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의 신호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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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샹송을 듣고 있습니다.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패배의 신호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기에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샹송을 듣고 있으면 불어는 입술과 입술이 가장 많이 닿는 언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사랑을 속삭이기에도 좋다고요.

 

그 아름다운 언어로 쓴 당신의 책을 읽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던 12월이었지요. 녹색광선에서 패배의 신호를 출간한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당신의 작품 두 개를 읽었습니다. 당신이 어떤 작가인지 먼저 알아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먼저 제가 당신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고백해야겠군요. 작년 12월 전까지 저는 당신의 작품을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여기저기서 흘려 들은 이야기로 당신의 이미지를 만들었을 뿐이죠. 내게 당신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을 남긴 당돌한 아가씨였습니다. 이런 말을 남기고 요절했다고 기억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정보였습니다. 당신은 요절로 박제된 젊은이가 아니었어요. 열여덟 살에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한 이후 2004년 심장과 폐질환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소설과 희곡 등을 꾸준히 발표한 현역작가였지요.

 

제가 읽은 당신의 작품은 슬픔이여 안녕브람스를 좋아하세요…》였습니다. 나는 이 작품들을 읽으면서 놀라고 또 놀랐습니다. 어떻게 열여덟 살의 아이가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스물 네 살의 젊은이가 중년의 감정을 그릴 수 있을까? 놀라고 또 놀라고 말았지요. 그래서 패배의 신호를 설레는 맘으로 기다렸습니다. 가장 통속적인 사랑을 가장 통속적이지 않게 쓰는 당신의 작품을요.

 

패배의 신호가 도착했던 날, 나는 오랫동안 책의 표지를 바라봤습니다. 쨍한 오렌지색 안에 있는 흑백 사진 한 장을 오래오래 바라보았어요. 창가에 기대 창 너머를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을요. 그리고 천천히 책장을 펼쳐 당신의 글을 읽으며 루실과 샤를, 디안과 앙투안을 만났습니다. 각 자의 방식대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을요.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하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생에 한두 번쯤 사랑에 대해 같은 정의를 내리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때 우리는 진격하는 사람이 됩니다. 앞 뒤 잴 것 없이, 옆을 바라볼 틈도 없이 서로를 향해 진격하고, 함께 나란히 달려갑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정의가 겹칠 때 몸도 마음도 하나가 된다는 걸. 루실과 앙투안이 그랬던 것처럼요.

 

언제나 뜨거운 사랑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저이지만, 이번에는 디안과 샤를의 마음에 머물렀습니다.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퇴각의 북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던 두 사람의 마음에 제 마음을 포갰습니다. 점점 커지는 소리를 외면하며 그저 지나가는 소리일거라고, 나를 향해 다가오는 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한 두 사람을 보면서, 어쩌면 패배의 소리는 모든 감각을 잃게 하는 주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패배의 신호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저는 고독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네 명의 주인공이 선택한 것은 결국 고독이었으니까요. 그제야 당신이 책 서두에 샤를의 입을 빌려 루실이 갖고 있는 희열이 고독의 희열이었다고 쓴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당신은 사랑은 결국 고독으로 가는 길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다시 책의 표지를 바라봅니다. 창에 기대 창 너머를 바라보는 여인은 루실이 되었다가 디안이 되었다가 앙투안이 되었다가 샤를이 됩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창 너머 세상이 아니라 퇴각의 북소리를 따라 온 고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알겠지요. 고독이 된 사랑도 사랑이라는 것을.

 

프랑수아즈 사강. 모든 것이 퇴각하는 겨울에 패배의 신호로 내게 와 주어 고맙습니다. 사는 동안 얼마나 더 많은 패배의 신호를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처럼 퇴각한 후에 다시 진격하는 날이 온다는 것을 믿겠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믿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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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이태석 - 톤즈에서 빛으로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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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의 삶을 다룬 책을 읽었습니다. 신부님 선종 10주기에 맞춰 나온 정본 전기 신부 이태석(이충렬, 김영사)이었지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앞부분만 보려고 펼쳤는데, 마지막장을 덮을 때까지 멈출 수가 없어 한 호흡에 끝까지 읽고 말았습니다.

