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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견만리 : 인류의 미래 편 - 인구, 경제, 북한, 의료 편 명견만리 시리즈
KBS '명견만리' 제작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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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 대통령님. 저는 요즘 나라 걱정이 많습니다. 작년에 아들이 태어난 이후 부쩍 걱정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이대로 가다간 정말 끔찍한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게 뻔하니까요. 소득 몇 푼 못 내는 소시민인 제가 이런데,(물론 간접세는 많이 내고 있습니다) 나라밖에 모르는 대통령님 마음은 오죽하실까요? 오늘은 그런 대통령님의 근심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자 이렇게 특별히 대통령님께 드리는 포스팅을 하게 됐습니다. 과연 대통령님께서 이 글을 읽으실까요? 저는 0.1%의 확률에 한번 걸어보렵니다.


최근 <명견만리>라는 책을 읽었는데, '아! 이렇게 하면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번쩍 들었던 겁니다. 네, 이 책은 KBS 다큐 역사상 유례없는 시청률을 기록한 <명견만리>를 단행본으로 엮은 겁니다. 대통령님께서도 아마 TV로는 몇 회 정도 접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오늘 대통령님께서 꼭 아셔야 할 것 두 가지만 간략하게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거라고는 말씀하지는 마세요. 알고 있는데도 우리가 거꾸로 가고 있는 거라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잖아요.

1. 대통령님, 청년 세대에 투자하셔야 합니다. 독일을 보세요. 독일은 이미 1970년대부터 청년 세대에 투자했습니다. ​물론 기성세대의 완고한 반대가 있었죠. 하지만 결국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고, 그 결과 오늘날의 독일은 같은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는 이탈리아나 일본과 판이하게 다른 건강한 체질을 갖게 되었습니다.

금 한국의 에코세대는 돈이 없습니다. 이른바 88만원 세대라고도 불리죠. 그래서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습니다. 메아리의 메아리는커녕 완전한 음소거가 되어 누구 하나 응답하지 않습니다. 옥스퍼드대학 인구문제연구소가 꼽은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이탈리아 청년들처럼 우리 청년들도 기회만 된다면 이른바 '헬조선'을 떠날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작년 가장 많이 팔린 소설 중 하나가 <한국이 싫어서>였다는 것쯤은 대통령님도 알고 계시겠죠?


이런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선 청년투자밖에 답이 없습니다. <명견만리>에는 대한민국에 필요한 청년 투자가 무엇인지 상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일자리를 만들고 노동환경을 개선하면 됩니다. 건설경기에 쏟아부을 돈을 청년에게 쓰면 됩니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 정책을 전면 재조정하고, 일자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을 지원하면 됩니다. 낙수효과는 진작에 사라졌으며, 미국의 정글 자본주의도 이제 방향을 선회하고 있습니다. 노키아가 쓰러진 핀란드는 현재 세계에서 창업이 가장 활발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실패의 날'이 있을 정도로 청년의 실패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중앙정부가 청년투자에 뒷짐을 지고 있으니 몇몇 지차체에서 청년투자를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좋은 정책은 지자체의 것을 보고 벤치마킹하세요. 남의 것 따라한다고 욕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것을 따라하는 것만으로도 훗날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꾼 대통령이었다고 재평가 받게 될 것입니다.



2. 대통령님, 대북정책을 전면 재조정하셔야 합니다. 이제 북한과의 관계는 철저히 경제적이고 실리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보수정권의 대북강경책 때문에 향후 2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이 될 '북중러 기회의 삼각지대'에서 우리는 철저히 소외되고 있습니다. 민주정부가 10년 동안 북한과 사이좋게 지내려고 노력한 건 그들이 예뻐서가 아니었습니다. 사실상의 섬나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철도가 연결됐고, 그 철도로 유럽 대륙을 꿈꿨던 것입니다.


