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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개정판 ㅣ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선택은 물리 1, 물리 2, 생물 1, 생물 2였다. 보통의 고3 이과생들이 평이한 기본 과목(물리 1, 화학 1, 생물 1, 지구과학 1) 3종에 심화과목(앞서 말한 과목들의 2) 1종으로 밸런스를 맞추는 반면. 나는 조금 고되더라도 집중을 택한 셈이다. 게다가 '물리 + 생물'의 조합은 또 어떠한가. '물리 + 지구과학', 혹은 '생물 + 화학'으로 양분되는 이과 수능의 테크트리 속에서 나의 과목 선택은 유독 튈 수밖에 없었다. 의문부호를 들이밀던 친구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혹자는 튀고 싶어서 객기 부린 것이 아니냐고 했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만, 가장 큰 이유는 정말 단순했다. 나는 그저 화학이 싫었다. 공산당보다 더. (지구과학은 당시 반 편성상 선택권 밖의 문제였다.) 스티로폼에 이쑤시개를 꼽아 만들던 유기화합물 구조가 등장하던 순간부터 화학에 대한 나의 기억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고3의 나날들은 쏜살같이 흘렀고 수능이 다가왔다. 결과적으로 나의 선택이 바른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은 수능 성적표가 말해줬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하는 선택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때 처음으로 느꼈다. 시스템의 섭리를 거스르는 자는 어떤 최후를 맞는 것인지에 대한 첫 고민은 그렇게 시작됐다. 물론 그 와중에도 화학이 싫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다행히도 대학은 갔다. 운 좋게 2학기 수시 입학에 성공했다. 조건부 합격이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수능 과목 중 한 과목 이상을 2등급 이상 받아야 들어가는 것이었나 그랬다. 그 해 수능 참패 속에서 나를 살린 것은 수리도 물리 2도 생물 2도 아닌 언어영역 1등급이었다. 문과 친구들에게는 조금 미안했다.
<침묵의 봄>의 저자 레이첼 카슨이 화학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화학적 방제 작업에 반대 목소리를 키웠다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동지와 같은 착각이 들었다. 환경분야의 고전으로 유명한 이 책을 읽기에 앞서 느낀 것이 고작 그런 단순한 마음이라니 스스로도 어이가 없지만 일단 그랬다. 1962년에 출간된 <침묵의 봄>은 당시로는 생소했던 살충제의 유해성과, 그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에 대해 고발하고 있다. 그 이름도 유명한 DDT(어찌나 독했으면 프로 레슬링 기술의 이름으로도 차용됐다.) 부터 각종 유기화합물로 만들어진 살충제가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던 시점이기에, <침묵의 봄>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화학업계와 농경 제조업체들에게는 눈엣가시와도 같았다. 진실을 숨기려는 쪽과 고발하려는 쪽, 돈이 되는 쪽과 돈이 되지 않는 쪽의 싸움은 언제나 후자에게 불리하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대단한 일이다.
<침묵의 봄>을 통해 살펴본 그녀의 서술방식은 매우 우직한 편이다. 그녀는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유사한 사례들을 책의 후반부까지 계속 반복해서 늘어놓는다. '검증되지 않은 화합물의 무분별한 살포 → 생태계의 파괴 → 인간에게 돌아오는 피해에 대한 경고'. 이러한 패턴으로 말이다. 달라지는 것은 살충제의 피해를 입는 곳이 어디냐는 것뿐이다. 지금에 와서야 당연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당시로는 무척이나 충격적인 사실들이었을테다. 마치 <PD 수첩>이나 <소비자 고발>같은 프로그램처럼, 당시 대중의 마음을 들쑤셔 놓기에는 충분했다.
책의 말미에 이르러 그녀는 최종 입장을 정리한다. 하나의 큰 시스템인 지구에서 인간은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겪어오며 구축된 생태계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살충제(유기화합물)들은 진지한 검증 없이 생태계를 순식간에 망쳐 놓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좋다. 여기까지는 구구절절 맞는 말 같고 숙연해지는 부분이기는 한데, 뒤이어 제시하는 대안부터는 조금씩 갸우뚱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화학적 방제보다는 생물학적 방제를 연구해야 한다고 말이다. 화학적으로 곤충을 제거하면 결국 인간에 해가 될 수 있으니, 생물학적으로(방사능으로 만들어낸 불임 개체의 투입이라든지, 천적 개체의 수입이라든지 하는 방식들) 곤충들을 박멸하자는 입장이다. 전자보다는 후자 쪽이 인간에 미치는 피해도 없을뿐더러, 비용이나 효과도 확실하다고 말이다.
아니, 잠깐만... 이것이 정녕 환경 운동계의 대모가 하는 말이 맞단 말인가? 이제까지 계속 오만하지 말자더니, 레이첼 카슨이 말하는 오만은 그저 인간에게 해가 될지 말지를 속단하지 말라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내 생각에 화학적이든, 생물학적이든 결국은 살생이며 인위적 조작이라는 사실에는 다름이 없다. 그 의도 자체가 섬찟한 것이다. 물론 나도 오늘날 수많은 환경을 짓밟고 있기에 편하게 살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내가 뭐 대단한 환경운동가인 것도 아니다. 그래도 양심이 있다면 말은 똑바로 해야 한다. 이 책에서 겹겹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과 다르게, 레이첼 카슨의 주장도 생태계의 입장에서는 최악이 아닐 뿐, 차악이다. 어디까지나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바라보는 환경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녀와 인류가 이끌어낸 것은 자기합리화라는 이름의 자연보호였다. 마지막 장을 덮고서 다시 본 <침묵의 봄>이라는 제목에서 나는 묵인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시스템의 섭리를 거스르는 인류에게도 언젠가는 최후가 다가올 것이다. 과연 그날이 온다해서 우리는 알기나 할까? 우리가 자연에 무슨 짓을 하고 있던 건지 말이다. 오히려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친환경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라고, 그 증거자료로 <침묵의 봄>을 들이밀면서 말이다.
음... 그건 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