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법
오한기 지음 / 현대문학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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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햄버거였다. 목요일. 가족들이 모두 저녁 늦게 들어오는 날이다. 낮 시간 인터넷에서 보았던 사진이 기억이 났다. 한 남자가 햄버거 속 치즈를 베어 물고 길게 늘리는 사진이었다. 1미터는 족히 되어 보였다. 같이 바람을 쐬던 직장동료는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냐며 빵 터져버렸고, 나는 도무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어느 커뮤니티 유저의 댓글은 사진 속 상황을 '누에고치의 현현'이라고 명명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발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 버거의 이름은 '모짜렐라 인 더 버거'라고 했다. 이름 한 번 괴상하지 않은가? Mozzarella in the burger 라니. 맞는 영문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예문으로 Fire in the hole, Deep in the night. 등이 자연스레 떠오르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할 수밖에. 보통의 목요일이었다면 퇴근 후 시청역 근처 버거킹으로 향했겠지만, 그날만큼은 단대오거리역 근처 롯데리아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모짜렐라 인 더 버거 속 패티의 정체가 정말로 치즈인지, 누에고치의 실인지 확인해야만 했으니 말이다. 나는 하얗고 길쭉하고 늘어나는 그것의 정체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버거킹부터 롯데리아까지, 회사 근처에서부터 동네까지, 그러니까 이건 2호선 시청역에서부터 8호선 단대오거리까지의 한 시간여. 나는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책을 읽는다. 그 길 위에서 볼라뇨를 읽었고, 부코스키를 읽었으며, 종종 페렉이나 타부키, 금정연을 읽었다. 근래 구입한 도서 목록이  『난폭한 독서』, 『analrealism vol.1』, 『의인법』 인 것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최근에는(이전에도 그렇긴 했지만) '후장사실주의자'들에 대한 끌림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날은 햄버거 이전에 오한기의 『의인법』을 읽은 날이었다. 마침 수록된 단편들 중에는 「햄버거들」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햄버거 속에 문학의 원천이 있다고 집착하는 작가와 그 친구의 이야기. 더 줄이면 그냥 '기승전햄버거'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대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지만. 진짜 그렇다. 나로서는 다르게 풀어서 정의내리기 어려웠다. 그것은 『의인법』 속 다른 단편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재미있기는 하다. 대체 어디서 온 소설들인가? 심지어 알라딘의 한 100자 평에서는 이 책을 읽고 자란 아이들 중 한 명이 김기덕이라고 한다. 나는 오한기의 단편들, 그것들의 정체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단대오거리에 도착했다. 모짜렐라 인 더 버거를 주문하자, 치즈스틱을 얹어줬다. 행사라고 했다. 버거의 실물은 아담했다. 한 입 크게 베어 물었지만 낮에 본 사진처럼 하얀 물체는 길게 늘어나지 않았다. 뜨겁긴 했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허여멀건한 물체가 누에고치의 실인지 치즈인지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다만 한가지 가능성에 대해서 추가로 생각하게 되었다. 관점을 바꿔보는 것이다. 문제는 버거가 아니라 사진 속 사람이 아니었을까? 실은 그가 사람이 아니라 외계인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가설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무 맛이 나지 않는 버거를 와그작 씹어 먹으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손님을 맞으며 웃고 있는 저 아르바이트생만큼은 그 답을 알고 있으리라. 물론 이 같은 질문들을 아르바이트생에게 한다 해도 순순히 답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정신병자 취급이나 안 하면 다행이겠지.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리고 한상경이라면 내 질문에 뭐라고 대답했을까? 나는 테이블 위에 『의인법』을 놓아둔 채 혼자 중얼거렸고, 아무리 기다려도 한상경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한기의 단편들은 햄버거와 닮았다. 햄버거는 번과 번 사이에 어떤 패티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어떤 버거인지 결정된다. 납작한 번이지만 그 안에 세계를 담을 수 있다. 꾹꾹 눌러 넣으면 모든 것이 들어간다. 우리는 그것을 버거라 부른다. 오한기의 번에서는 볼라뇨의 향이 매우 강하게 느껴진다. 『의인법』에서 느낀 재미에도 지분이 존재한다면, 볼라뇨에게도 최소 26.6% 정도는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을 정도다. 맛 좋은 번 위에 오한기는 '단대오거리'를 집어넣었고, '소설가'를 집어넣었다. '총기'들을 집어넣었고, '여자'와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집어넣었다. 오한기는 그 모든 것들을 꾹꾹 눌러 담았다. 후장사실주의자들은 그 책을 『의인법』이라 부른다. 1만 3천원이다. 롯데리아에서는 팔지 않는다.

 

그날 내가 머물렀던 장소는 롯데리아였고, 단대오거리역이었다. 길 건너 언덕 위에는 볼링장이 있었다. 소설의 배경이 된 그 동네가 우리 동네였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 본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다만 못내 아쉬울 뿐이었다. 단대오거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내가 먼저 쓰고 싶었다. 나는 소설가도 소설가 지망생도 아니면서 그런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다시는 모짜렐라 인 더 버거를 먹지 않겠다는 생각도 같이. 버거도, 소설도, 사람 따라 취향을 타는 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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