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과 기분
김봉곤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나는 상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촌스러운 내 옷들과 함께 내 말투를 버렸다. 그다음은 옛 친구들이었다. 그들을 향한 기만의 달콤함과 배덕의 재미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과 연락을 끊었고 고맙게도 시간과 거리가 나를 대신해 끊어주기도 했다. 듣기 싫은 소리를 듣기 싫었고, 껄끄러워지고 싶지 않았고, 화내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없어지는 쪽을 택했다. 내가 선명해지는 동시에 내가 사라지는 기분은 아주 근사했다."

"결국엔 내가 맞았지? 울면서 웃는 해준의 얼굴을 보았고, 사직구장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야구를 보는 혜인과 내가 있었다. 슬픈 것과 사랑하는 것을 착각하지 말라고, 슬픈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을 착각하지 말라고 생각했고, 아무여도 아무래도 좋을 일이라고도 잠시 생각했다. 상상만으로 이미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지만, 가능세계를 그려보는 일이 예전만큼 즐겁지 않았다. 내가 된 나를 통과한 사람들, 슬픔과 불안에서만 찾아왔던 재미와 미 역시 내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작가님 스스로도 ‘시절과 기분’으로는 젊은작가상 대상을 기대할 만큼 작품성이 좋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다 읽은 지금 왜 그렇게 말하셨는지 나름 알겠다. 얼마 전 젊은작가상 작품집으로 읽은 ‘그런 생활’에 연달아 ‘시절과 기분’을 읽었더니 정신을 못 차리겠고, 엔드게임이랑 데이 포 나이트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시절과 기분은 진짜.. 선명해지는 동시에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 근사하다니, 이 멋들어지는 문장은 뭐야 감탄만 나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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