'북중러 기회의 삼각지대'는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 회장이 세계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녀들에게 아시아를 가르치기 위해 9년 전 가족들과 싱가포르로 이주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의 말대로 지금 이 일대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중국의 훈춘-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북한의 라선, 이 세 도시가 바로 삼각형의 꼭짓점을 이룹니다. 여기가 왜 그렇게 중요하냐고요?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을 위해선 동북3성이 바다와 만나야 합니다. 하지만 북한과 러시아에 가로막혀서 중국 동북부 지역엔 바다가 없지요. 북한의 라진항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러시아 역시 부동항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만큼 북한의 라진항을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두 국가는 이 항구를 이용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북한의 라진항도 연결되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이용해서 이익을 얻고 있는 동안 가장 가까운 우리는 그동안 무얼 했습니까? 대북강경책을 통해 얻어낸 것이 무엇인지 묻고 있는 겁니다. 정치와 안보의 영역에서는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경제의 영역에서까지 이처럼 모든 걸 끊을 필요까진 없었습니다. 우리의 기회가 북한에 있다는 것은 대통령님도 잘 아시는 내용 아니었습니까?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씀하셨을 때도 다 이런 걸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 아니었던가요?

 

대통령님, <명견만리>라는 책을 읽어보니 우리에게 기회가 없는 게 아니었습니다. 청년과 북한에 분명한 기회가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지금 당장 투자해야 합니다. 대통령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단어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린 청년 투자와 북한 문제 이외에도 이 책에서는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지적하고 해법까지 제시합니다. 주요 키워드만 말씀드리자면 은퇴와 노후, 로봇과 일자리, 저성장과 소비, 유전자 혁명, 치매사회 등 모두 앞으로 우리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이슈들입니다. TV프로그램을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여기에 탁상공론은 없습니다. 제작진은 우리가 배워야 하거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국가나 도시를 직접 찾아가 정확히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니까요. ​대통령님도 해외 자주 다니시잖아요. 보고 느낀 게 있다면 제발 이 나라를 벼랑 끝에서 좀 구해주세요.

대통령님, 제가 이 책을 읽고 희망을 보았듯이, 대통령님께서도 이 책을 읽고 희망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변하시면 좋겠습니다. 제 아들을 위해서, 그러니까 에코세대의 다음 메아리를 위해서 대통령님이 좀 변해주세요. 그리고 책도 좀 많이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민간기업에서도 독서경영이 화두인 건 아시죠? 정부에서도 독서행정, 독서정치 좀 하시죠. 원하신다면 제가 책 리스트도 꼼꼼히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첫 책은 <명견만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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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 사람의 뇌가 반응하는 12가지 스토리 법칙
리사 크론 지음, 문지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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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원하는 스토리텔링을 알려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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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습작할 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내가 느끼고 재미있어 하는 부분을 과연 독자도 그렇게 생각할까,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그 괴리감을 줄여주는 책이다. 문학 편집자이자 영화 스토리 컨설턴드답게 저자는 철저히 독자와 관객의 입장에서 매력적인 이야기를 말한다.

 

 

최근 내가 재미있게 읽은 소설 베스트 10을 한번 꼽아보자.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몽환화>

성석제의 <투명인간>

샤를로테 링크의 <폭스 밸리>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

존 쿠치의 <추락>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나쁜 소녀의 짓궂음>

김범의 <할매가 돌아왔다>

이언 매큐언의 <이런 사랑>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열 가지 책 목록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순문학 소설, 대중소설, 장르소설을 가리지 않는다. 무조건 재미있는 소설을 좋아한다. 그동안 이런 작품들이 왜 나를 즐겁게 했는지 나름대로 답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를 읽고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앞의 작품들이 사랑받은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 싶어하는 우리 두뇌의 강력한 욕망을 자극"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첫 문장부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궁금하게 만드는 것. 이 책은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열두 가지 이야기의 비밀에 대해 말한다. 소설이든 시나리오든 대본이든 습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 많긴 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들어온 말들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말해준다. 책을 읽고 있으면 그동안 내가 알고 있는 것들 중 잘못된 믿음이 많았다는 걸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리가 "잘 아는 것"을 쓰라는 충고를 많이 들었지만, 저자는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우리가 "감정적으로 잘 아는 것"을 쓰라는 것이라고 바로잡는다. 그리고 그 이유는 뇌 과학 연구 결과를 통해 입증한다. 모든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의 습작생은 대단한 반전을 위해 중요한 정보들을 숨겨두기 바쁘지만, 그렇게 글을 써서는 그 어떤 독자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파악할 수도 없고 이야기에 몰입할 수도 없다. 독자가 알아야 할 것은 반드시 독자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다.

