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습작할 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내가 느끼고 재미있어 하는 부분을 과연 독자도 그렇게 생각할까,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그 괴리감을 줄여주는 책이다. 문학 편집자이자 영화 스토리 컨설턴드답게 저자는 철저히 독자와 관객의 입장에서 매력적인 이야기를 말한다.

 

 

최근 내가 재미있게 읽은 소설 베스트 10을 한번 꼽아보자.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몽환화>

성석제의 <투명인간>

샤를로테 링크의 <폭스 밸리>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

존 쿠치의 <추락>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나쁜 소녀의 짓궂음>

김범의 <할매가 돌아왔다>

이언 매큐언의 <이런 사랑>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열 가지 책 목록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순문학 소설, 대중소설, 장르소설을 가리지 않는다. 무조건 재미있는 소설을 좋아한다. 그동안 이런 작품들이 왜 나를 즐겁게 했는지 나름대로 답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를 읽고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앞의 작품들이 사랑받은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 싶어하는 우리 두뇌의 강력한 욕망을 자극"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첫 문장부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궁금하게 만드는 것. 이 책은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열두 가지 이야기의 비밀에 대해 말한다. 소설이든 시나리오든 대본이든 습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 많긴 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들어온 말들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말해준다. 책을 읽고 있으면 그동안 내가 알고 있는 것들 중 잘못된 믿음이 많았다는 걸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리가 "잘 아는 것"을 쓰라는 충고를 많이 들었지만, 저자는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우리가 "감정적으로 잘 아는 것"을 쓰라는 것이라고 바로잡는다. 그리고 그 이유는 뇌 과학 연구 결과를 통해 입증한다. 모든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의 습작생은 대단한 반전을 위해 중요한 정보들을 숨겨두기 바쁘지만, 그렇게 글을 써서는 그 어떤 독자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파악할 수도 없고 이야기에 몰입할 수도 없다. 독자가 알아야 할 것은 반드시 독자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다.

 

하나씩 따져보면 내가 사랑한 이야기들은 모두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들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 예를 들어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만 간단히 살펴보자. 이 책이 설명하는 열두 가지 법칙 중 다섯 가지 법칙만 적용해서 살펴보자.

 

(1) 감정 전달하기 : 100번째 생일을 맞이한 노인 알란은 양로원에서 갑갑함을 느낀다. 그는 죽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남은 생을 즐기기로 마음먹는다. 그의 모험 심리는 그의 일평생과 중첩되면서 더욱 극적으로 증폭된다. 독자들은 책을 읽는 내내 알란의 감정을 그대로 따라 느끼고 자연스럽게 그의 행복을 응원하게 된다.

 

(2) 주인공의 목표 만들기 : 알란의 목표는 분명하다. 죽는 날까지 자유롭게 신나게 사는 것. 분명한 목표가 있으니, 양로원을 탈출하는 것도, 누군가 맡긴 돈 가방을 들고 버스에 오르는 것도,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도주하는 것도 모두 납득이 된다.

 

(3) 구체적으로 쓰기 : 알란의 고군분투는 모두 구체적이다. 폭탄 제조, 전쟁 참여, 스파이 노릇 등이 구체적인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프랑코, 김정일, 아인슈타인, 스탈린 등 우리가 아는 구체적인 역사적 인물을 만나는 깨알 같은 재미도 있다.

 

(4) 시험 들기와 상처 입히기 : 톤 자체가 밝고 유머러스해서 그렇지, 사실 알란이 평생 동안 겪는 일들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다. 그는 세계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의 최대 피해자인 셈이다. 이 이야기는 그런 시험과 상처로 인해 더욱 흥미로워진다.

 

(5) 서브플롯의 비밀 : 이 작품은 알란의 과거 이야기가 서브플롯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한다. 아니 어쩌면 현재 이야기가 서브플롯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두 플롯이 밀접한 상호작용을 하기에 이 이야기는 그만큼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리사 크론의 눈으로 작품 하나하나를 살펴 보니, 왜 이 작품들이 엄청나게 많은 독자를 확보할 수 있었는지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어떤 이야기가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실제로 어떻게 이야기를 써야하는지도 감이 좀 잡힌다. 특히 이 책엔 12개의 체크포인트 페이지가 있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원고에 바로 적용을 해볼 수가 있다.

 

 

 

그러니까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를 책상 위에 올려 두는 건 깐깐하고 실력 있는 편집자 한 명을 고용하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이제 나는 그 편집자가 지적하는 바를 중심으로 내가 쓰고 있는 이야기의 방향을 점검하면 된다. 사랑받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이들이라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재미있는 소설을 더 많이 읽고 싶고, 재미있는 영화와 드라마를 더 많이 보고 싶어하는 이야기 중독자로서, 경쟁심리따윈 개한테나 줘버리고, 이 책을 강력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