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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 반대한다 - 왜 우리는 이기기 위한 경주에 삶을 낭비하는가?
알피 콘 지음, 이영노 옮김 / 산눈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 자연계는 본질적으로 경쟁적이다.
2. 인간은 경쟁적이다.
3. 그러므로 인간의 경쟁 역시 본질적이다.
경쟁은 타고난 것인가?
우리는 자연계의 생존 경쟁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동물들을 보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정글과 같이 경쟁적이라고 생각하며 감정이입을 한다. 경쟁에서 낙오되면 죽는 것이다. 때문에 치열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승리해야한다.
이러한 우리의 통념에 반하는 책이 바로 ‘경쟁에 반대한다’이다. 우리는 지구상의 생물 들이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모습을 수없이 봤으면서도 적자생존의 대원칙이 모든 법칙의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며 판단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잘못된 신화에 얽매여 우리는 경쟁을 학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경쟁은 타고 난 것이 아니라 학습된 것이며 경쟁을 통해 개인과 사회가 발전한다고 믿는 것은 어떠한 근거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교육에서도 이점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는 아이들이 경쟁을 좋아하기 때문에 게임을 도입하거나 상벌제도를 적용하여 학생들을 통제한다. 하지만 이것은 효율적 필요성과 경쟁을 당연시 여기는 교사 개인의 성향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일 뿐이다. 아이들은 경쟁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배워왔으며 협력하는 것을 해본 경험이 없을 뿐이다. 문제는 사회와 경쟁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교사가 있을 뿐이다.
2. 경쟁을 통해 우리는 배울 것이 있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경쟁의 효과는 생산성, 흥미, 성장 등을 들 수 있다.
생산성은 말 그 그대로 경쟁을 통해 학교 교육이나 기업에서 생산성이 증가한다는 논리이며 우리 모두가 쉽게 끄덕이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경쟁의 도입은 생산성의 향상을 말한다. 하지만 그 반대되는 사례를 충분히 접한 우리에게 저자의 주장은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경쟁의 목표는 좀 더 잘하는 것이 아닌 상대를 이기는 것이 목표가 되기 때문에 그 일에 참여하는 목적이 변질되어 경쟁이 목적이 되는 상황을 초래하기 쉽다. 때문에 저자는 협력적 사고와 작업이 더 생산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스포츠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체육활동이다. 문제는 우리가 학생들에게 투여하는 게임이 대부분 경쟁적이라는데 있다. 경쟁적 게임의 특징은 승자와 패자가 나뉜다. 기분 좋은 패배라는 것은 진실을 은폐하는 말 바꾸기 장난질에 불과하다. 승자가 상대방을 제압했다는 성취감을 얻을 때 패배자는 자존심에 상처입고 다음 기회를 노릴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스포츠는 개인의 인격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에 가장 유용한 사람을 키우기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경쟁은 인격을 성장하게 하는가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현대 우리 교육의 문제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자신을 알고 더욱 노력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든다고 하지만 개인 받는 자존심의 상처와 불안감은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 뿐만아니라 신체적 문제도 야기한다. 게다가 결과지향적 사고와 양자택일의 논리를 강요하게 된다. 우리 사회의 병폐와도 닿아 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실 순응적 태도와 획일성을 가져온다. 경쟁에 참여하며 승리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공식을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경쟁이 다양한 사고와 방법을 가져올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최적화된 경로를 개인에게 강요하기 때문에 획일성을 불러 올 수밖에 없다.
3. 경쟁의 대안은 협력이다. 모두 동의?
이 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할지라도 경쟁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도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전형적인 정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사회와 개인의 변화. 동시에 할 수 없다면 누가 먼저 시작해야하는가.
예전 사교육의 문제가 심하다고 이야기할 때 ‘대한민국이 12시 땡 치면 모두가 사교육을 그만둬야 해결할 수 있다’고 하며 농을 한 적이 있다.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은 모험을 요구한다. 하지만 누가 그 길을 쉽게 갈 수 있을까. 쉽게 대답할 수 없기에 현재 경쟁사회의 모습이 빠져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과 같이 보인다. 누구나 문제점을 알지만 스스로든 타의로든 나오지는 못하며 불편해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