 

하나씩 따져보면 내가 사랑한 이야기들은 모두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들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 예를 들어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만 간단히 살펴보자. 이 책이 설명하는 열두 가지 법칙 중 다섯 가지 법칙만 적용해서 살펴보자.

 

(1) 감정 전달하기 : 100번째 생일을 맞이한 노인 알란은 양로원에서 갑갑함을 느낀다. 그는 죽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남은 생을 즐기기로 마음먹는다. 그의 모험 심리는 그의 일평생과 중첩되면서 더욱 극적으로 증폭된다. 독자들은 책을 읽는 내내 알란의 감정을 그대로 따라 느끼고 자연스럽게 그의 행복을 응원하게 된다.

 

(2) 주인공의 목표 만들기 : 알란의 목표는 분명하다. 죽는 날까지 자유롭게 신나게 사는 것. 분명한 목표가 있으니, 양로원을 탈출하는 것도, 누군가 맡긴 돈 가방을 들고 버스에 오르는 것도,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도주하는 것도 모두 납득이 된다.

 

(3) 구체적으로 쓰기 : 알란의 고군분투는 모두 구체적이다. 폭탄 제조, 전쟁 참여, 스파이 노릇 등이 구체적인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프랑코, 김정일, 아인슈타인, 스탈린 등 우리가 아는 구체적인 역사적 인물을 만나는 깨알 같은 재미도 있다.

 

(4) 시험 들기와 상처 입히기 : 톤 자체가 밝고 유머러스해서 그렇지, 사실 알란이 평생 동안 겪는 일들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다. 그는 세계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의 최대 피해자인 셈이다. 이 이야기는 그런 시험과 상처로 인해 더욱 흥미로워진다.

 

(5) 서브플롯의 비밀 : 이 작품은 알란의 과거 이야기가 서브플롯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한다. 아니 어쩌면 현재 이야기가 서브플롯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두 플롯이 밀접한 상호작용을 하기에 이 이야기는 그만큼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리사 크론의 눈으로 작품 하나하나를 살펴 보니, 왜 이 작품들이 엄청나게 많은 독자를 확보할 수 있었는지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어떤 이야기가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실제로 어떻게 이야기를 써야하는지도 감이 좀 잡힌다. 특히 이 책엔 12개의 체크포인트 페이지가 있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원고에 바로 적용을 해볼 수가 있다.

 

 

 

그러니까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를 책상 위에 올려 두는 건 깐깐하고 실력 있는 편집자 한 명을 고용하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이제 나는 그 편집자가 지적하는 바를 중심으로 내가 쓰고 있는 이야기의 방향을 점검하면 된다. 사랑받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이들이라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재미있는 소설을 더 많이 읽고 싶고, 재미있는 영화와 드라마를 더 많이 보고 싶어하는 이야기 중독자로서, 경쟁심리따윈 개한테나 줘버리고, 이 책을 강력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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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 사람의 뇌가 반응하는 12가지 스토리 법칙
리사 크론 지음, 문지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을 습작할 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내가 느끼고 재미있어 하는 부분을 과연 독자도 그렇게 생각할까,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그 괴리감을 줄여주는 책이다. 이제 나 혼자 쓰고 만족하는 글이 아닌 독자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조금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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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 폐허를 걸으며 위안을 얻다
제프 다이어 지음, 김현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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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자기만의 분명한 답을 갖고 있는 사람은 별로 본 적이 없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여행의 목적은 그저 사진 찍고 자랑하기 수준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여행 작가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내가 그것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내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이를 통해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뽐내기에 바쁘다. 한껏 들떠 있거나 센티해진 여행자의 감정에 내 감정이 따라갈 수는 없다. 그러니 나는 여행 에세이를 읽는 건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이런 단정적인 생각은 나의 빈약한 독서편력만 드러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금 바로 이런 고집을 꺾고 싶지는 않다. 대신 나는 이 지점에서 여행 에세이가 빛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다. 분야는 에세이에 묶여 있더라도 소설이나 철학의 지위를 꿈꾸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설처럼 몰입할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확보되어야 하고, 철학처럼 깊이 있는 사고가 담보되어야 한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소설처럼 여행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해야 하고, 진실을 꿰뚫어보는 철학처럼 그 여행을 통해 몰랐던 걸 발견하고 통찰할 줄 알아야 한다. 다행히 최근 그런 여행 에세이가 출간됐다.철학보다 깊고 소설보다 흥미진진한 여행기!”라는 카피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알랭 드 보통의 한 인터뷰에서 제프 다이어란 이름을 처음 알았다. 그 인터뷰에서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에세이로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를 꼽았다. “He is not an older gentleman just travelling around he is a hipster. (그는 점잖게 세계를 여행하는 나이 든 신사가 아니라 자유로운 힙스터이다.)”라고 제프 다이어를 평가했다. 소설처럼 몰입할 수 있는 흥미로운 캐릭터가 이 책의 화자가 되는 셈이다. 또 제프 다이어는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의 프롤로그에서 이 책에 적은 일들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그중 몇몇은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났다고 고백하며 이 여행 에세이가 허구의 이야기가 포함된 것임을 밝힌다. 분명 이 여행 에세이는 소설의 지위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매력적인 주인공 제프 다이어는 어느 순간 자신이 아무런 목적과 방향도 없이 살아가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걸 발견한다. 그는 그 상태를 폐허라고 부른다. 꼼짝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다 소진되어버린 상태인 것이다. 그의 여행은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폐허가 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기 위해 그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진짜 폐허를 찾아 나선다. 고대 유적으로 가득한 로마와 렙티스 마그나나, 몰락한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 등 그가 마주하는 것은 모두 낡고 쇠락한 것들이다. 그는 이 여행에서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제프 다이어 자신이 이미 그런 호기심을 강하게 품고 있기에, 이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시종일관 그 호기심을 따라가게 된다.

