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년과 새와 관 짜는 노인
마틸다 우즈 지음, 아누스카 아예푸스 그림, 김래경 옮김 / 양철북 / 2021년 4월
평점 :
평화롭던 마을에 전염병이 돌았다.
아름다운 마을이 가지고 있던 활기참이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의사들이 쓰러졌다.
넘쳐나는 시체를 처리할 수 없어 바다에 던질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가 발발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다면 이야기의 시작이 생생하게 전달되어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가 대 유행하면서 현실 속에서 내가 보았던 일들이 책속에 고스란히 적혀있으니 책을 읽기 시작한 순간 눈앞에 그려지는 장면을 보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래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는구나.
코로나 전에는 전염병 관련 이야기를 읽은 후에는
‘아, 사람들이 많이 힘들었겠다. 많이 무서웠겠다.’
의 얄팍한 동정심(?)만 발동했다면
지금은 그 사람들이 느꼈던 공포감을 내가 감히 몇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는 사람들이 주문한 가구를 만들고 저녁에는 아이들을 위하여 장난감을 만들었었으나 전염병이 지나간 후로는 관 짜는 것이 일상이 된 알베르토에게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시장이 황금참나무로 만든 관을 주문하고, 가족이 없던 한 여인의 장례를 치루는 것으로 이 소설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시장이 자신의 관을 만들기 위해 선택한 황금참나무는 황소만큼 튼튼하지만 깃털처럼 가볍고 뿌리까지 통째로 캐서 바다에 집어 던져도 둥둥 떠서 아프리카까지 떠내려가는 나무라고 소개가 되어있었다.
시장이 그 얘기를 어찌나 지겨우리만큼 해대던지(정작 시장 자신은 황금참나무의 정체를 알고 나중에 놀라운 충격을 받게 되지만).몸집이 큰 자기 치수를 알려주기 싫어서 얼렁뚱땅 치수를 얘기하는 바람에 커다란 관이 만들어졌고, 어차피 땅에 뭍일 관에 보석 장식은 웬 말이냐고!!
하!!
그러나 역시 작가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던 것이었다.
정말 앞뒤가 조금의 오차도 없이 착착 들어맞는 놀라운 전개였다.
마법 같은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그것은 마법인 듯 마법이 아닌 듯 마법 같은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맞이하는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마법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운명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좋을까?
티토에게 알베르토가 나타난 것, 알베르토에게 티토가 나타난 것. 이것은 과연 운명일까?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삶이 행복해지는 순간일 것이다.
[소년과 새와 관 짜는 노인] 책의 특이한 점은 그림과 글씨가 파란색으로 인쇄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림은 그렇다 해도 글씨가 파란색으로 인쇄된 책은 우리나라 도서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라 그런지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에는 살짝 어색했다.
그러나 소설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파란색으로 인쇄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분위기와 파란색이 너무나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내가 참 닳을 때로 닳은 어른이구나라는 것을 느꼈던 점이.
내 머리 속에서는 이야기의 끝이 [셋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짜 셋이 이야기 속에 등장한 책 속에 나오는 산으로 갔다면 나중에는 어떻게 되는 건데?
시간이 흘러 노인이 생을 마치게 된다면 남아있는 소년은 어쩌지? 라는 생각이 밀려오면서 걱정이 확~! 들었다가, 아!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으면 소년도 어른이 되어서 제 앞길 제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결론을 내게 되더라.
소설은 소설일 뿐 너무 깊게 현실에 덧대어 생각하려 하지 말자.
책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제일 먼저 느꼈던 포근하고 희망에 부푼 느낌만 기억하자.
너무 현실적인 걱정일랑 던져버리고 말이다.
즐길 수 있는 것만 충분히 즐기자.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끝나면 나도 알베르토와 티토처럼 희망찬 나날을 보낼 수 있겠다는 위안을 받으며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