또 다른 거울이 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책을 읽곤 나는 여러 기억 중  어떤 기억을 기록할지,  그 기록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를 생각해본다.

※ 이 글은  도서를 선물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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