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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 -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하늘 좋던 목요일 오후, 한적한 정릉에서 『아이네이스』를 읽었다. 조선 왕후의 무덤 옆에서 읽는 로마 조상의 이야기라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전지전능한 유피테르 신도 이 동네까지는 관할하지 않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일본어 수업이 끝난 토요일 오후에는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베이비 드라이버」를 봤다. 팝콘 뮤비였다. 나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이어폰을 끼고 싶어졌다. 아이팟 대신 노트 5, 선글라스 대신 부릅 뜬 눈빛으로 스텔라장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계륵」, 「환승입니다」, 그리고 다시 「계륵」. 그 단순한 패턴이 일주일이나 갈 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었다. 다시 토요일, 홍대 와우북 페스티벌에 갔다. 부스에서 일하는 지인을 만나 셀카를 찍었다. 하나, 둘, 셋, 찰칵. 분명 숫자는 내가 카운트했는데 사진 속에서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은 지인이 아니라 나였다. 추가 촬영을 몇 회 더 시도했으나 전부 실패했다. 나와 지인은 다음을 기약했지만 정확히 30분 뒤 그 셀카는 단톡방을 떠돌게 되었다. 셀카 따위...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부스에서 사온 찰스 부코스키의 시집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을 펼쳐봤다. "just drink more beer. more and more beer.", 아직 술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았던 시간. 유독 그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부코스키의 문장으로 블로그 상태 메시지를 바꿔버렸다. 그 사이 602번 버스는 drive through hell. 달리고 달려 기자의 방으로 향했다. 맥주 대신 위스키와 포트와인을 마셨다. 싸구려 방에서는 제아무리 비싼 술을 마셔도 싸구려의 맛이 났다. 벌컥 벌컥 마시다 보니 열 시도 못 넘기고 잠들어 버렸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유부남이 되어버린 은행원만이 집에 돌아가야 했기에 정신을 잃지 않았다. 그가 증거로 제출한 사진 속에서 나와 기자는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굴욕적인 사진을 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술 더 떠 나는 술을 마시면서 자꾸만 "おまえは~"를 외쳤다고 한다. あなた도 아니고 おまえ라니. 부끄럽다. 기억이 돌아오더라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말하고 싶은 일요일 아침이었다. 다시 일주일. 연휴 전 마지막 일주일은 『눈먼 암살자』 1권을 들고 다녔다. 월 화 수 목 금. 5일을 들고 다녔고, 6일째인 토요일. 오늘은 몇 페이지 넘겨볼 수 있었다. 분량이 2권 이상 되는 영미소설에는 언제나 최소 삼대 이상의 스토리가 펼쳐진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주인공. 때로는 이웃집 아저씨나 고모나 보모들까지. 가계도와 가풍이 파악이 되기 전까지, 그러니까 초중반이 고역이다. 꾸역 꾸역 그 구간을 넘기면 그때부터 꿀잼이고. 일본어 과외가 끝나고 홀로 남은 삼성역 스타벅스에서 읽다 졸다를 반복했다. 282페이지까지 도달했을 때, 일곱 번째 줄에서 『아이네이스』를 발견했다. 릿터 7호의 인터뷰에서 『아이네이스』가 『눈먼 암살자』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라고 했던 한 줄이 내 핸드폰에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2주 전 『아이네이스』를 먼저 읽게 되었던 것이다. 아직까지는 『아이네이스』의 어느 부분이 모티브가 되었는지는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한 권은 다 읽고 카페에서 나오려고 했는데, 오늘은 5시가 마감이었다. 연휴라서 그랬던 건가. 잘 모르겠다. 가방으로 되돌아간 『눈먼 암살자』를 언제 다시 꺼낼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민나노 日本語』 3권의 옆자리에서 다시 만날 날까지 편히 잠들어 있기를.(아마도 다음 토요일까지)
몇 주 전 『모든 요일의 기록』 독후감은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모든 요일마다 한 줄씩 끄적여서 완성시켜 보자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는 자주 읽고, 매일 듣고, 이따금 찍고, 종종 배운다. 김민철 작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니 그것들을 모아서 쓰면 자연스레 이 책과 같은 독후감이 나오지 않을까? 심지어 기억력 측면에서는 작가보다 내가 우위에 있다고 자부하니까 어쩌면 더 나은 상황이 아닌가? 뭐, 대충 이런 망상들. 하지만 모든 요일의 경험은 고스란히 모든 요일의 기록으로 남겨지지 못했다. 기록하지 않은 것들 중 대부분은 끝내 '기억나지 않음'으로 기록되었다. 복원되지 않았다. 그나마 머릿속에 남아 있는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재구성한 결과가 저 위의 잡문이다. 손가는 대로 끄적이고 난 글을 쭉 다시 읽어 봤다. 콕 집어 뭐라 설명은 못하겠지만 참 한결같은 취향이 보인다. 구질구질한 독서들. 그나마도 토요일 위주로. 그러고 보니 블로그에 글을 잘 남기지 못하게 된 지 오래되었다. 자연스레 방문자 수가 줄었고, 이웃 수도 줄었다. 늘어나는 건 스팸 쪽지뿐이다. 녹색양말님 b★log를 매※입하고 싶은데요. 블라블라, 팔면 200만 원이란다. 됐고, 아무튼 잘 쓴 에세이. 잘 쓴 독후감의 요인은 뭘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잘 쓰는 작가를 따라서 무작정 기록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렇게 몇 자만 끄적여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A가 쓴 글을 읽고 나면 A라는 사람이 떠올라야 한다. 아니면 A를 드러내는 키워드라도. 『모든 요일의 기록』을 읽고 나면, 한 평생을 바르게 자라온 사람이 떠오른다. 이 사람은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혼자서 열심히 동기부여하면서 매 순간을 헤쳐나간다.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부끄러움이 많지만 뻔뻔하기도 할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김민철 작가의 캐릭터가 하나, 둘 그려지고 있었다. 내가 그려낸 캐릭터는 당연히 작가의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다음 문장을 읽게 만드는 것도 내가 그려낸 그 캐릭터다. 그래서 독자에겐 캐릭터가 전부가 된다. 김민철 작가는 자신의 캐릭터를 대놓고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달리 카피라이터가 아니었다. "에이, 말도 안 되잖아. 너무 오글거리는 거 아니야?", 나는 툴툴거리면서도 페이지를 계속 넘겼다. 그러다가 다음 책 『모든 요일의 여행』도 샀다. 언제쯤 꺼내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문득 '모든 요일의 OO' 시리즈가 어디까지 나올지도 궁금해졌다. 잘 쓴 에세이를 더 많이 읽고 싶다. 그 안에서 잘 다듬어진 캐릭터들과 조우하다 보면, 나도 언젠가 다듬어진 블로거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위대한 작가나 위대한 독자는 아니더라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