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티아고 순례자들이 적은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책이 최고였다. 생장피드포르서 산티아고까지의 800킬로미터 길을 걷는다는 것은 육체와 정신과 영혼과의 싸움이라 불리는 산티아고의 순례자의 길.과장처럼 들릴 수 있지만 완주한 자들은 이 말에 다들 공감한다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말 중 하나다. 순례는 왜 하는 걸까. 종교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계명일 수도 있고 고행을 통해 절대신에게 다가가려는 기원이기도 하다.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사람에게는 구원을 향한 몸부림일 수도 있다.순례는 고행이고 위험이 도처에 산재해 있기도 하다. 그 길을 가는 그들의 마음은 어떤가. 읽는 내내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고 싶은 욕구가 들기도 했다. 변덕스럽기로 악명 높은 피레네산맥의 날씨가 작가가 걷는 날은 유난히 청명해서 처음 걷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하루는 단순하다. 오직 걷는것만이 일과다. 걷기 위해 먹고 걷기 위해 자잔다.비 오면 비 맞으며 걷고 바람이 불면 바람운 맞으며 걷는다. 땡볕아래에서도 달빛 아래에서도 걷는다. 그저 묵묵히 걷는다. 그런 순례자의 마음은 가난하고 단순하다. 작가는 걸을 때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그런데 용서의 언덕을 걸을 때는 달랐다. 왜 용서의 언덕일까. 인간이 하는 일 중 가장 어려운 게 용서인데 사랑이나 희망 같은 개념을 놔두고는. 용서란 무엇일까. 개인 간의 관계에서, 종족이나 국가 등 집단간의 관계에서의 문제일까? 누군가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자책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나 스스로 말하는 게 가장 좋다. 우리에게는 자신을 다독이고 포용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작가는 순례자를 달팽이와 같다고 이야기한다. 달팽이가 이슬 머금은 채 빠져나와 자갈길에서 곰작거리며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배낭을 걸머지고 걷는 순례자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다. 달팽이는 욕심을 버리고 안분지족하는 지혜를 지녔기에 자기에게 맞는 껍데기를 짊어지고 급하다고 뛰지 않는것도 순례자와 같다. 욕심을 버리지 못해 큰 배낭을 꾸리면 배낭 무게에 허리가 휘고 이것저것 빼버리면 나중에 엄청난 불편을 감수해야한다. 순례자는 버리고 비우는 것을 잘해야 하고 마음이 급해서는 안된다. 마음이 급해 달리다 보면 병이 난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기 처지와 분수를 모르고 욕심을 부리면 결국 탈이 난다. 순례길에서 우리는 인생과 지혜를 배우고 반성하고 비우고 서두르지도 멈추지도 않고 천천히 사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