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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의 사람 - 어느 소설가의 택배일지
정혁용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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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의 사람
"이 소설은 ‘멋지다’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멋지다의 3배 정도의 쎈 느낌으로 ‘까리하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문장들이 간결하고 힘이 있고, 일단 재밌다."
재작년 정혁용작가님의 [침입자들]을 읽고 적은 리뷰의 일부다.
이후 [파괴자들]을 읽고 완전 팬이 되어버렸는데 이번에 작가님의 첫 에세이가 나왔다.
보통 소설을 쓴다하면 ‘어디 영감이 떠오를 만한 곳의 작은 방에서 수개월 혹은 수년동안 칩거하며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내지 않나?’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작가님은 메인(경제적인 부분으로 따졌을 때) 직업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택배기사다.
택배를 돌리며 틈틈이 핸드폰으로 소설을 쓰기도 했다니.
저세상 스킬이 아니고서야 이것이 가능한가 싶기도 하다.
소설가로서의 삶, 그리고 택배기사로서의 삶
그 일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언제나 느끼지만 소설가들의 에세이는 좀 다르다.
짧지만 굵고, 가벼운 듯 묵직하다.
평범한 한 아저씨의 모습 속에서 소설가와 택배아저씨의 모습을 만나고 거창하진 않지만, 다사다난했던 생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깨달음의 철학들 또한 마음을 적신다.
“에이, 형님. 이 바닥에는 예술하는 인간들만 있어요. 형님은 그 축에 끼지도 못해요. 전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사람을 위로하면서 총살하는 재주가 있었다.
‘음, 좀 배워야겠는데.’ 싶었다.p_196
그리고 여전히 정혁용 작가님만의 시크한 개그에 여러번 빵빵 터지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의 마지막, 태평양의 심연에서 건져 올려진 키보드로 써서 그런지 글발이 태평양처럼 깊고 광활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세 번째 소설의 도입부를 만나볼 수 있었다.
벌써 재밌음이 느껴지는 세 번째 소설, 기다려봅니다!!
부모가 원하는 인생에 맞추기 위해 아등바등했을 뿐이다. 그래서 실패한 적도 없다. 실패는 내가 원하는 길에서 자신만의 성취를 못하는 거다. 남따라 사는 데서 오는 건 낙오나 좌절이지 실패는 아니다. 좌절이 많았던 젊은 날이었다.p_14
고약한 성질머리가 어지간해서는 고쳐지지 않았을 텐데 저질 체력의 아저씨라 몸과 마음이 금방 소진되어 버렸으니까. 화의 끝을 본 거다. 그리고 그 끝에서 본 건, 화를 내지 않는 게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란 사실이었다.p_32
‘아, 천국의 문은 지옥 뒤에 있는 거구나.’싶었다. p_115
인생은 선택할 수 없다. 인간은 매일 매 순간 주어진 삶을 살아낼 수 있을 뿐이다. 오직 해석이 있을 뿐이다. 나태로 삶을 사느냐, 열정으로 사느냐, 다만 삶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질 것이다. 해석의 뒤에 자기만의 삶의 의미가 따라올 것이다. p_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