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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바보들이 사는 마을, 켈름
아이작 B. 싱어 지음, 황명걸 옮김 / 두레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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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는 건 전쟁이라고 한다. 반칙왕에서 부장이 세상이 정글이라고 한다. 적자 생존이라고. 강한 자만이 살아 남는다고.사회적 다윈주의를 주창하여 열등한 민족, 인종은 부적자라서 다 없애 버려도 된다는 그 이론이 황인종의 입에서 자연스레 나온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켈름에 사는 현자들은 전쟁을 하지 않는다. 아니, 더 치열한 전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손해보고 잃어 가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채워가는 깨진 항아리 물붓기식 전쟁 말이다. 사실 전쟁 같은 잔혹한 단어와는 전혀 상관없고 글의 내용 또한 그렇기는 하지만.

아이작 B. 싱어는 난해하지도 무겁지도 않은 말씨로 따뜻한 동화를 들려주었다. 자극적인 것들에 길들여져서 담담하게 느껴질수도 있지만 너무나도 담백하다.

슐레밀(행복한 바보)들처럼 잃어가면서 더 채워가는 이들을 보면 지금 현실을 사는 슐레밀들( 힘들게 사는 착한 이들)도 이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부적자 생존 할 수 있다면. 그 이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잉어를 물에 빠뜨려서 익사 시킬 생각을 하고 눈을 밟지 않으려고 탁자에 한 사람을 올리고 네명이 눈을 밟고가는 순수하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과연 복잡하고 잡다한 현대인이 더 바보같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았다.

가끔 아주 많은 주변의 사람들이 악해야 잘 산다. 너무 착하면 이용만 당한다고 말한다. 진실은 이렇게 외줄 타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진실은 그 줄을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슬아슬해도 마음속의 행복은 떨어지지 않을테니까.

거울이 들어오면서 생기는 헤프닝이 참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거울을 보며 자신의 단점만 바라보고 상처받는 그들과 얼짱이니 몸짱이니 하면서 외모에만 신경쓰고 내면은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 '하늘과 해와 달과 별 그리고 땅과 거기 있는 숲과 풀밭과 강과 나무를 볼 수 있는데 왜 자기만 쳐다보지?'라고.

아름답고 감탄 할 수 있는 것들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돌아볼 수 없는 우리에게 교훈이 될 수 있는 책이다.

현실의 슐레밀 그리고 슐레밀이 아닌 이들까지도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 말처럼 되었으면 한다. '살아서 아름답고 즐거웠던 그들은 죽어서도 헤어지지 않았다.'

세상은 전쟁이라고 말하기엔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런 것들을 말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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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찬 예찬 시리즈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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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찬을 읽은 것은 병원에 입원 해 있을 때였다. 친구가 문병오면서 선물로 주었었는데 그 친구는 내용은 모르고 이 책을 나에게 줬다는 것도 모르지만 아마 무의식적으로 나에게 삶에 대한 예찬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표지도 예쁘고 제목도 괜찮은 이 책을 선물 한 것 같다.

읽기가 참 힘든 책이었다.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내 배경지식이 없어서겠지만 다소 문장의 흐름이 난해한 부분이 없지 않은 것 같았다. 미국 코미디를 볼 때처럼 웃음 소리가 가득한데 왜 사람들이 웃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것처럼 다소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문화적인 차이로 이해 할 수 있었다.

책은 두껍고 재미있는 내용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어서 읽기는 참 힘들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서 이 책은 나의 마음속에 들어왔다. 힘들었던 만큼 기쁨도 넘쳤다.

오랜 삶을 살아온 노작가의 통찰이 눈부셨다고 생각된다. 특히 나무 두 그루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나무 두 그루를 나란히 심어 놓으면 서로의 반대 방향으로 자라난다는데 그 이유는 서로를 증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사람도 비슷하다고 하는데 공감대가 형성 되었다. 백화점이나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에 가면 쉽게 피곤해지는 것도 사람들이 내뿜는 무의식적인 증오심 때문이라는 생각이 참 그럴 뜻하다고 생각되었다.

대도시에서 주위 사람을 경쟁자로만 생각하고 뒤쳐지지 않으려고 쉴 새 없이 달려가는 우리에게 노작가는 자신의 삶처럼 '옆으로 나오시게'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루키의 소설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어찌보면 비슷한 말을 더 따뜻하게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하루키는 공상과 허무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바쁘고 급하게 살면서 상실의 늪으로 빠지지 말라고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면 미셸 트루니에는 삶이란 오솔길을 도란도란 걸어가는 노부부의 뒷모습처럼 쉬엄쉬엄 걸어가는 길과 같으니 주위를 둘러보라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주변의 사소하고 미묘한 변화에 눈 돌리라고.

병원에서 그리고 집에 돌아와 쉬면서 이 책 때문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심각한 이야기들 속에서 때로는 미소짓게 하고 때로는 씁쓸하게 곱씹어 보게 하기도 했다.

