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과 랄프 - 기꺼이 서로를 살게 하는 사랑에 대하여
찰리 스미스 지음 / 좋은생각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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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없는 사랑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나는 더 애틋한 무언가를 품은 사랑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존재했으나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사랑 이야기, 아니 삶의 이야기에.

일제강점기에 연인이 된 일본인과 조선인, 일본에서 결혼을 하고 살다가 해방 이후에 북한으로 가서 정착한 이들, 혹은 한국전쟁 그 극한의 시절에 꽃피운 사랑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에 마음이 끌려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곤 한다.

<유선과 랄프>는 그 시절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내게 온 ‘또 하나의 사랑, 또 하나의 삶’이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었던 1950년대 초, 유선과 랄프는 ‘가족을 잃은 한국인 여성’과 ‘전쟁을 위해 한국에 온 미국 군인’으로 만났다. 일터에서 만난 이들은 유선의 가족을 찾는 일을 함께 하면서 연인으로 발전했다. 두 사람은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는 한국에서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린다. 랄프의 한국 소식은 편지가 되어 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날아간다.

전쟁이 끝난 뒤, 랄프는 귀환 명령을 받는다. 랄프는 아내와 아이와 함께 한국을 떠난다. 1950년대, 동양에서 온 작은 여자가 낯선 땅에서 견뎌야 했을 차가운 시선과 외로움을 랄프는 최선을 다해 보듬었다. 유선과 랄프는 미국과 독일과 다시 한국과 다시 미국...으로 옮겨 다니며 군인과 군인가족으로 살아간다.

세월이 흘러 1990년이 되었을 때, 북한에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유선의 가족들이 북한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유선을 위해 랄프가 수십년 전에 적십자를 통해서 소식을 수소문한 덕이었다. 북한과 미국으로 편지가 오가고 얼마 후 유선은 북한을 방문해 가족들을 만났다. 그러나 그토록 그리웠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 후였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 이렇게 수많은 사연이 깃들 수 있나?’. 유선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 생각을 했다. 유선의 삶이 하나의 역사였구나...

역사가 된 유선의 사연들은 유선의 몸을 상하게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현재에 최선을’ 다했다. 유선은 신장 투석을 하면서도 랄프가 운전하는 캠핑카를 몰고 세계 곳곳을 누볐다. 유선을 위해 투석 장치를 챙기고 병원들을 미리 알아보고 일정에 맞춰 캠핑카를 몰았던 랄프 덕분이었다.

죽음이 도처에 있는 전쟁터에서 시작된 <유선과 랄프>의 사랑은 긴 세월을 건너며 역사가 되었다. 그들을 말한다. 세상의 모든 시간 속에는 사랑이 존재했다고. 그 사랑 덕분에 세상이 존재하고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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