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택시 - 매 순간 우리는 원하지도 않았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지점들을 지난다 아무튼 시리즈 9
금정연 지음 / 코난북스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점점 택시를 타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구체적인 횟수까진 적어두지 않아 모르겠지만,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급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택시를 부른 건 아니었다. 보통은 택시를 탈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느긋하게 나를 밀어 넣는 패턴이었다. 금요일 밤 독서 모임에서 늦은 수다를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이어지는 토요일 이른 아침 일본어 과외를 위해, 때로는 집에서 걸어가면 20분 거리인 업체로의 외근을 위해서도 택시를 불렀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충분히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시간이고 거리였지만 굳이 꾸물거렸다. 성남에서 서울 혹은 그 반대의 코스, 구체적으로는 삼성, 압구정, 안국, 건대 같은 곳들. 적게는 1만 5천 원에서 많게는 할증 붙어 3만 원 정도, 우리 집이 잘 살거나 돈이 많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아버지가 택시 드라이버였거나 내 스스로가 택시 덕후인 것은 더더욱 아니고, 뭐랄까... 요즘의 나는 어쩌다 보니 모든 일들을 그렇게 처리하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시간이라는 적을 향해 날리는 섀도 복싱 같이.


- 쉬익. 쉬이익.


이 소리는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이 소리는 동부간선도로를 달리는 택시 뒷좌석의 창틈으로 불어올 바람의 소리다. 그것도 아니면 내 통장 잔고에 뚫려있을 작은 구멍에서 나는 소리라든가. 하지만 까짓것, 택시비야 다시 벌면 그만 아닌가? 나는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그렇게 흥청망청 마시는 편도 아니니 말이다.(스튜핏(!)한 지출은 책 값 정도?) 자칭 생계형 서평가라는 금정연 씨의 사례를 살펴보면 나 정도는 양반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될 것이다. 그는 택시, 담배, 술 등(책 값은 말할 필요조차...) 모든 수치에서 나를 앞서고 있었다. 적어도 이번 생에 내가 그를 추월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튼, 택시』를 읽은 건 어느 화창한 일요일 오후의 일이었다. '택시는 내게 다리나 마찬가지'라는 대책 없는 고백으로 시작되는, 그야말로 택시의, 택시에 의한, 택시를 위한 에세이집이었다. 심지어 이 책의 인세 수익 대부분은 택시요금으로 쓰일 것이라는데... 처음엔 이게 대체 뭔 소리인가 싶었지만 역시 금정연이었다. 이 얼마나 소설 같은 일상인가? 아니면 일상 같은 소설인가!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물음표는 느낌표로 변해갔다. 피식거리게 되었다. 책을 펼친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만약 택시 뒷좌석이었다면 나는 기사님께, 부탁이니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조금만 더 돌아가 달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천만다행이었다.


미터기 대신 탁상시계를 흘끔 본 순간, 세븐 세그먼트로 표시되는 숫자는 어느새 약속 시간인 6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정확히 딱 그때까지는 여유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택시를 부르기에는 어딘지 아쉬운 시간이었고, 그래서 조금 더 꾸물거릴 수 있었다. 그 후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나도 정말 지긋지긋한 인간이더라. 변명을 위한 변명 같은 것들이 이제는 일종의 패턴이 되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서울시가 택시비 인상을 계획하고 있다는 뉴스를 읽었던 게 기억난다. 큰일이다. 금정연 씨에게도, 내게도... 사실이라면 올해도 기록은 다시 쓰여질 것이다.


- 쉬익. 쉬이익. 쉬이이익.


이 소리는 분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