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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세계
톰 스웨터리치 지음, 장호연 옮김 / 허블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사라진 세계. 톰 스웨터리치 지음, 장호연 옮김. 허블. 567p. 16,000원
영화 <디스트릭트 9>은 여운이 짙어 다시는 보기 싫은 영화다. SF장르가 이토록 아름다고 안타까운지 영화를 보고 처음 알았다. 아마 <사라진 세계>가 영화로 제작된다면 똑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소설은 어둡지만 주인공 섀넌 모스의 분투는 아름답다. 읽어내려 가면서 시리즈로 나오면 어떨까 싶었지만, 책을 덮은 후에는 이대로 끝나는 것이 좋다고 결론 내렸다.
<사라진 세계>는 특별수사관 섀넌 모스가 어떤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본격적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섀넌 모스는 ‘시간 여행’과 관련된 사건 또는 ‘중대한’ 사건에 ‘시간 여행’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관이다. 어느 일가족 살인사건에 용의자가 자신과 같은 소속으로 밝혀지면서 섀넌 모스는 미래로 시간 여행을 한다. 미래에는 이미 사건이 종결되거나 많은 수사가 이루어진 상태이므로 가는 것이다. 섀넌 모스는 미래에서 사건을 수사하던 도중 소설 속 인류 종말 즉 ‘터미너스terminus'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소설은 빠르게 진행된다. 소설의 서사가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지만, 중간중간 과거의 사건이 개입하면서 흐름에 살이 덧붙여진다. 빠르게 읽혀지지만 빠르게 읽을 수 없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서평을 어떻게 써야하나 많은 고민을 했다. 플롯을 중점으로 글을 쓰면 <사라진 세계>가 갖고 있는 강력한 서사를 노출시키고 그렇다고 해서 의미를 찾기에도 줄거리 노출이 우려됐다. 서사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그 부분을 스스로 읽어내려 가면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그것을 느꼈고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도 느끼길 바랄 뿐이다.
<사라진 세계>가 영화로 제작된다면 과연 밝은 부분이 얼마나 될지 책을 읽으면서 고민했었다. SF소설에 누아르 냄새가 베어있다고 하면 잘못된 생각일까 싶기도 했지만,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과학적 지식, 시간 여행 요소를 다루면서 뒷골목 세계가 연상되는 누아르라고 말하면 조금 웃기긴 하다. 누아르 자체가 도덕점 모호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사라진 세계>는 도덕적 모호함 보다는 ‘시간적 모호함’, ‘존재의 모호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특별수사관 섀넌 모스는 양지(陽地)에서 수사하기 보다는 시간 여행을 통한 음지(陰地)에서 수사하는 기간이 기니 ‘뒷골목’이라 표현해독 괜찮지 않을까 싶다.
※편집 넋두리
1. 처음 책을 받았을 때 표지를 딱히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설 도입부에 표지가 연상되는 서술이 있기 때문이다. 아~ 이 부분을 표지로 만들었구나. 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표지를 다시 보게 됐다. 섀넌 모스의 외형도 궁금했고 표지가 어떤 장면의 부분이구나 라는 생각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표지의 일러스트는 ‘변영근’일러스트레이터가 그렸다. 인스타그램에도 활동하시니 가서 그림 구경을 해보길 추천한다.
2. 편집자와 역자에게 박수를 치고 싶다. 소설은 은근히 복잡하다. 어려움 사상이나 철학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서사가 존재한다. 또 SF소설답게 생소한 과학적 표현도 있다. 이러한 소설을 발굴하고 편집한 편집자와 번역한 역자는 아마 머리가 터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소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사람일 것이다. 난 표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질문의 내용을 말하면 줄거리 유출일 것 같아 적지는 않겠다.
3. <사라진 세계>. 왜 제목을 이렇게 지었을까 궁금해 원제를 찾아봤다. <The Gone World> 영어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여기서 ‘gone’은 go의 과거분사로 ‘지나간, 과거의’가 대표적인 뜻이다. 단순히 <지나간 세계>라고 번역했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자는 소설의 내용과 작가의 의도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라진 세계>라 짓지 않았을까? 그런데 소설을 보면 많이 우울하다… 만약 <멸망한 세계>라고 지었다면 허블에 실망했을 것이다. <우울한 세계>는 영화 <달콤한 인생>이 생각나서 조금 좋았을지도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