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폭한 독서 - 서평가를 살린 위대한 이야기들
금정연 지음 / 마음산책 / 201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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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점심, 아버지와의 식사. 어머니는 파마를 하러 나가신 후 연락두절.

 

 

 

아버님   아들아, 내 너한테 할 말이 조금 있는데 말이지.

아들놈   그냥 편하게 말하시면 되실 것을. 어찌 그리 무게를 잡으시는지요.

아버님   그래, 니가 회사일을 열심히 하는지 어쩌는지는 모르겠다만, 주말 밤이면 방구석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들긴다는 소문이 있던데.

아들놈   가끔 독후감을 쓰고는 합니다만.

아버님   그렇지. 독후감. 네 엄마 말에 따르면 가끔씩 책도 공짜로 받고 그런다면서?

아들놈   예전에 몇몇 출판사에서 내다 버리는 셈 치고 한 권씩 보내주기는 했습니다만,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없습니다. 글쓰는 기한을 한참 넘겨버리기도 하고, 증정받은 책에다가 별점 테러를 하기도 하고, 또 뭐랄까...

아버님   됐다. 아무튼 글을 쓰기는 쓰는 모양이구나.

 

짧은 침묵. 숟가락이 입으로 두 세번 오간다.

 

아버님   이번에 글 하나만 쓰자. A4용지 한 장 분량으로다가.

아들놈   네?

아버님   주제는 은퇴의 변. 그동안 이 회사에서 얼마나 많이 도움을 받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뭐 그런 글들 있잖아.

아들놈   아니 어찌 입사 3년차에게, 20년 이상의 회사 경험을 담아내라 하시는지요.

아버님   그냥 써. 너 독후감 쓰듯이 말야.

아들놈   제 글 읽어보신 적 없으시잖아요. 그걸 그렇게 썼다가는 말년에 사람들한테 조롱의 대상이 되실텐데요.

아버님   독후감 쓸 때 책 다 읽고 쓰냐? 그런거 아니잖아. 똑같아. 네 생각대로 그냥 쓰면 OK야.

아들놈   아니 그래도 이건 좀...

아버님   수요일까지다. 31일날 메일 돌릴거야.

아들놈   못쓰겠는데요.

아버님   한 번만.

아들놈   아뇨 절대. 다른 건 몰라도 이런 건... 아버지가 직접 쓰시죠.

아버님   아니 이런, 천하의 불효자식을 봤나...

아들놈   잘 먹었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아버님   야! 아들! 야! 야!

 

 

 

 

밥그릇은 싱크대로. 그리고 아들은 집 앞 카페로 피신한다.

 

일요일 오후였다. 날씨는 쌀쌀했고 집안 분위기는 더욱 쌀쌀했다. 빙하기가 도래하기 직전에 겨우 빠져나왔다.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전날 들고나갔던 가방은 그대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축복받은 집』이나 챙겨가지고 나올걸... 북클럽 1월 선정도서인데, 단편 「섹시」의 독후감만 하나 써놓고서는 아직 다 못 읽은 상황이었다. 대신 가방에는 『난폭한 독서』가 들어있었다. 이번 주 지하철로 오가면서 읽기는 다 읽었던 책이다. 금정연의 서평이 그래왔듯 명확하게 정리가 되는 책은 아니었다. 닉 캐러웨이의 비판론, 희망의 공식 R=VD, 트위터로 RT 조리돌림 당하는 이야기들만 드문드문 기억이 나는 정도였다. (아마 졸면서 읽어서 이랬겠거니. 지난주는 좀 피곤했다.) 흐린 기억보다 명확한 건 언제나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 쪽이다. 『난폭한 독서』를 읽으면서 읽고 싶어진 책들을 그때 그때 쟁여놨다. 금정연의 글감이 된 13편의 작품 중 4권의 책이 담겨있었다. 『가르강튀아/팡타그리엘』, 『걸리버 여행기』, 『외투ㆍ코』, 『미크로메가스ㆍ캉디드 혹은 낙관주의』가 그 목록이다. 이는 해당하는 장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반면 목록에 들지 못한 책들은 너무 두껍다거나(900 페이지 대 작품도 있었다.) 아니면 아직은 읽을 때가 아니라고(해당하는 장이 별 감흥이 없었다고) 느꼈거나 둘 중 하나의 이유였다.

