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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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 공터에서




 삶은 언제나 치열하다. 방식과 그 형태만 다를 뿐 모든이의 삶은 치열하다. 그 치열함이 내면적으로 이루어질때도 있지만, 역사와 맞물리면서 개인이 발버둥치는 상황이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 역사를 보고, 역사 속의 작은 개인들을 생각하면 그러하다. 김훈의 소설은 그러하다. 작은 개인을 내세워 삶이라는 거대한 전장에 내던진다. 전장 속에서 김훈 소설 등장인물들은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한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쫒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김훈 /작가의 말/ 에서 가져왔다. 김훈은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들을 이 책에 재구성 하였다. 그는 떨쳐낼 수 없다고 했다.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소설 속 주요인물 들인 '마씨집안' 그들도 알 수 없는 것들은 떨쳐낼 수 없고 이유도 몰라했다. 그저 죽지 못해서 살아나가는 인물들로 보였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굴레에서 적극적으로 도망치는 인물들이 있고, 삶을 받아들여 천천히 나아가는 인물도 있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이문열의 소설에 한 구절이 떠올랐다.


 "갈매기가 날기를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갈매긱 아니고, 존재가 그 지속의 의미를 버렸을 때, 그것은 이미 존재가 아니다.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한다.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 - 젊은날의 초상 中


 그렇다. 우리는 삶에서 도망갈 수 없다. 좌절의 끝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한다. 소설에서 많은 인물들이 탄탄대로를 걷지 않는다. 돌부리가 많은 길을 간다. 만약 교훈을 위해서, 역사지식을 위해서 이 책을 찾는다면 다른 책을 살피는게 좋겠다. 이 책은 씁쓸하다. 그래서 그런지 속이 비어있다. 채워져 있지 않은 소설에서 사실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소설을 다 읽고 평점을 메기러 알라딘 들어갔었다. 거기서 김훈을 여성혐오 작가로 비난하는 글들이 많았다. 전에 '페미니즘'을 나쁜 사조로 말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인터뷰를 했다고 들었다. 몰매를 맞은 후 그는 해명을 했다. 대충


 " 여성을 이해할 수 없어서 신비스러운 존재로 말하려다가 말실수 어쩌고저쩌고


 이다. 실제로 많은 독자들이 그의 소설에서 여성은 구석에 있다고 했다. 일단 모든것을 제쳐놓고 이 소설에서 논란이 된 부분에 개인적인 의견을 적어 보겠다.


 " 아이가 남편의 등에서 오줌을 쌌다. 남편이 처네를 풀었다. 이도순은 보따리에서 기저귀를 꺼냈다. 딸아이의 작은 성기가 추위에 오므라져 있었는데 그 안쪽은 따스해 보였다. 거기가 따뜻하므로 거기가 가장 추울 것이다."


 김훈은 육체 표현을 많이 한다. 그래서 불편한 부분도 있다. 왜냐하면 육체는 지극히 개인적이므로 그것을 자세히, 그것도 무미건조하게 묘사하는 것은 개인간의 일정거리를 넘어서는 '부담스러운'상황을 연출하게 한다. 위에 문장은 충분히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다. 김훈의 단편소설 '화장'에서도 여사원에 입을 '질'속 같다고 표현한 적 있다. 김훈의 문체 스타일, 그가 평소 표현하고 고민하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위에 문장은 또 충분히 수긍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소설 '칼의 노래'에서도 여자 성기가 묘사되고 하는데 그것은 성인여자다. 하지만 위 문장은 갓난아이를 묘사해서 사람들은 꼭 추위에 대해서 아기의 성기 묘사가 필요 했냐고 따져 물었다. 

 우리 사회는 지금 페미니즘 정서가 널리 퍼져있다. 억압되었던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르 내고 있다. 그 방식이 어떠하든 그들은 차별에 투쟁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지금 사회가 아주 예민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상에는 '극'이 있다. 그 '극'을 잘 캐치해 고쳐 나가야지 페미니즘은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 그리고 박범신의 '은교' 둘 다 논란의 선상에 있었다. 둘 중에 무엇이 문학적으로 뛰어난지는 비교해보지 않겠다. 이 소설들은 우리가 금단시 여기는 부분을 이끌어 냈다. 소설을 어느정도 자서전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비판하고 오로지 예술로 보는 사라들은 인정한다. 우리가 알다시피 표현의 자유와 범죄는 정말 종이 한장 차이다. 그것을 판가름 내는 것은 법조문과 논리일 것이다. 논리가 적용되지 않은 예술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위대한 작가는 추앙 받는다. 또 다른 사건은 아이유 제제사건이다. 아이유는 제제를 섹시하다고 말했따. 지금도 인터넷에 관련 자료를 뒤져보면 논쟁을 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사족을 붙이는 이유는 이 문제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이다. 김훈의 갓난아이 성기 표현은 '정말 김훈이니깐' 했던 표현이다. 그가 만약 인터뷰만 조심스럽게 했다면 그냥 넘어갈 수 도 있었다고 본다. 모든 말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나는 사실 김훈의 여성혐오를 하는거 같지 않다. 소설 '공터에서' 나오는 남자인물들은 다들 약해 빠졋다. 말 그대로 '루저'들이다. 그러나 주인공의 아내는 언제나 남편을 감싸 안아준다. 오히려 그 넓은 품에 작은 짐승(남자)이 안겨있는 것이 보였다. 또 생계에 최전선에서 주인공을 먹여 살렸다. 나는 그래서 김훈을 여성혐오 작가라고 단정 짓는건 어렵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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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사막 마카롱 에디션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최율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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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사막 프랑수아 모리아크