 

신부님에 관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와 생활성서사에서 출간한 내 친구 쫄리 신부님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신부님이 톤즈에서 가르쳤던 제자가 한국에서 의사가 되었다는 소식도 들었고, 얼마 전에는 그가 출연한 <유 퀴즈 온 더 블록>도 챙겨보았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신부 이태석을 읽으면서 그게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책 속에는 내가 몰랐던 신부님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저는 신부님이 의대를 졸업하고 사제가 되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의사의 길을 가려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제가 되었다고만 알고 있던 것입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사제가 되었다는 문장 속에 숨어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간과한 것이지요. 그래서 신부님이 전공의 시험이 있던 날, 시험장 대신 성당을 찾았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속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시험은 봐도 되지 않았을까, 일단 시험을 보고 천천히 생각해도 되지 않았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그 분 발 앞에 엎드려 세상을 향해 자라날 욕심마저도 봉헌하셨더군요. 이 사실이 제가 간과한 이야기의 출발이었습니다.

 

신부님이 부산에서 태어나 소알로이시오 신부님께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도 제가 몰랐던 사실입니다. 책을 읽으며 소알로이시오라는 이름을 만났을 때 저는 전율했습니다. 소알로이시오 신부님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서 평생을 헌신한 선교사였으니까요. 훗날 선교 사제가 되어 톤즈의 아이들을 만나러 갈 신부님께 세례를 베푼 사제가 세계 곳곳에 <소년의 집><소녀의 집>을 만든 소알로이시오 신부님이었다는 사실은 에디트 슈타인 성녀의 고백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내 계획에 없었던 일이 하느님 당신 계획에는 있었습니다.”라는 고백이었지요.

 

신부 이태석을 읽으면서 에디트 슈타인 성녀의 고백이 신부님 삶 안에서도 펼쳐졌음을 느꼈습니다. 의사가 되려다 살레시오 수도회의 수사가 되고, 사제가 되고, 선교사가 되어 톤즈로 가기까지 신부님 삶의 여정에 보이지 않는 계획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계획들은 신부님께 주어진 자유 의지속에서 선택돼 더 빛을 발했지요. 돌이 아니라 다이아몬드를 집어든 신부님의 선택 덕분에 말이에요.

 

의사의 삶을 포기하고 사제가 되기 위해 수도원에서 지원했을 때 수도원 시설에 있던 청소년들이 신부님께 물었습니다. “지원자 수사님은 왜 의사를 그만두고 신부님이 되려고 하세요?” 아이들은 의사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사람이 되겠다는 신부님을 이해할 수 없었겠지요. 신부님은 의사보다 신부가 좋아서 수도원에 왔다고 대답했지만 이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대답을 찾아냅니다. 그것이 돌멩이다이아몬드였지요.

 

아이들이 또 다시 의사 말고 왜 신부님이 되려고 하느냐?’고 묻자 신부님은 아이들에게 되 물었습니다. 길거리에 돌멩이와 다이아몬드가 떨어져 있으면 무엇을 집어들겠느냐고요. 아이들이 당연히 다이아몬드죠!”라고 대답하자 신부님은 말합니다. “나에게 의사는 돌멩이고 하느님과 너희들은 다이아몬드야.”라고요.

 

하느님과 청소년이라는 다이아몬드를 집어든 신부님은 여러 과정을 마치고 톤즈로 향합니다. 그곳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였지요. 가난과 전쟁에 일상을 잃어버린 아이들 속에서 신부님은 돈보스코 성인의 삶을 이어갑니다. “청소년은 젊다는 것만으로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신 성인, 신부님이 소속돼 있는 살레시오수도회의 창립자인 돈보스코 성인처럼 아이들 곁에서 살아간 것이지요. 아이들과 함께 뛰어 놀고, 함께 악기를 연주하고, 함께 공부하며 청소년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까지 사랑하며, 다이아몬드의 원석인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세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주었습니다.

