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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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회에서 개인주의자는 자신만 알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쉽다.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의 개념이 혼용되어 사용되다 보니 생기는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사회 공동체의 이익과 질서를 어지럽히는 저 혼자만 아는 아웃사이더쯤으로 취급된다. 학교나 사회의 기업 조직 내에서도 이런 인식이 팽배하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현재 사회의 구성원이 불행한 이유는 고립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을 위해 존재해해야할 집단이 개인의 행복을 저해하고 있다고 본다. 집단 내에서의 서열과 경쟁, 비교 속에서 개인은 행복해 질 수 없다. 때문에 불행의 원인을 전근대적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이야기한다. 이러 점에서 [개인주의자 선언]은 현재 사회나 개인의 문제에 대해 시사 하는 것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가볍게 쓰인 에세이 같은 글 같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저자의 생각은 쉽게 넘길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 판단된다.

저자 문유석은 현재 인천지방법원 부장 판사이다. 서울대 법대 졸업, 사법고시 합격, 하버드 로스쿨 법학석사 등 사회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소개란만 본다면 사회 기득권에 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판사유감, 21세기 북스]을 통해서 보인 법이 아닌 인간에 대한 애정과 소박한(놀기 좋아한다는 점, 그리 고상하지 않은 취미생활 등) 모습은 대중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다양한 글쓰기를 통해 길러진 솜씨인지 몰라도 글이 쉽게 느껴져, 사는 것이 여러 의미로 전혀 다른 사람이지만 친근하게 느껴지는 신기함이 있다.

 

[개인주의자 선언]은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 만국의 개인주의자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2부 타인의 발견. 3부 세상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이다. 책의 중심 키워드인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다른 개념으로서 주체로서의 나이며 때문에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는 개념이다. 책의 전체적인 구조는 개인에서 타인으로 다시 사회로 논의가 이뤄진다. 현재 사회의 문제를 패거리 집단주의로 보는 저자는 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음을 토로한다. 이 사회는 집단의 이익 앞에 다른 집단이나 개인의 삶을 짓밟는 것이 당연시 된다. 타인들이 모여 이룬 집단에서 동료는 없고 집단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그 집단에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비교하며 동료성은 파괴된다. 그러니 개인이 행복할 수가 없다. 때문에 저자는 개인주의를 선언한다. 개인이 주체로 설 때 타인을 볼 수 있기 때문이리라. 내가 소중한 만큼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사회를 바라 볼 수 있다. 사회야말로 함께 살아가는 테두리이기에 당연한 논리적 전개다. 글 속에서 독자는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 눈치 때문에 말하지 못하고 집단에 기름처럼 떠다니며 섞이지 못해 결함 있는 인간으로 스스로를 취급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나는 개인주의자입니다.’라는 우리 사회에서 용기 있는 선언을 대신해준다.

 

이 책의 좋은 점은 단순히 개인주의자를 선언하고 그 이유와 좋은 점을 주저리주저리 밝히는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의 개인주의에 대한 접근은 사회문제를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에세이 형식을 탈피한 개인주의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나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의 시선은 단순히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회에서 개인주의자가 썩 괜찮은 포지션이고 할 만하다고 외치거나 날 가만히 좀 두세요하는 곳에 있지 않다. 오히려 집단을 넘어선 올바른 연대 즉 공동체 구성의 바른 방향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병폐가 세월호 사건 때 압축해서 나타났다. 천박한 자본논리에 입각한 사회 관계망은 민낯을 드러냈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했으며, 원초적인 분노만 남아있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집단의 논리에서 벗어나 사회의 문제를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문제해결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후 문제 해결도 쾌도난마의 혁명적 발상이 아닌 작은 것부터 세세하게 고쳐가고 해결해가는 자세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본질이나 구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단언은 이념 대립에 골똘하거나 이용하는 이들이 판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의미 있게 다가온다. 저자의 여러 주제에 대한 생각을 접하며 칼 포퍼의 열린사회의 논의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글의 전개와 문장 전달력이 독자를 생각하고 썼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짤막하게 주제를 다루지만 단어나 문장의 사용이 매끄럽고 간결하게 구성 돼 있어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 아니다. 읽기 쉬운 글이 어렵게 쓴 글이라는 격언을 고려할 때 저자의 글쓰기 내공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인상 깊게 본 구절은 다음과 같다.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거꾸로 개인의 행복의 잣대가 되어버리는 순간, 집단이라는 리바이어던은 바다괴물로 돌아가 개인을 삼킨다.(22) /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이라고 생각한다.(23) / 우리가 더 불행한 이유는 결국 우리 스스로 자승자박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33) / 인정투쟁의 소용돌이. 결국 독백은 외침이 된다.(41) /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함부로 간섭하지 않고 배려하는 성숙한 개인주의 문화의 사회라면 이들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집단의 강요 없이, 자기가 스스로 선택한 취향이 맞는 작은 인간관계들의 고리 속에서 말이다.(57) / 우리 대부분은 노동자다. 판사도 마찬가지다. 노동의 대가로 살아가는 사람은 모두 노동자다. 그래서 노동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123) / 이 사회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모르는 것이야말로 수치를 모르는 일 아닐까.(131) /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코끼리를 먼저 정확히 이해하고, 거창하고 근본적인 해결책만 고집하지 않고 당장 개선 가능한 작은 방법들을 바로 적용했고, 작지만 끊임없이 균열을 일으켰다.(163) / 미래를 스스로 공동구매하지 않으면 강제 배급받게 될 테니 말이다.(194) / 있는 것을 그대로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출발점이다.(201) / 자기 행동의 의미를 성찰할 줄 모르는 무지야말로 가장 위험한 야수인 것이다.(235) / 도그마에 빠지지 말고, 유토피아적 환상을 경계하며, 더디더라도 분명히 내일은 오늘보다 낫게 만들 수 있다는 담대한 낙관주의를 가지고서 말이다.(265) /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279)

 

평상시 학교나 회사를 포함한 사회 여러 조직에서 불편함을 느끼던 이들에게 단비와 같은 책이다. 저자는 개인주의자를 자처하지만 우리 사회에 대한 애정과 비판을 가하고 있다. 쉬이 생각하고 넘길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표지에 적혀 있는 질문은 저자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우리 모두의 질문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와 다른 타인을 존중해야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가끔은 내가 양보해야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때로는 내 자유를 자제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타인들과 타협하고 연대해야하는가.

 

사회의 여러 이슈를 보며 갑갑한 마음이 드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이 조금이나마 위로와 삶의 지혜를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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