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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낯선 ㅣ 오늘의 젊은 작가 4
이장욱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평점 :
주말이면 광화문을 가득 매우는 수많은 촛불들에 대해, 불어오는 겨울바람과, 불어나는 국민들의 바람 중 어느 쪽이 더 강할지에 대해. 셔츠 맨 위 단추를 반드시 풀어둬야 하는지에 대해, 고은과 오은 시인에 대해, 몇 페이지 읽지도 않을 거면서 가방 안에 넣고 다니는 양장본에 대해. 이장욱 소설 『천국보다 낯선』의 A는 대체 누구인가에 대해, 그녀가 춤추는 동선에 나도 모르게 취해 있던 밤에 대해, (잠깐, 그런 밤이 실제로 존재하긴 했었나?) 혹은 그랬다손 치더라도 전혀 이상함이 없을, 지나가버린 어떤 시절들에 대해.
생각이 자꾸만 변해간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뻗어간다. 한때 나의 생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점차 세상의 모습과 닮아가고 있다. 어쩌면 나는 지금, "늙어가고 있습니다."하는 이야기를 돌려 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 기록하고 있다. 서평도 일기도. 업무용 플래너에 적는 일정도 모두. 시절 속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 그 경계에 남은 것이 그저 몇 줄 글자뿐이라는 게 때로는 측은해진다. 그게 너무 쉬운 것처럼 느껴져서. 그건 너무 쉬워서.
어제는 시집을 읽다 말고 가만히 바라봤다. 얼굴 말고 거울을. 사포처럼 까끌까끌해 보이는 턱밑이 지난 한 주간의 피로를 대변하고 있는듯했다. 문득 『천국보다 낯선』의 '김'이 떠올랐다. 그 시간 나는 왜 책상에 앉아 '김'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최'나 '정'이 아닌, '김'이 먼저 떠오른 것은, 그가 나의 A와 가장 가까운 인물이었기 때문인데...
아름다우면서도 섬뜩한 문장들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어졌다. 책을 덮는 순간 밀려온 기시감. 무언가에 홀린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저런 씨팔놈이, 눈은 장식으로 달고 다니나." 52페이지의 그 욕설처럼, 내 눈은 분명 많은 글자를 읽었지만, A에 대한 단서들은 쉽사리 기억나지 않았다. 매번 이런 식이다.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A는 대체 누구인가? 질문이 한참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낯선 작가의 낯선 소설이 남긴 수수께끼. 답 없는 답을 찾아 헤매는 사이 계절은 시나브로 겨울이었다.
A는 죽음 아닌가? 사랑이지, 첫사랑! 절대자? 나의 판정은 매일같이 변해갔다. 어떻게 읽어도 다 맞는 말 같았지만, 어떻게 읽어도 다 틀린 말 같았다. 미지수 A와 방정식 사이에는 공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글을 적는 시점에서, 그러니까 지금의 A는 '지나간 과거의 나'로 추정한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 결국 너(지금의 나)도 나(과거의 나)처럼 과거로 묻히게 될 것이라는 부름. 모든 건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나와 나들의 대화. 그렇게 생각하면 이 소설은 조금 더 무서워진다. 고작 몇 시간 뒤면 나를 잠에서 깨울 알람만큼이나.
아침이 밝아오면 A는 또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는지 모르겠다. 영화와 달리 소설에는 엔딩 크레딧이 없다. 덕분에 BGM도 생각을 따라 끊임없이 흘러간다. 레이첼 야마가타여도 좋고, 스크리밍 제이여도 좋다. 아무 곡이면 어떠한가. 떠오르기만 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글의 끝에서 이렇게 아무 말이나 적으면서, 맨 처음 쓰고자 했던 글의 전개를 떠올려본다. 다행이다. 기록하지 않았기에 모든 것이 기억나진 않는다. 어쩌면 첫 글자를 타이핑할 때부터 나는 글이 이렇게 흘러갈 것임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고 내 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과거의 나뿐인가 싶어 괜스레 또 측은해진다.
지금의 나에게는 과거의 내가 조금 낯설어서, 살짝 이상한 사람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