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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자의 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아델라이다였으면 견딜 수 있었을까.
스페인여자의 딸을 읽는 내내 계속한 생각이었다.
첫 문장부터 읽자마자 난 사실 울 뻔 했다.
엄마를 묻었다.푸른 원피스, 굽없는 검은 구두, 다초점 안경, 엄마가 쓰던 물건들도 함께 묻었다. 달리 작별할 도리가 없었다. 엄마와 뗄 수 없는 물건들이었으니까. 함께 묻지 않았더라면 엄마를 불완전하게 땅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없을테니까, 그래서 전부 묻었다.(11쪽)
엄마의 죽음이라니, 상상조차 하기 싫다. 이 세상이 다 무너져 내린 것만 같을 것 같다. 가족이라고 엄마와 나 둘인 그녀에게 엄마의 죽음은. 균형이 무너지는 느낌일 것이다. 몸에 일부가 꺾이거나 뿌리채 뽑히는 아픔이지 않을까.
눈물이 나온다. 한숨이 나왔다.
아델라이다 팔콘, 그녀의 어머니는 긴 투병생활 끝에 생을 마감한다. 그렇게 아델라이다는
가족도 연인도 없이 홀로 살아간다. 그런 그녀에게 연속적으로 불행이 찾아온다.
그녀의 집은 무장 부대에 속한 보안관과 그 무리의 여자에게 점거당한다. 그녀는 그렇게 내팽겨져치고 폭력이 일상이 된 도시에서 살아가게 된다. 도움을 청하고 싶었고 이웃집 문을 두드려봤지만 평소 스페인 여자의 딸이라 불리는 아우로라 페랄라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가고 거기에 그녀는 죽어있고 거실 탁자 위에는 그녀의 스페인 여권이 있다.
죽은 우리 어머니가 영원한 침묵으로 나를 벌하는 것을 , 그리고 다른 어머니, 스페인 여자가, 자신이 생을 마감할 곳으로 선택한 땅의 불개미들이 독을 생성하도록 자기 몸을 양분으로 내어 주는 것을.
이 나라에서는 아무도 영면에 들지 못한다.아무도.(282쪽)
이제 그녀의 신분을 훔치기만 하면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것이다. 폭력이 일상이 된 이 도시에서는, 이 지옥에서는 살 수 없다. 내가 아델라이다였더라도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스페인 여자를, 세번째 검문이다. 마지막이겠지. 모든 걸 잃을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지?
계속 죽음으로 모는 이 상황에서, 이 도시에서
그녀는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