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 서양 좌파가 말하는 한국 정치
다니엘 튜더 지음, 송정화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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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면 니들이 뛰든가!', 한때 화제가 됐던 기성용 선수의 미니홈피 문구였다. 매 경기 쏟아지는 왈가왈부에 대한 선수 스스로의 솔직한 발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어린 시절 올렸던 글이기에 적절히 필터링을 거치지 못 했을 뿐. 뭐 어쨌든 나는 직접 뛸 생각도, 그럴만한 실력도 없다. 어려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축구와는 인연이 없는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나조차 해외축구만큼은 왠만하면 챙겨보는 편이다. 박지성으로 시작해 이영표, 이청용, 기성용, 구자철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해외파 선수들의 활약상은 매시즌 빼먹지 않고 지켜 봐왔다. 선수가 골을 넣으면 덩달아 환호했고, 부상을 당하면 입모양을 따라서 욕도 하면서 말이다.

 

스피디한 경기 템포, 천문학적 몸값의 선수들, 고급스러운 카메라 워크 등 해외축구는 여러 가지 재미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몇 번의 월드컵을 거쳐오면서 K리그도 많이 따라오고 있는 추세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앞선 요소들과는 다르게 해외축구에만 있고 국내축구에는 없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해외 언론의 평가이다. SKY SPORTS 평점, 양 팀 감독 및 선수 인터뷰 등 한국 선수에 대한 해외 평가가 올라오기 전까지 경기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현지의 모든 반응을 확인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안식이 찾아오는 것이다. 심지어 가끔씩은 경기 자체보다 외신의 칭찬 한 마디, 다른 외국인 선수의 SNS 한 줄에 더 큰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외국인의 눈에만 보이고 한국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있어서 그런 걸까? 같은 말을 해도 영어로 하면 의미가 달라지는 것인가? 좋은 말을 들었다고 뭘 그리 자랑스러워하며 또 나쁜 말을 들었다 해서 뭘 그리 열을 올릴 필요가 있는가? 사실 이 모든 것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다. 그것이 우리가 해외 반응에 목을 매는 이유다. 비단 축구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Do you know 김치?", "Do you know 강남스타일?", "Do you know 김연아?"까지 우리는 지겹게 들어왔다. 심지어 이제는 영국인이 쓴 한국 정치 서적마저 분야의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다. 이실직고하자면 나 역시도 이 책을 주문했다. 확신이라는 단어와는 동떨어져 있는 한국 정치를 외부인은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했다. 어쩌면 내심 거센 수위의 질타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서양 좌파가 말하는 한국 정치'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오늘의 책, 바로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이다.

 

자연스레 존 듀어든이 생각났다. 그는 영국 출신이지만 한국 축구계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칼럼을 작성했던 사람이다. 기존 한국 칼럼들과는 다르게 의사표현에 무척이나 솔직했던 그의 칼럼은 많은 지지를 받은 만큼 또 많은 비난도 감수해야 했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의 저자 다니엘 튜더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스스로를 '서양 좌파'라고 칭하는 그는 높으신 분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가치관에 입각해 한국 정치계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전통적으로 서양에서 말하는 좌우의 개념은 한국에서 행해지는 좌우의 개념과 확연히 다르다.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저자가 한국의 보수(우)를 박정희 주의, 그리고 한국의 진보(좌)는 비박정희 주의라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다. 서양 좌파가 바라보기엔 양측 모두 한없이 대기업 주의에 가까울 뿐. 둘 사이에 차별화되는 구간이 없었다. 단지 조금 더 능숙한 새누리와 어리숙하게 그 뒤를 쫓는 새정치의 모습. 어디 그 뿐인가. 정치인과 국민, 언론도 모두 그의 기준에서는 안쓰러워 보인다. 그 어디에도 진정한 주인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이대로는 정권이 바뀌어도 현실의 변주일 뿐이며, 이는 곧 민주주의의 후퇴로만 이어질 따름이란다.

 

우와. 엄청 답답하다. 한국인의 시선에서 바라봤을 때도 답답했는데 영국인의 글을 통해 재확인하니 그 답답함이 두 배가 됐다. 역시 검은 눈으로 보나 푸른 눈으로 보나 똑같은 현상인 것은 분명하다. 비판의 화살을 아끼지 않던 이 책은 후반부에 이르러 자연스레 '그러면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식의 제안으로 나아간다. 튜더는 다시 한 번 말한다. 사실상 새정치로는 이제 무슨 짓을 해도 힘들다고 말이다. 당의 이름 정도 바꾸거나 기존 정당의 헤쳐모여로도 소용이 없다. 대신 그는 이탈리아의 '5성운동'이나 스페인의 '포데모스'를 새로운 솔루션의 예로 든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하는 풀뿌리 정당이 그 시작이라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익숙한 탑-다운을 버리고 바텀-업 방식의 정치를 하자고 말한다. 토크 콘서트에 가서 달변가 한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시간에 차라리 지역공동체에서 함께 모여 새로운 아이디어나 제안을 나누자고 말이다. 최근 들어 여러 곳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작은 집단의 힘에 대해 이 책에서도 다시 한 번 힘을 싣고 있는 셈이다.

 

다니엘 튜더의 발언은 일단 여기까지다. 시뮬레이션 끝에 오는 엔딩은 상상만 해도 달콤하다. 하지만 영국인의 제안처럼 대한민국에서 풀뿌리 정당의 성공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사람들은 오프라인에 이어 온라인 상에서도 이뤄지는 모든 통제와도 맞서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건전한 민주주의에는 건설적인 비판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해외 반응으로부터 배워야할 점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쉽지 않겠지만 우리 국민들도 스스로의 목소리를 키워나가야 하고 또 지켜나가야 한다.

이제보니 기성용 선수의 말이 옳았다.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가!'는 비단 축구계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2015년 대한민국. 이제는 정말로 뛰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워밍업부터 시작하자. 작은 것이라도 상관없다. 우리도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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