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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
최정화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11월
평점 :
자체 품질 테스트 중 제품이 동작을 멈췄다. 케이스를 뜯어내고 MCU 칩 위에 손가락을 올려보았다. 역시나 뜨거워져 있었다. 과전류. 어디선가 쇼트가 났거나, 아니면 전원 회로단 저항값 문제이거나 둘 중 하나. 답은 후자였다.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프로토 타입 개발을 진행하다 보면 비일비재한 일이니까. 나처럼 어리바리한 엔지니어가 설계한 회로의 경우는 더욱더. 열 번의 프로그램 시뮬레이션보다 한 번의 테스트가 더 중요한 이유다. 수땜으로 저항을 바꿔 달던 사수가 내게 말했다.
"PCB 기판에 붙어 있는 저항 소자 하나, 캐패시터 소자 하나. 이런 부품들을 보면 내가 무슨 생각이 드는 줄 알아? 내가 볼 땐 얘들이 딱 우리하고 똑같은 것 같아, 값이 0옴이든 1K든 간에 문제가 생기면 떼어내고 바꿔 달면 그만이잖아?"
"그러면 팀장님이나 임원분들은요?"
"그 사람들도 잘해봤자 LDO나 MCU쯤 되겠지. 저항보다 조금 비싸기는 해도 바꿔 달면 그만이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사실이었다. 회사는 그런 곳이었다. 버티지 못하는 사원이 발생하면 바꿔 달면 그만이었고, 타버린 임원이 있다면 그 또한 바꿔 달면 그만이었다. 기판 위에 배치된 이유를 부품이 제 스스로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아니 신경 쓴다 해도 뭘 어쩌겠는가. 포장 밖 세상도 보지 못한 채 서랍에 쌓여있는 부품들보다는 훨씬 나은 처지 아니던가? 나 또한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해왔다. 적어도 붙어있는 동안만큼은 불만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불안이 있었다. 기판 위에서 언제라도 떨어져 나갈지 모른다는, 그렇게 버려진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을 것만 같은.
소설의 주인공 무오는 떨어져 나간 부품이었다. 무오의 불안을 한눈에 알아본 이부는 그의 쓰임새가 다른 판위에 있다며 그를 꾀어냈다. 무오의 쓰임새란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또 다른 부품들, 그러니까 소설의 표현으로는 도트(dot)들을 추적하는 일이었다. 직접적인 위협이나 그 어떤 폭력도 없이 그저 추적하는 일. 그뿐이었다.
이야기는 이부의 지시와 무오의 수행, 그리고 다시 지시로 계속 이어져 나간다. 지시와 수행의 틈새에서 무오는 자신이 자리 잡아야 할 위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용역인가? 노조인가? 아니면 다시 이전의 직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인가? 떨어져 나간 부품이 다시 기판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점점 커져가는 불안감 속에서 무오의 존재는 점차 희미해져만 가고, 무오가 쫓던 도트 또한 점차 광기에 휩싸여 간다.
소설 속 문장들은 무척이나 건조했다. 사무적인 어투로 아무렇지 않게 툭툭, 마치 이부처럼 문장도 나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앉은 채로 읽지만 말고 무오의 뒤를 밟으라고 말이다. 따라간 그다음은? 물론 그다음 같은 건 없었다. 내가 해야 할 일도 그저 끈질기게 추적하는 일. 그뿐이었으니까.
무오와 나. 우리 둘 모두는 주어진 지시 뒤에 숨은 의도를 파악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가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며 읽고 있는 걸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 소설은 이미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무오의 상태 역시 손쓸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고 있었다. 애초에 이 모든 결말을 예측하고 있었을 사람들. 이부와 최정화. 그들의 입가에는 잔잔하게 미소가 번지고 있으려나?
힘의 불균형은 보유하고 있는 정보의 차이에서 온다. 얼마나 더 알고 혹은 더 모르고, 아는 이에게는 여유가, 모르는 이에게는 불안이 주어진다. 모르는 이가 아는 이를 이기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모르는 이들은 아는 이들의 목적에 의해 끊임없이 시험당하고, 교체당하고, 버려진다. 설계자에게는 부품을 떼어난 이후의 계획이 있지만, 부품들에게는 떼어진 이후의 계획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현실 속 부품들(혹은 도트들,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고 시위를 한다. 버려질지언정 잊히고 싶지는 않다며 목소리를 모은다.
소설은 시종일관 침울했다. 『없는 사람』이라는 제목처럼 한때는 있었지만 지금은 여기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없다. 말 그대로 이야기만 남았다. 하지만 현실은 소설보다 더 독하다. 남았어야 할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사라지고 없다. 아는 이들은 알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고, 모르는 이들은 모르기 때문에 말하지 못 했다. 지금 여기에 있었어야 하는 사람들인데도 아무도 몰랐다. 누군가는 알면 다친다고 했다. 정말로. 모르는 게 다행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