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암살자 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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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란에 올라오는 사람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눠진다. 망자 스스로가 유명했거나, 아니면 유명한 사람과 관계되어 있거나. 전자도 후자도 아닌 보통 사람들의 죽음은 대부분 널리 알려지지 않는다. 이 세상 모든 죽음이 기사화되기에는 부고란에 주어진 지면이 너무나 한정적이다. 한정적인 지면에서는 으레 드러난 부분들을 다루게 된다. 최소한의 입력이 최대한의 출력이 될 수 있도록, 그러니까 지극히 경제적인 방식들로 말이다. 유명세가 부고란 입성의 잣대가 되는 이유도 이와 같다. 부고란에서는 이미 공공재가 되어있던 삶들이 다시 한 번 공공재가 되어버릴 죽음으로 포장된다. 머지않아 소비된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망자의 동의는 생략한 채로. 보통은 이런 문장들로 시작된다. 

25세의 로라 체이스 양이 5월 18일 오후 서쪽으로 운전하던 중 차가 다리 위 공사 지를 보호하고 있던 방벽 사이로 빗나가 다리 아래 협곡으로 추락한 후 불길에 휩싸였다. 체이스 양은 즉사했다.


아니면,

아이리스 체이스 그리픈 부인은 지난 수요일 향년 83세로 이곳 포트 타이콘드로가에 있는 자택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라든가.

죽음의 명시 이후는 망자가 남긴 업적과 피붙이, 연인의 존재에 대해 서술되기도 하고, 뒤따르는 의혹과 가십들로 채워지기도 한다. 수 십 년의 삶이 한 페이지의 토막 기사로 갈무리된다. 사람들은 그런 부고를 읽는 데 2분? 아니 빠르면 단 몇 십초 정도를 머무를 뿐이다. 망자를 애도할 틈이 없다. 하긴 요즘은 검은색 근조 리본(▶◀) 조차 Ctrl + C, Ctrl + V로 해결하는 시대니까.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구식인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25세 로라 체이스와, 83세 아이리스 체이스의 죽음. 운 좋게도(?) 두 사람은 모두 부고란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어려서는 지역사회를 지탱하던 체이스 가의 일원이었고, 자라서는 신흥 자본세력인 그리픈 가에 종속되어 살았다. 어찌 보면 그들의 배경에는 자본이 늘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부고만 읽은 사람들은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두 사람 다 안타깝긴 한데, 그래도 나름 잘 살다 갔네. 부족한 게 뭐가 있었겠어. 그저 운전은 좀 조심하지..." 질투 반 동정 반 정도의 마음이랄까? 아마 나조차도 그랬을 것이다. 『눈먼 암살자』라는 소설을 끝끝내 읽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소설은 부고를 읽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소설과 부고 양쪽 모두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었지만, 소설을 읽는 쪽이 몇 백 배는 더 소모되었다. 시간도, 마음도,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남아있는 수많은 물음표들 모두. 아이리스는 자신의 삶이 평범한 부고로 점철되길 바라지 않았다. 홀로 남은 노인은 초연한 듯 초연하지 못했다. 지독하리만큼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데 몰두했다. 회고하고, 소설을 썼고, 또 소설 속 인물의 손을 빌려 다시 한 번 소설을 썼다. 어쩌면 손녀 사브리나에게는 잠깐의 흥밋거리조차 되지 않았을 가족의 역사에 대해 기록했다. 은유하고, 은유하고, 다시 은유했다. 훗날 누가 읽게 되더라도 그녀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하고,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깊은 늪과 같은 구조 속으로 자신을 파묻었다.

이 모든 기록이 로라의 죽음에 대한 부채의식을 덜어내기 위해서였는지, 혹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완전 무결함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끝내 이 소설 속에 드러나 있지 않은 것으로 나는 읽었다. 확신한 것은 한 가지뿐. 아이리스, 그가 죽음이라는 장면에 다다르게 되기까지 허투루 쓰인 글귀는 단 한 줄도 없었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누구를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가? 나 자신을 위해서? 그건 아니다. 나중에 이것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나중'이라는 시간 자체가 불확실한 상황이니까. 미래에, 내가 죽은 이후, 어떤 낯선 사람을 위하여 쓰는 것인가? 내겐 그런 야심, 소망이 없다."

덧) 이 문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우린 모두 자신을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 우리가 죽고 나면 누구도 대신 써줄 수 없는 이야기를 저마다 안고 살아간다. 부고는 절대 그런 이야기를 써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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