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시신을 내어가던, 죽음과 삶의 순간이 어우러진 시구문은 세명의 아이가 자신의 운명을 넘어 새 삶을 향해 나아가려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무당의 딸년으로 불리는 기련, 아버지가 죽고 무당이 된 어머니와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을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증오로 돌리지만 그녀는 어머니를 따라하며 돈을 번다. 소문이 사실이 되어가는 동안 기련은 어머니가 자신을 항상 지켜왔다는 것을 모른 채 살아간다. 그리고 계속되는 어머니의 침묵이 더 큰 미움으로 다가온다. (어머니는 기꺼이 자식의 짐을 짊어졌고 매순간마다 기련 옆에 있었고, 기련을 위해 기도해주고있었다.)친구인 백주는 소년 가장으로 그런 기련을 나무라며 아픈 아버지와 어린 동생 백희를 책임지기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유품인 주머니를 떨어뜨리는 사건으로 소애 아씨를 만난다. 이후 양반가의 참수로 아버지가 죽고 집안의 몰락과누명을 벗지 못한 소애아씨는 다른 대감 집의 몸종이 되어 버리고 아씨를 구하러 가기도한다.힘들고 괴로운 삶 속에서 이들은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준다.상처를 입는 것은 아프지만 그 상처가 단단해졌고 점점 소중한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자신들이 미숙하고 가족을 원망하고 모순된 행동 했음을 깨닫게되고 새로운 자신이 되기 위해 도망치듯 떠난다.시구문의 구절 중 인상깊었던 구절은 특히두부분이었다.산다는 건 뭘까. 아픔없는 사람은 없지만 그 크기와 받아들이는 가슴이 달라서 누구나 공평한 크기의 아픔을 느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서로에게 묻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슬픔이 무엇인지 왜 아무것도 할 수 없는지. 너도 나만큼 아픈지. 우리는 아직 이렇게 살아 있었다.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도, 막다른 길에 내쳐졌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미워했어도 우리는 숨을 쉬고 있었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했다. 누군가를 돕고, 다시 길을 찾고, 미워했던 사람을 다시 이해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