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잘쓰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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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중에는 팀 프로젝트가 참으로 많았었다. 보통은 함께 수강하는 동기들과 한 팀을 이루곤 했지만, 가끔씩은 교수님께서 일괄적으로 팀을 만들어주시기도 하셨다. 가끔씩은 새내기들과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겪었던 고충은 다름 아닌 레포트의 형식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어쩌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것들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명시적으로 어떠한 합의도 하지 않은 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시간이 부족한 경우에는 각자 부분별로 분담을 해서 자료를 조사하고 작성하고, 레포트를 작성한 후 마지막에 한 명이 통합하는 방식을 취하곤 했다. 많은 어려움들이 따르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괴로운 것은 다름 아닌 일괄성의 결여였다. 각자가 매긴 번호가 다르고, 각자의 문체가 다르고(심지어 레포트를 구어체로 써내는 사람도 있었다.), 참고문헌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인터넷 뒤지면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자료를 그대로 복사해서 붙인 이들도 있었다. 누구나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우리에겐 기본이 없었다. 레포트를 처음 쓰던 그 순간의 당혹스러움은 나에게도 있었다. 어느 누구도 레포트는 이렇게 쓰는 거다 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서관에 있는 논문들을 몇 개 접해보면서, 그렇게 하나하나 스스로 갖추어 나갔을 뿐이다. 졸업하기 전에 이 책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레포트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은 논문 쓰는 기본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탈리아와 우리나라의 실정은 다르다. 그리고 저자가 인용한 대부분의 것들은 유럽적인 요소가 짙다. 나로서는 저자가 예를 들었던 수많은 참고사항들이 너무도 낯설게만 여겨졌다. 하지만 그런 것에 연연해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논문 잘 쓰는 방법에 눈 뜨고 싶은 것이지 유럽의 수많은 자료들을 검색하려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돋보이는 것은 단순한 방법론에 그치고 있지 않은 저자의 열정이다. 많은 이들이 물리적, 시간적 문제들을 들면서 정당방어를 하기 마련이다. 시간이 없어서, 집근처에 도서관이 없어서 등등. 하지만 저자는 그런 핑계들이 그저 핑계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증명해보인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그가 작성한 수많은 목록들은 읽는 이에게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인용카드와 연결카드, 독서카드까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작업이지만 오랜 시간을 들인만큼 그의 카드들은 논문 작성을 위한 모든 기초적인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물론 그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셀수 없이 많은 언어들에 익숙하며, 오랜 학문 경험은 그에게 자료정리 면에 있어서의 우위를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게으름을 정당화시켜주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겐 실력이 부족했음과 동시에 열정이 결여되었던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학의 경우,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으레 거쳐야만 하는 통과의례 마냥 여겨지기 때문에 학문적 열정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듯 싶다. 시험기간에 그저 밤샘 반짝 공부가 존재할 뿐이니 스스로 논문 쓰는 법을 익히기 위해 도서관에 틀어박혀 학위논문들을 뒤적이고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될지…

동시에 그는 실질적인 논문 작성법까지 이야기한다. 각주와 참고문헌을 다는 법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순하지만 늘 헤깔리는 법이다. 예전같았으면 각주 하나 첨가하기 위해 일일이 원고를 다시 작성해야 했지만, 누구나 컴퓨터를 이용하는 요즘 시대에는 손쉽게 작업을 할 수 있는 만큼 예전과 같은 어려움으로부턴 탈피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기초가 되는 형식을 알고 그 형식에 알맞은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다. 물론 내용면에 있어서의 독창성, 훌륭함도 중요하겠지만, 어떠한 형식도 갖추어지지 않은 논문 속에 담긴 독창성은 어느 누구에게도 어필할 수 없는 죽은 진리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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