 

당신이 보여준 사랑 덕분에 아이들도 자신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갔습니다. 늦은 밤까지 공부를 하고, 악기를 연습하며 꿈을 꾸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신부님은 완성된 다이아몬드를 보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발견된 병 때문에 한국에서 치료를 받다 끝내 톤즈로 돌아가지 못했으니까요. 신부님의 죽음은 톤즈에 깊은 슬픔을 안겨 주었습니다. 신부님과 우정을 나누던 아이들은 물론, 신부님께 치료를 받던 한센인들과 서로를 향해 총칼을 겨누던 군인들까지도 신부님의 죽음을 애도했지요. 그러나 슬픔은 슬픔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신부님이 가르친 제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신부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톤즈의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어른이 되어 가정을 꾸린 제자들도 있고, 의료진이 된 아이들도 있었지요. 신부님이 가르친 제자 중에 40여 명이 의료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당신을 기억하며 톤즈에 있는 한센인들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에 울컥하고 말았어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한 사람의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2021년 겨울의 세상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세계 어디서나 서로를 향해 마음 한 조각 내어줄 여유가 없는 상황이지요. 이런 시기에 사랑을 나누었던 신부님의 이야기가 우리 곁에 온 것에도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책을 읽는 독자마다 그 이유를 다르게 해석하겠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많은 사람들이 신부 이태석을 읽으며 그 이유를 찾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신부님의 열 번째 하늘 생일을 기념하며 세상에 온 선물일지도 모르니까요.

 

돌멩이가 아닌 다이아몬드를 집어 들었던 이태석 신부님!

당신의 삶을 읽으며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인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나에게 보이는 다이아몬드를 집어들길, 그래서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이 더 반짝 빛나게 되길 함께 기도해주세요. 신부님께서 사제서품 성구로 선택하신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야 49,15)’는 말씀처럼 많은 이들이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을 잊지 않도록,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을 하느님께서도 기억해주시기를 전구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음악인 청소년의 웃음소리가 날마다 천국까지 전해지길, 그 음악을 들으며 신부님과 돈보스코 성인이 함께 미소짓는 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짧았지만 빛나는 삶을 살았던 쫄리 신부님, 신부님이 발견한 다이아몬드가 온 세계에 빛나는 날이 오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럼 안녕!

 

