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의자놀이 -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평점 :
‘상상’은 ‘현실’이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나에게는 일곱 살 난 아들과 이제 막 돌이 지난 딸이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어느 날, 남편이 정리해고를 당하고, 내가 그 충격과 생활고에 휩싸여 베란다에서 뛰어 내린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삶을 등진 후 1년 뒤쯤 내 남편도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아버린다면...? 남겨진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그 아이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이런 상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상상을 해 보는 것은 이 끔찍한 일이 <의자놀이>에서 만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가족이 겪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트위터에서 <의자놀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나는 내가 이 책을 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책은 공지영 작가가 쓴 작품이었고, <도가니>처럼 사실에 근거하는 글임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난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를 읽지 못했다.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고, 책을 구입할 여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공지영 작가를 싫어해서도 아니었다. 이유는 단 하나, 그 책을 읽으면 내가 앓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청각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있고, 나는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수화를 배웠었다. <도가니>의 책장을 넘기는 순간 그 일은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 될 테고, 그 일은 나를 괴롭힐게 뻔했다. 나는 ‘아픔’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외면’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의자놀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진실을 알게 된대도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며, 또 아파하는데 며칠을 쓸게 뻔했다. 그래서 그 책을 ‘읽지 않을 책’으로 분류해 버렸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 책의 인세와 판매수익금이 모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기부 된다’는 글을 읽었다. 내가 이 책을 사기만 해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움직였다. 이 책을 사면 세상에 빚을 지고 사는 느낌, ‘무임 승차자’로 사는 느낌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좀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길래 작가가 인세를 모두 기부하는 건지, 쌍용자동차 이야기라는데 왜 제목이 <의자놀이>인지... 나는 ‘어쩔 수 없이’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구입했다.
다음 날, 책을 읽으며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것은 누군가의 삶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는 진실을 이제야 알았다는 ‘부끄러움’의 충격, 삶을 견디고 있거나 견디다 못해 죽음으로 뛰어든 사람들이 전한 ‘슬픔’의 충격,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저들의 폭행에 대한 ‘분노’의 충격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전에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나는 <의자놀이>가 던진 ‘괴로운 진실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밤 새 잠을 설쳤다.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머리에는 <의자놀이>라는 말풍선이 떠다녔다. 진실과 마주하는 일은 이렇듯 괴로운 일이었다. 나는 이 괴로움을, 아픔을, 충격을 덜어내기 위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친구들에 <의자놀이>를 추천하는 글을 올리고, 지인들에게 <의자놀이>를 구입해서 읽으라!고 종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 책을 구입해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뿌리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의자놀이>를 알리는 것으로 나는 그 덫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진실의 괴로움을 나누어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내 괴로움이 조금 덜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여기 10명의 사람이 있고, 7개의 의자가 있다. 그리고 이 10명의 사람이 손을 잡고 빙빙 돌고 있는데 누군가 호루라기를 분다. 사람들은 일제히 의자를 차지하려고 상대방을 밀쳐내고 있다. 누군가는 의자에 앉고 누군가는 밀쳐진다. 의자에는 ‘삶’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고, 내쳐진 사람 속에서 나의 아빠, 나의 남편, 나의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순간 <의자놀이>는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 되어버린다. 비참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상상을 한다. 여기 10명의 사람이 있고, 7개의 의자가 있다. 그리고 이 10명의 사람이 손을 잡고 빙빙 돌고 있는데 누군가 호루라기를 분다. 사람들은 일제히 7개의 의자를 나란히 붙이고, 자기의 자리를 좁히고 모두가 함께 앉고 있다. 의자에는 ‘함께’라는 이름표가 걸려 있다.
자, 당신은 어떤 상상을 하는 게 더 즐거운가? 나는, 그리고 당신은 어떤 것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을까? 나는 믿고 싶다. 나와 당신과 우리는 모자라는 의자를 붙여 함께 앉기를 바라고 있다고. 그 바람이 현실이 되도록 노력하고 싶어한다고.
나는 이제 이런 상상을 한다. 다 함께 손을 잡고 빙글 빙글 돌고 있을 때, 누군가 의자 하나를 살짝 갖다 두는 모습을. 또 하나의 의자를 갖다 두기 위해서 이 책을 펼치는 당신의 모습을. 그리고 나는 믿는다. 이 상상이 현실이 될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