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해부하는 의사 - 영국 최고의 법의학자가 풀어놓는 인생의 일곱 단계
리처드 셰퍼드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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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7막에 비유한 셰익스피어의 명문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제목과 소재, 내용까지 뭐 하나 가볍지 않다. 법의병리학자의 이야기다 보니 평범한 자연사보다는 살인, 자살, 사랑, 잔인함, 광기에 의한 드라마틱한 죽음을 다루며 전문적 지식도 알려준다. 매 에피소드가 예상치 못한 사인이 드러나기까지 추리 요소를 갖춘 데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생물학적 지식도 쉽게 풀어줘 더 잘 읽힌 것 같다.

모든 죽음이 안타까웠으나 건장하던 아들의 사인이 유전병임을 알고 "내가 아들들에게 저주를 내린 셈이군요. 내가 아이들을 낳았을 때 죽음도 준 거였어요."라던 어머니가 잊히질 않는다. 세상에 어떤 병이 고통스럽지 않겠느냐만은 유전병과 치매만큼 잔인한 질환이 있을까 싶다. 그래도 치매의 40%는 예방 가능하다고 하니 한 줄기 희망은 있다. 물론 치매의 주요 원인인 비만과 음주, 흡연(간접 포함) 등을 주의해야 한다.

영국이나 러시아 정부가 연루됐다는 음모론이 사그라들지 않는 영국 정보기관 요원의 죽음에 대해 저자가 '자기색정사'일 것이란 견해를 밝힌 것은 충격 그 잡채였다. 진짜? 성적 자극을 얻으려고 제 발로 그 작은 가방에 들어가 자물쇠까지 잠갔다고? 준비해뒀던 열쇠를 놓치는 바람에 가방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죽었다면…앞날이 창창하던 30대 남자가 그렇게 죽었다니 참 뭐라 해야할지…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가 "정부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정보가 조작됐다"고 보도하는 과정에서 취재원인 국방부 무기전문가 데이비드 켈리 박사가 자살한 사건은 네이버 지식백과에도 등장하더라. 저자는 그의 죽음이 자존감이 무너진 전형적인 중년 남성 자살의 비극적 사례라며 그가 죽기 전 몇 달 동안 수행한 임무의 국가적 중요성도 그 사실을 바꾸진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는데 이에는 반발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살인이라는 법의학적 증거는 없을지라도 이 죽음에는 취재원을 보호하지 않은 무책임한, 언론의 윤리를 잊은 기자에게 명백한 책임이 있다. 또한 켈리 박사가 애당초 자국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을 일에 종사했다면 스스로의 목숨을 끊어야 할 정도로 사지에 내몰리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므로 그가 한 일과 죽음은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 당시 정부 역시 직접적 책임은 없을지 몰라도 무관하진 않단 얘기다.

👩‍💻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의 말로가 버려지는 것이 아니기를..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내 인생과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모든 이의 인생 7막은 저자의 아버지의 것과 같기를 바라며…

📚 "우리 대부분의 죽음은 (중략) 내 아버지의 죽음처럼, 우리에게 죽음은 인생은 살 가치가 있으며 우리가 사랑받았다는 것을 아는 가운데 조용히 온다."-p. 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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