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학 2.0 - 21세기 순례자들을 위한
이종혁 지음 / 창조커뮤니케이션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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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순례자들을 위한 인간학 2.0

 

거의 누구나 몇 개의 이메일 계정을 가지지만, 잘 쓰는 이메일은 하나 정도이고, 나머지는 가끔, 또는 거의 몇 달에 한 번씩 열어보고 안 읽은 광고메일 등을 한꺼번에 휴지통에 자동으로 집어넣는 메뉴를 눌러서 청소하는 일을 한다. 그렇게 가끔씩 쓰는 이메일을 열어 보는데, 내가 아는 이름의 인물이 “***입니다.”하고 이메일을 보내왔다. 내가 26년 전에 그만둔 교회의 가까운 후배였다. 그 이메일을 한 달 만에 확인한 것이다. 이번에 책을 썼는데 주소를 알려 주면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미안해서 바로 답장했다. 책이 이틀 후인가 도착했고, 제목은 “21세기 순례자들을 위한 인간학 2.0-인터넷 환경에 대한 현상학적 해석과 21세기 인간학이었다.

 

인터넷은 누구나 익숙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철학적인 해석을 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주제가 된다. 문화나 미디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도 아닌 내가 이런 책을 일부러 사서 볼 기회나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므로 내가 아는 친구가 어렵게 보내 준 책이 도착한 것이 나에게는 이 분야의 무식을 타파할 좋은 기회가 된 것이었다. 그 무식은 거의 무임승차 식으로 편리하게 사용하는 인터넷에 대한 성찰의 결여인 것이므로 부당한 무식이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토요일, 일요일 이틀 동안 책을 독파했다. 비록 안 본지 오래 되었지만 청년시절을 같이 지낸지라 작가의 심성이나 배경을 잘 알기 때문에 그가 나긋나긋하게 설명하는 목소리까지 떠올릴 수 있어서 어려운 문장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해가 빨리 되었다.

 

그의 나이도 이제 50이니 같은 세대이고, 거의 같은 역사적 사회적 경험을 하면서 지난 25년간의 급속한 정보통신의 발달을 경험해 왔다.

 

나는 전자출판 수단이 급격히 진화되던 시기에 출판사에서 일한 경험도 있고 엉성하나마 html을 배워서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10년 이상을 유지해 오고 있기 때문에 주어진 정보통신 인프라를 이용하는 점에서는 아주 무지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스마트폰의 휴대를 거부하고 있다. 지하철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굴리는 광경을 보면서, 스마트폰 하나만 안 가지고 다녀도 남들보다 훨씬 앞선 사람이 되겠다는 이상한 확신이 머릿속에 들어와 꽂힌 후 그 완고한 독선적 생각이 도무지 나가지 않는 것이다.

 

이 책의 작가도 예술적 감각이 있는데다 꼼꼼한 성격이어서 정보통신 기술의 응용에서는 전문가이지만, 우리 세대가 그런 것처럼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한 것은 아날로그 시대였고, 사회생활을 한 것은 디지털 시대여서 나와 같은 정서와 감각을 가진 사람을 잘 이해하고, 나 같은 세대의 사람들에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꽤나 수준 높게 인터넷 사회를 설명해 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원래는 건축학과 출신인데 약력에서 보니 그는 미디어 분야에 종사하면서 기독교 신학을 중심으로 한 종교 분야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철학과 사회과학 그밖의 많은 인문학 분야의 독서로 근대 사회의 형성과 개인의 탄생 그리고 그 한계점을 지금의 새로운 담론의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물론 기독교 신약성서의 탕자의 비유와 에리히 프롬의 사회철학을 가장 많이 인용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나 엘빈 토플러 같은 사람들도 지식정보사회의 혁명을 설파했지만, 이 책의 저자는 더 근원적인 수준에서 탈산업사회의 인간 개개인이 자신의 깊이를 만들면서 세상과 자유로이 소통하는 새로운 오타쿠적 인간들로서 완성되어 갈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이는 근대에 탄생한 산업사회의 바탕이 된 개인을 넘어선 진정한 자유인으로 갈 가능성이다.

 

나 역시 산업사회에 도무지 적응이 안 되고 그런 흐름에 어느 정도 같이 분류될 수 있는 오타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를 다룬 뒷부분을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한마디로 나에게 위안과 용기가 되었다.

 

그의 책에서 언급된 바대로라면 그는 신학 2.0”을 써서 출판하려고 하고 있고, 이 책 인간학 2.0”은 앞으로 나올 책과 세트를 이루는 것이다. “인간학 2.0”에서는 서양의 르네상스 이후의 지성사의 변화과정을 사회 진보의 관점에서 휴머니스트의 입장에서 다루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 인터넷 사회 현상에 대한 고찰과 전망에서도 이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언뜻 내비치는 예고편에서 그는 이를 토대로 종교적 초월적 도약을 할 모양이다. 그렇다면 1970년대부터 서양에서 시작된 뉴에이지 운동, 기독교 제국주의에 대한 아시아, 아메리카 등 토착적 영성, 생태주의 등등의 대안적 문화 기획들에 대해 어떻게 정리를 해 줄지 궁금하다.

 

월권에 속하는 바람이겠지만, 인터넷이라는 수단을 발판으로 신학 2.0”이 초()기독교, 탈기독교적 입장에서 인간과 생명을 위하는 우주적 평화와 조화의 신학을 창시하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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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정 2016-04-04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에 감사합니다. 한 가지 말미에 `인터넷이라는 수단을 발판으로`라는 표현에서 혹 제 글이 사람들에게 인터넷 옹호론자처럼 느껴지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신학2.0에서 언급될 수 있을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인터넷을 특별히 다룬 것은 지금이 인터넷 세상이며, 그것이 근대성의 한계에 대한 대안적 모델로 언급할만한 사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라이프스타일에 주목하고 있는데, 어떤 이론이나 사상이 삶의 영역으로 구체화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인터넷은 지식정보사회의 개념과 함께 `역사적 사례`로서 언급한 것입니다. 신학2.0의 관점에서 바로 이 `역사적 사례`에 대한 주체성을 언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다만, 선배님께서 기대하시는 `초(超)기독교, 탈기독교적 입장에서 인간과 생명을 위하는 우주적 평화와 조화의 신학`이라는 관점은 아주 정확하게 짚으셨습니다. 인간학2.0은 신학2.0의 기초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학을 외면하거나 거리가 있는 종교나 신학은 의미 없음을 정리한 것입니다. 동시에 인간학2.0은 근대성의 한계를 지적한 것처럼, 신학2.0은 인간학의 한계를 지적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학2.0에서 현대성의 필요성과 출항을 언급한 것처럼, 신학2.0에서는 범우주적 담론으로서의 신학의 필요성과 출항을 말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