 

설익은 사과를 먹으면 쓰디쓴

구애의 실패보다 낫지만

 

 

사랑은 근대적인 개념이다. 구한말 밀려들어온 문물은 커피, 양복, 백화점과 같은 물리적인 사물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들도 함께 들어왔다.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는 고작 백년이 넘어간다. 그러나 마음속에 어떠한 사람을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는, 우리가 사랑이라는 칭하는 추상적인 마음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사랑의 사막>은 설익은 사랑을 보여준다. 아들과 아버지가 동시에 한 여인을 사랑하는 내용이다. 아들은 청소년정도 되고 아버지는 마을에서 신망이 두터운 의사이다. 그들이 사랑하는 여인은 마을에서 평이 좋지 않다. 아들과 아버지는 불타는 어리숙한 열정과 도덕적인 고뇌로 대변된다.


사랑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고, 귀찮은 것이 어디 있을까? 양날의 검이라고 말할 정도로 위험부담이 크다우리는 이런 내용을 좋아하지 않는가? 좌절할줄 알지만, 패배할줄 알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는, 그러한 내용에 감명 받는다. 헤밍웨이에 <노인과 바다>처럼 인간의 의지를 나타내는 작품을 우리는 좋은 작품이라 한다. 그런 점에서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사랑의 사막>은 심심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열정적이지만 실천은 없고, 분노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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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사막 마카롱 에디션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최율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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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모든것을 말해주는 소설이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갈구 하듯이 우리는 이루지 못할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갈구할 때가 있다. 그러한 행위가 의미있는가 없는가를 따지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 아-바보같은 행동을 하는게 인간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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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라는 시대 1 - 유신과 천황 그리고 근대화 메이지라는 시대 1
도널드 킨 지음, 김유동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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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양과 지루함이 동반되지만 읽다보면 흐름이 잡힌다. 침략자들의 눈물겨운 분투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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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인 최인훈 전집 2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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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의 대표작 광장은 안읽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단하고 유명한 소설이다. 한반도에서 대립하는 두 개의 이념앞에 작디작은 개인을 세워 광장이냐 밀실이냐의 논쟁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물론 복잡한 한반도의 상황과 한 가지로 상징되지 않는 이념을 단순하게 두 가지로 대치시킨 것은 조금 무리가 있어보이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회색인은 그의 개성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너무 잘 드러내서일까 한편으로는 괴이하기 까지 했다. 독고준이라는 인물은 광장의 이명준과 함께 한국소설사에서 독보적인 인물이다. 끊임없이 자신과 주변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내리려고 한다. 그러나 답을 내린 적이 없다. 그나마 이명준이 마지막에 바다로 자살한 것은 거대한 이념 앞에서 내린 답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비극적이지만, 비극이라는 하나의 모습으로 완결시켰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독고준은 어떨까?? 평론가들은 자아와 세계에 질문하는 독고준이 근대적인 인물이라고 평한다. 딱 거기까지다. 최인훈의 모든 소설의 공통점은 혼란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사랑을 내놓는다. 이 사랑은 이성간에 사랑이라고 단순하게 보기 보다는 좀더 심오하고 복잡한 뜻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은 최인훈 전집에서 에세이와 문학이론 부분을 봐야 알듯 싶다. 독고준은 사랑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유는 하지만 행동이 없다. 소설 마지막에 구체적인 행동은 하지만 열린 결말이다. 그가 정말로 실천을 했는지 아니면 다시 발길을 돌렸는지 모른다( 이 부분은 결말 스포일러는 직접 읽어 보길 바람)

 

한국소설사에서 최인훈은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최인훈을 잘 읽지 않는다. 나는 이 현상을 재미를 떠나 최인훈이 개척한 사유의 영역을 계승 발전 시킨 작가가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현대 한국 사회도 많은 이슈가 있다. 지금 뜨거운 페미니즘, 여혐, 남혐, 난민문제 등등 혐오문제가 이슈다. 최인훈인 이념과 자아에게 진솔하게 질문했던 근대적인 소설법을 현대작가는 현대 이슈에 맞게 소설을 써내려가야 한다고 본다. 그러려면 일단 최인훈을 읽어야하지 않을까? 그것만으로도 최인훈은 가치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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