마음 밖에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갈망하던 나에게 이 책은 말해준 것 같다. 내가 원하던 것은 내 주변에 그리고 내 마음 속이 아니라면 그 근처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어떤 것에도 결함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예찬할 가치가 있다. 삶의 예찬이 부족한 이라면 한번 큰 맘 먹고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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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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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접한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뇌도 나무와 같이 이번에 구입하게 되었는데 베스트셀러라고하니까 먼저 읽었다. 아주 오래전 개미를 처음 읽고 나는 정말 섬찟했다. 책의 내용이 아니라 사람의 머리에서 이토록 기발한 생각이 나올수 있을까 하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무는 그것에 비하면 다소 실망스럽기도 하고 어느 정도 기대를 덜고 보니까 그런대로 생각의 깊이가 느껴지기도 했다. 별로 맞지 않는 비유일지는 모르지만 어른들을 위한 이솝우화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달짝지근한 전체주의라는 글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언론이 대중을 집단적,전체적으로 획일화 시켜가고 있는 것을 작가는 비웃어 주고 싶었나보다. 사실 내가 대학 시절부터 가장 경계 했었던 말은 집단이나 전체 이런 말이었다. 수의 신비나 그 주인의 그 사자와 같은 이야기에서 작가의 안타까운 심정이 느껴진다. 여론을 조작하고 대중을 그 틀에 맞춰갈려는 생각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토록 비웃고 풍자했지만 그 달짝지근한 전체주의의 혜택으로 자신의 책도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으로
더욱더 잘 팔리고 있느니까.

그래서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좋기도 하고 때로는 의문스럽기도 하다. 그는 변하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인가를 주장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냥 기발하고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으로 자신의 소임은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매우 개성적이고 주관적인 이야기들을 주관이 배제된 듯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것이 매력이기도 하고 왠지 아쉽기도 하다. 그로 인해서 땅 아래 있던 것들도 돌아볼 수 있었고 시너지 효과로 땅 위의 인간 아닌 것들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었다. 이번 나무를 통해서 인간 내면과 이제 진정한 현재의 일들이 많이 되버린 미래 사회의 문제점들을 통찰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이 책에는 나무가 주는 따뜻함은 없다. 푸근한 나무 밑을 생각하면서 이책을 선택한 사람은 다소 마음이 무거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시골 장터 입구에 대형 백화점이 들어선 것 같은 삭막한 느낌이 계속 드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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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 High Class Book 41
장 자크 루소 지음, 민희식 옮김 / 육문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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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정말 슬픈 책이다. 서론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지금의 나의 이 주장들이 지금은 매우 새로운 것이지만 나중에는 내가 말한 교육의 방법들이 구태의연한 것이 되기를 바란다는 그런 비슷한 말이 있다. 내가 가르치면서 느꼈던 점은 그의 이런 이야기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 모두는 아이들을 가두고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 한다. 신의 손에서 우리에게 온지 얼마되지 않아 오히려 우리 어른들이 그들에게 배울 것이 많은데도 말이다. 아이들은 자연과 멀리 떨어져서 경쟁과 억압 속에서 발전한다기 보다는 퇴보하는게 요즘의 실정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교육에 관련된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책은 아니다. 정말 나는 아이들의 부모님들께 이 책을 권유하고 싶다. 물론 소설이기도 하고 루소도 사람이기 때문에 맞지 않는 부분도 없지는 않으나 약간의 오류를 인정하더라도 에밀은 읽을 가치가 있다. 루소는 이런 말을 했다. 가난한 아이와 부자 아이 중 자신은 부자 아이를 가르치고 싶다고. 왜냐하면 가난한 아이는 가난을 통해 너무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에게 누가 그렇게 물어본다면 나는 가난한 아이를 가르치겠다고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교육에는 희망이 있음으로 그 희망을 말해주기 위해서.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루소는 아직도 우리에게 계속 이야기 해 주고 있다. 수레바퀴 밑에서 신음하는 아이들이 있는 한 우리는 루소와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실천에 옮기도록 노력해야 한다. 실제적으로 교육에 적용했을 때 쉽지가 않다. 불가능하게 느껴질때도 있다. 체벌이나 강압을 하지 않기란 우리 교육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 비슷하게 느껴 질수도 있다.

하지만 체벌이나 억압된 분위기에서 배운 것들은 쉽게 잊혀지고 왜곡되기 십상이다. 우리 나라가 진정한 헌법 제1조의 민주 공화국이 되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외적인 자연으로 돌려 보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적인 자유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화주의란 권력이나 불합리를 용인하느니 차라리 무질서를 택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우리 아이들이 민주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민주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듣고 보고 써보고 이런 것들은 실제 체험 앞에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루소는 다음에는 잘 가르칠 수 있다고 말하는 교사는 교사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처음 그 아이들을 잘못 가르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나 교사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잘해야지. 다음에는 정말 잘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다음이란 없다. 지금 이 순간 아이들을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에밀을 통해서 좋은 교사, 좋은 부모에 대해 생각해보고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도록를 해야겠다. 이스라엘이 로마에 멸망할때 항복을 하면서 랍비가 부탁했던 것은 학교 하나만 유지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렇다 저렇다 비판해도 남의 나라에 멸망해 가면서 학교 하나도 소중하게 생각하던 그 때의 이스라엘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늦지 않았다. 아니, 희망이 가득하다. 우리 모두 에밀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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