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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코의 사적인 안주 교실 - 술이 술술, 안주가 술술
나카가와 히데코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2년 1월
평점 :
이 책의 미덕은 표지에 명시되어 있듯 '초간단' 이다. '술이 술술 들어가는 안주'를 쉽게, 맛있게, 빠르게 만들고 싶다면 이 책을 주저없이 추천한다.
매우 오래 전, '식사모임' 이란 것에 참여해 본 적이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이들과 "밥 한 번 먹자!" 해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그저 밥을 먹기 위해 모이는 것이다. 호스트는 홍대 쪽에 혼자 사는 20대 후반 여성이었는데, ( 그 때는 나도 20대였다 ㅋ) 지금으로 말하면 SNS 같은데 공지를 올리는 것이다.
"0월 0일 금요일 저녁 7시, 주메뉴 2-3가지, 이야기 주제는 무엇"
이런 식으로 날짜와 시간, 메뉴명 몇 가지, 그리고 식사하며 나눌 이야기 주제를 올리면, 관심 있는 이들이 미리 신청하고 입금하고 모이는 거다. 거의 매일 언론에 등장하는 요즈음의 신종 범죄들을 생각할 때 젊은 여성으로서 무척 대범한 발상인데, 그 때는 그런 것이 가능했다.
혼자 사는 집을 개방하고, 모르는 이 집에 가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밥 먹으며 수다 떨다 쿨하게 헤어지고, 다음에 또 끌리는 메뉴가 올라오면 한 번 더 가보기도 하고, 그러다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끼리 2차를 가기도 하고.
처음엔 맛있어 보이는 메뉴가 올라왔기에 마침 약속도 없고 해서 신청했는데, 의외로 거기 모인 사람들과 대화가 잘 통했고, 몇 살이고 무슨 일 하는지 등의 사전 정보가 전혀 없으니 선입견 또한 없이 또래들과 주제를 가지고 대화하는 것이 의외로 재밌기도 하고 새로운 자극이 되기도 했다.
요리책을 펼치며 10년도 더 된 그 추억의 식탁이 떠올랐던 건 메뉴명은 거창했는데, 의외로 가서 실제 먹어 보니 맛있는데 굉장히 쉽고 나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요리가 많았다는 거다. 그래서 속으로 '집 공개하고 자리 만드는 게 힘들지, 요리는 뭐 별거 아니네' 생각하기도 했고, 참가비와 재료비를 머리 속으로 비교해 보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내가 요리를 잘 하거나 그 후 그와 비슷한 요리를 집에서 흉내라도 내 봤었나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돌아보면 나에게 요리는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나 실제 하는 것은 매우 번거로워하는, 그러한 일이었다. (물론 나도 이젠 한 명의 주부이고 생존을 위한 세 끼는 어떻게든 근근이 해 나가고 있다) 확실한 사실은 요리라는 것은 정성과 마음이 담긴 매우 창의적인 작업 이라는 것이다.
저자 나카가와 히데코는 한국 남자를 만나 결혼해 연희동에 살면서 요리교실을 여는 선생님이다. 매달 150명의 수강생이 그녀의 요리교실을 찾고, 한 번 자리잡은 수강생이 5년이고 10년이고 자리를 내어 주지 않을 정도로 인기 선생님이란다. 아마도 요리 배우러 왔다가 수다가 늘고 술잔을 채우기 시작하면서 정이 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책 서두에 자리 잡은 히데코10문10답 중 마지막 질문, "히데코에게 술과 안주란" 이란 물음에 그녀는 "어떤 음식을 보든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그 음식과 어울리는 술이랍니다. 그리고 이런 저의 상상은 늘 행복해요." 라고 답한다. 인생의 맛을 아는 분이다.

책이 두껍진 않지만 '술 취해도 만들 수 있다는' 안주템이 50가지나 담겼다. 간단해도 맛은 포기할 수 없는 홈술 안주 15가지, 홈술의 품격을 높여주는 폼나는 안주 15가지, 그리고 뭘 좀 아는 애주가들을 위한 명품 안주 20가지다. 쉽게 말하면 난이도 상,중,하 안주가 고루 자리했다.

먼저 난이도 하, 간단해도 맛은 포기할 수 없는 홈술안주 가운데 '허브두부카나페'(P.26)가 눈에 띄었다. 조리법도 간단하고, 칼로리가 높지 않아 아버지 간식으로도 좋을 듯 해 바로 도전! 평소 오전 10시경 간단한 크래커와 차를 드리는데, 크래커와 히데코 선생님의 레시피인 두부, 두 가지를 사용해 만들어 봤다. 훌륭한 안주일 뿐 아니라 건강한 간식인 요리가 순식간에, 제법 보기 좋게 완성되었다.

집에 있는 재료를 활용하다 보니 주재료인 '허브'는 빠졌지만, 저당쿠키 위에 플레인요거트를 살짝 얹고 그 위에 좋아하는 재료를 얹어주었고, 두부 카나페는 잔치국수와 백김치와 함께 차려내니 훌륭한 점심식사 반찬이 됐다. 먹을 때 들기름을 드레싱처럼 끼얹어 먹으니 입맛이 절로 났다. ( 아무래도 두부김치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어 묵은 김치를 쫑쫑 썰어 올려보기도 했다 )

간단한 재료와 조리법에도 불구하고 맛나 보이는 여러 안주들에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넘기다, 무모하게 난이도 '상'에 도전한다. 냉장고에 '무'가 있는 게 떠올랐고, 평소 무나물 외에는 무를 주재료로 사용한 요리를 해 본 적 없는 나로선 어떤 맛인지 궁금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호기심으로 명품안주에도 도전해 본다. 무전(P.79) 이다.

히데코 선생님의 한식 스승의 집밥 레시피인데, 슴슴하고 간간한게 부담없는 안주로도 좋을 것 같아 안주로 승화시켰다"고. 무가 해장과 해독이 좋으니 술 많이 마시는 날 안주로 좋단다. 생각보다 크게 어렵진 않았다.
무우를 나박썰기로 잘라 들기름을 두른 팬에 볶다가 물과 국간장을 넣어 ( 물1컵에 국간장 큰1스푼 ) 5분간 졸이다 한김 식힌 뒤 부침가루를 묻혀 식용유를 두른 팬에 노릇하게 구워내면 된다. 졸인 무에 바로 가루를 묻혀 부치는 과정에서 '내가 과연 잘 하고 있는건가요 선생님?' 하는 의문이 살짝 들기도 했다.

다행히 비슷하게 완성되었고 (이것 역시 전적으로 내 판단이다) 놀라운 것은 맛이 있었다! 히데코 선생님이 추천한 어울리는 술에 소주가 있어서 아버지에게는 커피와 함께 간식으로 드리고 나는 냉장고 구석에 숨겨뒀던 소주 한 잔을 곁들여봤다. (낮술인 것은 비밀!) 살짝 바삭하며 담백한 맛으로 시작해 느끼하지 않은 뒷맛이 좋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술이 술술, 안주가 술술, 안주가 맛있어 한 잔이 두 잔된다"는 연희동 히데코 선생님 댁에 놀러가고 싶어진다. 한 편 슬며시 걱정도 밀려온다. 이러다 초저녁 잠 많은 아버지 주무시러 들어가시면 조용히 책장을 뒤적여 안주를 제조해 혼술하는 데 재미들리는 건 아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