 

아무튼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를 주문하 자리에 앉아 『난폭한 독서』를 꺼내 들었다. 다시 첫 장 라블레를 펼쳤다. 누가 후장사실주의자 아니랄까 모든 소설은 엉덩이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로 썰시작된다. 처음 읽었때의 기억들이 하나 둘 깨어난다. 이를테면 뿌직, 뿡 다시 뿡뿡과 같은 사운드들부터 말이다. 그다음 세르반테스 OK. 그리고 다음 볼테르도 OK. 점점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빨라진다. 그렇게 30분 만에 마지막 장 카프카에 도달했다. 정성일의 추천 글을 읽게 된 건 아메리카노가 채 식기도 전이었다. 물론 2회차라 가능한 이야기였. 1회차  무의식에 새겨뒀이미지를 다시 끄집어내고, 그 이미지를 필터 삼아 글을 읽는 것이. 그러면 내게 재미없거나 의미 없거나 하는 부분들은 알아서 제쳐진다. 흔히 말하는 속독과는 조금 다르다. 한 글자 한 글자 다시 꺼내 읽기에는 『난폭한 독서』의 분량도 결코 만만치 않다. 게다가 난 지금 학문으로써의 독서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잖은가. 그럼 이제 또다시 앞으로 돌아가 보자. 1,2회차를 마쳤으니 3회차로 가는 거다. 3회차는 끄적임이다. 보통 리뷰나 서평이라 말하고, 나는 감상이라 말하는 그 과정이다.

 

 

"어떤 작품을 정말 잘 설명하기 위해서는 작품 전체를 고스란히 다시 쓸 수밖에 없다." - 7 p.

 

 

난폭한 독서』 7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명쾌한 문장이다. 한 줄이면 『난폭한 독서』에 대해서는 굳이 감상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을 정도다. 동의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지만) 독자의 해석은 책의 어느 단면일 뿐이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에도 상세한 책의 내용 설명은 포기한다. 대신 책의 이미지를 뼈대로 쓴다. 2회차 독서에서 끄집어낸 이미지는 3회차 독서중요한 재료가 된다. 약간의 조리 과정을 거쳐 글 속으로 던져진. 그러면 책을 읽어본 사람끼리만 알 수 있는 지점이 감상에 새겨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워터마크처럼 말이다. 리뷰와 프리뷰가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 금정연의 글이 그 좋은 예다. 서서비행』에서 밝힌 것처럼 금정연은 책과 꼭 닮은, 책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서평을 쓴다. 『난폭한 독서』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종의 평행우주를 만들어 낸다. 그것이 금정연의 제1원칙이고, 그장마다 글쓰기의 장르를 넘나드는 이유이자유로워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집요한 글쓰기이다. 작가를 물고 늘어지고, 작중 주인공도 가만 놔두질 않는다. 현실로 끄집어와 거칠게 다루고,세게 다루고, 막 대한. 책 제목대로다. 그가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난폭한 독서』의 감상을 시작해볼까?

 

 

 

 

 

 

 

 

 

 

 

 

 

 

 

 

 

 

 

(그러기 앞서 일단 난폭한 독서를 읽고 오시오)

 

 

 

 

 

 

 

 

 

 

 

 

 

 

 

 

 

 

 

 

...

 

 

 

눈치가 빠른 분들이라면 벌써 알아차리셨을지도 모르겠다. 실은 『난폭한 독서』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 야심차게 3회차 독서 운운하며 글을 전개한지 10분 만에 소재가 다 떨어졌다. 이 책은 서평집이다. 금정연이다. 고전을 다루고 있지만 양장본은 아니다. 그래서 딱딱하지 않다. 나는 전문 서평가도 아니고 파워북로거도 아니기에 어떻게 더 멋있게 풀어낼 수가 없다. 질문이 들어온다면 답변드릴 수는 있다.(보통 학창시절 PT 발표 후 Q&A 시간은 질문이 없거나 짜고 치는 고스톱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끝으로 이웃분들께는 서점에 가거든 이 책 말미에 실린 정성일 씨의 추천 글을 읽어보라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정확히 98% 일치한다.(조용히 묻어가자.) 아주 좋은 감상이다. 금정연씨가 두고두고 읽을 만한 그런 글이다.

 

감상을 마무리 지을 때가 되니 '은퇴의 변'이 다시 아른거린다. 나는 책을 최소 2회는 읽어야 감상을 적을 수 있는 사람이다. 창의력이 부족해서 생각만으로는 글을 전개할 수 없다. 그러니 읽지 않고(또는 경험하지 않고) 쓰는 글은 그 결과가 뻔하다. 금정연이라면 '은퇴의 변'을 어떻게 소화해낼까? 한 번씩은 읽다 말고도 글을 쓰는 것 같던데... 그리고 '은퇴의 변'의 압박으로부터 나는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까? 이 집에서 쫓겨난다면 원룸은 어디에다 구해야 할 것인가? 낙성대? 숙대 앞? 아니면 녹번동?

 

문득 한 가지 묘책이 떠올랐다. 이것은 상생을 위한 대타협이다. 나는 읽어야 쓸 수 있는 사람이니, 아버지의 회사생활을 한 권의 책으로 내주십사 요청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이 아들이 그 책을 3회차까지 소화하고 '은퇴의 변'을 작성하겠노라고 말이다. 마감이 수요일이라 하셨으니, 화요일까지만 어떻게 책을 좀 전달해주시면 안 될까요? 존경하는 아버지. My Daddy. 뭐라고 하셨죠? 아~

 

...

 

당장 짐부터 싸라고요. 정녕 그 말씀이신가요? 아버지,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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