2021년 12월, 당신을 기억하는 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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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사, 기쁨과 희망의 여정
김선필 지음 / 눌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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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회가 어떤 걸음으로 걸어왔는지, 알 수 있는 책이다. 기존의 책들과는 달리 다양한 시선으로 교회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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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사, 기쁨과 희망의 여정
김선필 지음 / 눌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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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주교 신자다. 어릴 때 친구들 따라 교회를 전전하다 일곱 살 때 성당에 정착했다. 그 후로 40년 동안 천주교 신자로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신심이 깊은 건 아니다. 물론 젊은 날 많은 시간을 교회 사목에 투신하며 그 분 가까이에 머물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삶이 퍽퍽할 때는 신앙에서 멀어지기도 했다. ‘먹고 사니즘’이 중요한 상황에서 삶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신앙인이 된다고 해서 신심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지 않는다. 마치 인생에 생기는 여러 굴곡처럼 심신이 올라갈 때도 있고 바닥을 칠 때도 있고,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는 때도 있다. 그래서 내 신앙 그래프는 수많은 곡선들로 이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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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모습도 이와 닮아있다. 신자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선교사들이 있었을 때도 있었고, 교회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세상의 어둠을 외면한 때도 있었다. 그래서 교회의 그래프도 올라갔다 내려갔다하는 곡선을 갖고 있다. 교회라고해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늘을 향해 쫙- 치솟는 그래프를 그리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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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이 명확해 진 것은 최근에 읽은 《한국 천주교회사, 기쁨과 희망의 여정》(김선필, 눌민, 2021) 덕분이다. 300페이지가 넘는 책 속에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는데, 시선이 좀 남다르다. 그동안 한국천주교회사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조선시대 때 한국에 왔던 선교사들의 편지를 읽기 위함이었다. 교회의 역사를 알아야 그들의 편지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아 관련 책들을 더러 읽었는데, 이 책은 그동안 내가 읽은 책들과 조금 다른 결을 갖는다. 그것은 저자가 살아온 삶의 여정이 남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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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선필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천주교 신앙을 이어받아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결국 평신도의 삶을 선택’했다. 광주와 수원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을 배웠고, 제주도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한국 천주교회를 중심으로 종교사회학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신학을 배우고 사회학을 공부한 ‘사회학자가 한국교회를 사회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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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건 목차에서 발견한 ‘황사영’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정조 승하 후 순조가 즉위하고 정순왕후가 대리청정을 시작하면서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일어났다. 황사영은 조선의 실상을 북경의 주교에게 알리기 위해 베론으로 숨어들어 토굴에서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하얀 명주천 위에는 조선에서 순교한 사람들의 이름과 조선의 현실, 서양의 큰 배를 보내 죽어가는 신자들을 구해달라는 청원이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 편지는 북경에 전해지기 전에 조선에서 발각되었다. 이 일로 황사영은 능지처참(팔 다리, 어깨 가슴 등을 각각 벤 후, 심장을 찌른 뒤 머리를 잘라내는 형벌)당하고, 가족들은 거제도와 제주도, 추자도로 흩어져 살아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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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은 물론 교회 밖에서도 황사영에 대한 시선은 엇갈린다. 그가 교회를 위해 일하다 죽은 ‘순교자’라는 시선과 나를 팔아먹으려 한 ‘매국노’라는 시선이 존재하는 것이다. 황사영에 대해 김선필은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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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영은 교회의 입장에 충실했던 신앙인이자, 순교자였습니다. 또한 자신과 동료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신앙의 자유를 찾고자 노력했던 인권운동가였습니다. 반면 나라를 중요시하는 시각에서 보면 황사영은 개인의 이익을 나라보다 우선시한 배신자일 수 있습니다. 황사영이라는 다면적인 인물을 한쪽으로 바라보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황사영의 공과(功過)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 때, 그가 처했던 상황과 고뇌, 그리고 당시 교회와 한국 사회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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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영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 교회가 시작된 1784년부터 지금까지 교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맹인모상(장님이 코끼리를 만진다는 뜻으로, 맹인이 코끼리를 만진 후 자신이 만지고 느낀 코끼리가 진짜 코끼리라고 말하는 것을 비유)’처럼 일부만을 보지 말고 전체를 보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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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양한 시선으로 교회의 역사를 짚어간다. 교회가 빛과 그림자로 존재했던 시간들을 여러 가지 측면으로 분석하고 그 이유를 제시한다. 덕분에 나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협력했다는 오명을 가진 교회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일제강점기 때 교회가 때로는 침묵하고 때로는 일본에 협조한 이유에 대해 오랜 시간 박해를 받다 이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교회가 또 다시 박해를 받고 무너질 것을 우려해 교회를 지켜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최소한의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 그때의 교회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라가 망하고 백성이 핍박받는데 교회가 혼자 살아남는 게 무슨 의미냐고 하던 내가 ‘교회 입장’을 ‘생각’해 보게 됐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변화다.) 뿐만 아니라 근대 이후, 교회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지학순 주교 사건을 비롯해 김수환 추기경님의 행보들이 사회에 미친 영향을 살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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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끄덕이고 밑줄을 치며 읽은 《한국 천주교회사, 기쁨과 희망의 여정》에는 실로 거대한 자료들의 등장한다. 한국천주교회 초창기 자료는 물론, 교황의 사목교서, 공의회 자료, 단행본, 신문기사, 수많은 연구자들의 논문까지! 저자는 8년 동안 이 자료들을 보고 또 보며 한국천주교회가 앞으로 나가야 할 ‘기쁨과 희망의 여정’에 대한 글을 썼다. 한 사람의 역사를 추적하는 일도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일인데, 한국천주교회의 200년 역사를 톺아보는 일은 얼마나 고단한 여정이었을까! 고단했으나 분명 기쁨의 여정이었을 시간을 건너 교회에 대해 다양한 시선을 제시한 저자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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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겠다. 이 책을 읽으면 교회뿐 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어질 것이라고. 세상에 빛과 그림자가 존재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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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X다 - 부디 당신은 O를 골라요
김별로 지음 / 포르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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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를 장착한 리얼 항암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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