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악당 white wave 1
최재원 지음 / 백조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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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원의 단편소설은 아메리카노를 마신 후 입안에 쓴 침이 고이고 혀끝으로 텁텁함을 만지작댈 때쯤, 시원하고 달콤한 자두에이드를 쭉 들이켰을때의 청량감으로 읽혔다. 한 모금, 한 모금 개운한 음료를 마시듯 한 편, 한 편 흥미진진한 목마름으로 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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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새끼!"
김 대리의 뻔뻔하고 야비한 변명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드디어 '개새끼'가 튀어나와 버렸다. (161p)

[개새끼를 다루는 법]은 개 같은 새끼에게 '개새끼'라고 질러버리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김 대리에게 맞았던 기억때문에 반항 한 번 못하고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한 주인공은 늘 속으로만 되뇌었던 "개새끼"를 아주 중요한 회의시간에 그만 입밖으로 내뱉어버렸다. 통쾌한 시간!!! 심장 졸이는 시간도 잠시, 부드러워진 태도의 김 대리를 보고 주인공은 새로운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후련함에서 오는 너그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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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표정에는 증오와 허탈감, 고통, 그리고 간절함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었다. 그의 눈빛은 절대 존을 혼자 보내지 않을 것처럼 결사적이었다. 존의 눈동자는 한순간 번민으로 흔들렸지만 이내 매섭게 변했다. 존은 철모를 벗어 들어 눈을 질끈 감고 조원의 머리를 내리쳤다. (184p)

숲속의 반짝거림은 조금씩 강도와 밀도가 세졌다. 번쩍거리는 빛 하나가 점점 커지더니 순식간에 머독(존)에게 달려왔다. 빛은 머독의 복부를 관통했다. 머독은 끽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전망대에서 떨어져, 죽었다. (192p)

[아무도 모르는 악당]은 '존'의 입장에서는 주인공이지만 영화라는 전체 내용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소설의 처음, 존의 역할은 전쟁 영웅이며 가장이며 남편, 아빠의 역할로 전형적인 주인공의 역할이지만, 한순간 누구에 의해 무엇때문에 죽는지도 모르는 엑스트라로 전락하면서 끽소리도 내지 못한 체 죽어버린다. 존의 삶이 화면 바깥으로 너무 사소하게 사라져버린다.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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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가 혹성에서 배운 것에서 철수가 속아넘어간 상황에서는 짜증도 나고 화도 났다가 대한UFO교에 나오는 부부처럼 허탈함을 잊고 부부가 다정하게 장난치는 모습에서 안정감도 받는다. 에라 모르겠다. 또 죽자에서는 윤회의 틀을 마음대로 깨버리는 자유로움에 인생의 무게감에서 조금 해방된다.

여덟 편의 소설 모두 우리 인생의 허를 찔린듯 당황스러우면서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찌질하고 억울하며 허탈하고 반전이 있는 삶이 들어있다.

어찌보면 꼬질꼬질한 인생처럼 생각되는 허무주의가 발견되었다가도 반전이 거듭될때마다 희망이 보인다. 소설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리얼리티에 논픽션 같은 섬뜩한 솔직함이 있어서 짧지만 굵게 울림을 준 책이다.

최재원의 소설을 읽고 다시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우리네 모든 인생은 각자의 내러티브로 세상을 움직이고, 역사라는 거대 서사를 만들어낸다는 진실이다. 용기를 내서 서로 도우며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내자.

*백조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읽고 제 주관대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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