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평전 - 고뇌하는 진화론자의 초상
에이드리언 데스먼드 외 지음, 김명주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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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엄해보이는 얼굴에 흡사 성자와 같이 흰 수염을 늘어트리고 있는 다윈은 무척이나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예전에 종의 기원을 읽어보며 이 사람의 이력에 신학대학을 졸업했다는 경력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되자 확신으로 굳어졌다. 이 사람은 아마 일평생 일탈을 몰랐을 영국신사였을 거라고. 또한 '진화론자 다윈'으로 이름난 이사람은 초년에 진화론을 주장했고 오로지 그것만을 연구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전부다.  

여태껏 이 사람은 일평생 일탈 한 번 안해봤을 거라 착각했던 사람이 또 있었다. 헤겔, 그리고 비스마르크. 이 두분 모두 초상화만 보고 내 멋대로 선입견을 가졌을 뿐, 이들의 초년 생활은 지금의 나 저리 가라할 정도로 문란했다(?). 다윈도 그러했다. 믿기지 않은 일이지만 이 근엄한 신사는 학업은 저리 내팽겨치고 자기 하고 싶은 곤충 채집이나 해양생물이나 실컷 잡으러 다녔고 다윈의 아버지와 누이들은 이 방탕한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늘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그러나 다윈은 지금의 배째라 대학생들과는 달랐다. 동, 식물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과 열정이 있었으니깐.(그리고 일안해도 평생을 호위호식 하며 살게 해줄 갑부 아버지도 있었다)  

다윈이 비글호에 타기로 결심한 순간 이 탕아의 운명이 바꼈다. 동시에 역사도 바꼈다. 비글호에 탑승해 세계일주를 하며 다윈은 온갖 다양한 동, 식물을 접하고 대륙이동설의 선구가 될 증거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유명한 갈라파고스 섬에서 장차 그를 진화론으로 이끌 핀치들을 발견하게 된다.(정작 다윈 자신은 핀치의 다양한 변종에 대해 별 관심도 없었다고 한다 조류학자의 지적을 받기 전까진) 세계 일주 후의 다윈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미 다윈은 탕아가 아니라 주목받는 신예 자연학자이자, 지질학자였다. 그리고 어느덧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당시에는 금기시되던 질문이 제시되고 있었다. '종은 불변하는가?' 

 '진화론'의 다윈이라지만 다윈은 그 이전에 미세 동물, 다양한 식물들에 대한 견실한 연구, 혁신적인 지질학 이론으로 주목받는 기성학자였다.(다윈이 진화론 발표전에 그보다 더 우선순위를 두고 갯바위에 붙어사는 그 흔디 흔한 따개비를 무려 8년을 연구한 사실을 아는가?)먹고 살 걱정없는 신사들만이 과학자가 될 수 있었던 시대답게 다윈 역시 향사 신분으로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고 영국 사회의 상층부에 속해있었다. 이토록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던 다윈에게 진화론은 부끄러운 혼외자 같은 존재였다. 진화론을 발표하는 순간 그는 자기가 속하고 있던 상류사회에서 추방당해서 부와 명성을 잃을테니 말이다. 학자적 양심과 세속적 야망사이에 갈등은 다윈에게 막대한 중압감으로 다가와 다윈은 평생 위통증을 앓아야했다. 

결국 다윈이 진화론을 꺼내놓은 것은 자의반 타의반이었다. 윌리스가 다윈보다 먼저 진화론을 주장할 낌새를 보이지 않아다면 진화론의 발표는 20년이 아니라 다윈 사후에도 발표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신중한 다윈씨. 무려 20여년간의 연구과 숙고 끝에 진화론이 세상에 나왔다. 20년. 흔히들 잘못알고 있는 것처럼 진화론은 일순간에 반짝이는 착상 속에서 나온 물건이 아니었다. 구시대적 윤리, 과학관에 집착하는 오언과 같은 작자들이나 성직자들은 저자는 인간을 타락시켜 짐승으로 만든 악마다라고 손가락질 했지만, 20년간의 산고 끝에 나온 진화론과 자연선택설은 금새 주류적 이론으로 자리잡았고 다윈은 영국, 아니 세계최고의 저명인사로 떠오르게 된다. 

그쯤하면 뒷짐지고 앉아 거들먹거리며 명예와 부를 누리고 살아도 충분할텐데 이 사람은 종의 기원을 쓰고도 도대체 쉬려고 들지 않았다. 그 후로도 종의 기원의 후속편이라고 할만한 인간의 기원을 쓰고 식충식물을 연구하고, 식물의 수분을 연구하고, 지렁이를 땅 속에서 파해쳤다. 그대로두면 연구하다 죽을 듯해서 아내 에마가 억지로 끌어내서 휴가를 보낸 것이 도대체 몇 차례였던가? 이사람 다윈의 열정과 성실함에는 후커와 헉슬리 같은 지지자들은 물론이요, 진화론의 반대론자조차도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일평생 원인불명의 위통증과 셀수없을 만큼 잔병치레로 차라리 죽고 싶다는 말을 몇번이고 입에 담았던 다윈이건만, 구토발작으로 하루종일 고통에 몸부림치더라도 오직 1시간 연구를 하기위해 일어서는 모습에는 나조차도 존경의 염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에 들어 다윈은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인 중 하나로 손 꼽힌다. 다윈 이전과 이후로 세계는 나뉘어진다. 그가 있었기에 인류는 고리타분한 윤리의 구속에서 해방되어 자신의 기원을 성서가 아닌 자연에서 찾게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계속되던 인간해방이 마침내 다윈에 의해 실현된 것이다. DNA를 자유로이 조작하여 신의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는 지금의 생물학도 선지자 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찾아온 십계명 종의 기원으로부터 출발했다. 우리는 이 사람에게 무한한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 사람을 알게되면 그 다음부턴 그의 작품에도 애정이 생긴다. 이제 내게 종의 기원은 죽은 문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생한 육성으로 다가온다. 즐거운 마음으로 귀를 귀울여 본다. 대학자의 따스한 설명을. 인류의 기원에 관한 놀라운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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