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門
김혜정 지음 / 화남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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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스스로 원해 떡방아 찧고 인간이 되다
토끼는 인간이 되고 싶어 했다. 그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다. 하늘도 그것을 알았는지 달나라의 신선으로 하여금 토끼에게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바로 천 일 동안 계속해서 떡방아를 찧어야 한다는 것. 이제껏 어떤 동물도 그것을 하지 못했을 정도로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토끼는 하겠노라 말한다.

결국 토끼는 기어코 천 일, 아니 그 이상으로 떡방아를 계속해서 찧고 마침내 소원을 성취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달나라 신선은 화려한 축복은 해주지 못할망정 인간이 되면 참고 견뎌야 하는 일도 많으니 놀랍거나 두렵다고 해서 인간 세상으로부터 도망치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 네가 선택한 일이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말이다. 토끼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 어쨌든 인간될 생각에 마냥 신날뿐이다.

토끼는 소원대로 인간의 자식이 된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지극정성으로 인간이 되길 꿈꾼 어떤 짐승은 왕이 됐다고 하는데 토끼는 지극히 평범한, 중산층이라고 믿지만 실상은 중산층이 아닌 가정집의 장녀로 태어난다. 이름은 윤달. 사람들은 '달이'라고 부르는데 아직 인간물정 모르는 토끼는 그저 신나서 이리 뛰고 저리 뛸 뿐이다.

하지만 달이는 초등학교에 들어선 순간부터 마냥 좋아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불여우라고 불리는 돈 밝히는 선생 밑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이다. 뿐인가. 가장 친한 친구 현지가 부잣집의 예쁜 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다가 지울 수 없는 상처에 아파하는 것을 알아야 했고 무능한 아버지와 악착같은 어머니의 부부싸움을 몇 번이나 들어야 했다. 스스로 원해서 인간을 됐던 달이지만, 어린 나이에 인간이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된다. 물론 성장해갈수록 더 험난할 것이라는 예감도 하면서 말이다.

현실을 고스란히 옮긴 장면들로 가득한 <달의 문>
성장소설하면 으레 외국의 소설들이 떠오르던 시기가 있었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험난한 역사를 걷다보니 국내의 성장소설들은 성장소설답지가 못했다. 이념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독재로 얼룩진 현실에서도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나마 근근이 시골을 배경으로 한 성장소설들이 있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다루는 내용은 시골 일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근 몇년 간, 반갑게도 국내에서 성장소설다운 성장소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 혹은 이미 성장한 어른들이라도 지나간 날을 돌아보고 자신이 서 있는 자리까지 돌아보게 해주는 훌륭한 성장소설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김혜정의 <달의 문>도 그러한 맥을 잇는 '성장소설'이다. 하지만 단순히 성장소설이라 말하기에는 아쉽다. 최근 몇년 간 등장한 어느 성장소설에 못지않게 성장소설로서의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는 '기대'되는 성장소설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달의 문>을 기대되는 성장소설이라고 말하게 하는 걸까? 작품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현실을 정확하게 묘사한 장면들이다. 토끼의 전생을 시작으로 한 것에서 우화적인 성격을 강하게 묻어나지만 달이가 성장해가면서부터 우화적인 것은 사실적인 것이 되고, 그에 따라 현실적인 색깔이 강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렇기에 <달의 문>이 주제를 향해 나아가는 길은 바윗돌 하나 없이 매끄럽기만 하다. 과장해서 말하면 지은이가 그 또래의 아이들을 찾아다니고 같이 합숙을 하면서 지켜본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그 또래의 고민이나 놀이, 문화 등을 적절하게 짚어내고 있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부모의 이혼, 사춘기의 반항, 친구와의 갈등과 이별 등의 소재는 여타 성장소설에서도 단골로 등장하는 것인데 <달의 문>은 그 소재들을 이루는 장면들 대부분이 현실성을 톡톡히 갖추고 있어 느껴지는 감이 다르다. 더불어 성장소설의 승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것이 어른이 얼마나 어른이 아닌 척 하면서 쓸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달의 문>은 그것 또한 훌륭하게 넘어섰다.

어린아이가 나이답지 않게 관념적인 독백을 늘어놓거나 아이가 애늙은이 같은, 실상은 작가의 색에 묻혀 주인공의 색이 바라게 되는 그런 우도 보이지 않는다. 성장소설로서 너무 실감이 난다고 해야 할까? 물론 이것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일일 테다.

낙원에서 험난한 벌판으로 발을 내딛는 청소년들을 위하여
이러한 외면뿐만 아니라 <달의 문>의 내면 또한 돋보인다. 작품은 달이가 부정적으로 여기던 것이 성장해감에 따라 긍정적으로 바뀌는 경우를 보여주는데 그 변화가 교훈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많은 성장소설이 교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주인공이 너무나 뻔한 과정으로, 혹은 계몽적인 색깔 속에서 성장해버린다는 것인데 <달의 무>에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성장의 계기 등에 대해 지은이는 달이의 말처럼, 혹은 그 또래의 아이들 기분처럼 이유를 '그냥'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놓는 등 교감하기 위해 애쓴 티가 역력하다. 심지어 교감을 위해 지은이는 단어 사용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 가령 초등학생 때는 짧고 쉬운 단어들로 구성된 문장들이 등장하는데 달이가 성장해갈수록 문장의 단어들도 그 수준에 맞춰 변화해간다. 이쯤 되면 교감을 위한 지은이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그러면서도 지은이는 중요한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편안한 낙원을 벗어나 고통도 겪어야 하고 상처도 받아야 하는 벌판으로 나아가는 달이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주제의식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초반부에 등장한 달나라 신선의 말을 따르듯 달이는 스스로 선택한 것에 대하여 고난이 있어도 참고 견디는데 지은이의 노력 덕분에 그 모습은 어렵지 않게 <달의 문>의 주제 의식을 전달해주고 있다.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다는, 성장소설답지 않게 엉뚱하게 시작한 <달의 문>. 시작은 엉뚱해보여도 결코 내용은 엉뚱하지 않다. 그리고 달이가 성장해갈수록 알 수 있겠지만 엉뚱해 보이는 전생이야기는 놀라운 사실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누구나 스스로 원해서 인간이 되었고, 그런 이에게 즐거운 전생처럼 즐거운 다음 생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엉뚱해 보인 그것이 돌이켜보면 심상치 않은 성장소설의 문을 여는 심상치 않은 문지기였음을 알게 되리라.

'달의 문'을 열고 나면 무엇이 있을까? 토끼가 있고 달이가 있다. 그네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기다리고 있다.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까? 어른들을 두려워하고, 세찬 도시 바람에 흔들리어 금방이라도 주저 않고 싶은 아이들을 위로해주려고, 같이 웃고 놀려고 기다리고 있다. <달의 문>, 그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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