 

야망이 큰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는 소설의 지위만 엿보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적극적으로 품는다. 제프 다이어는 구역이라는 개념을 여러 차례 언급하는데, 그에 따르면 구역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제프 다이어는 렙티스 마그나에서 자신이 구역안에 있음을 느낀다. 이곳에서 그는 제법 철학적인 깨달음을 얻는다.

 

어쩌면 고대 유적에서 배우는 가장 간단한 교훈은, 뭐든 수직으로 세운 것은 훗날 경외의 대상이 된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수평적인 것들이 주는 매혹에 저항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바로 그 때문에 하늘이나 바다의 수평선을 배경으로 선 고대 수직 기둥들에 더 큰 경외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 배경의 관점, 그러니까 바다나 하늘의 관점에서 보면 렙티스는 폐허의 초기 단계에 불과할지 모른다. 언젠가는 남은 유적들이 모두 사라져 사막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수평선을 방해하는 수직 기둥들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것이 시간에 대한 공간의 최후의 승리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을 쓰기도 한 알랭 드 보통이 왜 그렇게 이 여행 에세이를 강력 추천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인터뷰 원문을 발췌한다. 알랭 드 보통 역시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가 단순한 여행 에세이의 틀 안에 가둬지지 않음에 주목했다.

 

 

Why would you recommend this book in particular, when there are so many travel books around?

 

I guess because it’s not a travel book in that sense. It’s a book about his mind, which I think is both interesting and funny. And he is charming as a writer. He is constantly flitting with ideas about all sorts of stuff not big ideas, but things such as how easy it is to lose your hotel room key and why grass is green (literally). There is lots of stuff in it, hung together by the force of his personality. You would have a hard time describing it to a publisher. In this age where books are supposed to be about one thing.

 

세상에 여행에 관련된 책이 얼마나 많은데, 왜 특별히 이 책을 추천하시는 건가요?

 

제 생각에 어떤 맥락에서 이 책은 여행 에세이가 아닙니다. 이건 그의 마음에 관한 책이죠. 흥미롭고 웃긴 그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작가로서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확인할 수 있죠. 그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생각으로 끊임없이 돌아다닙니다. 그게 대단한 생각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호텔방 열쇠를 잃어버리는 게 얼마나 쉬운지, 잔디는 왜 초록색인지 생각하는 겁니다. 이 책에는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모두 작가가 지닌 개성의 힘을 잘 보여주는 것들이죠. 출판사에 이 책을 설명하는 게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책은 어떤 한 가지에 대해서만 말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니까요.

(출처 : fivebook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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