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개정판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살때 여러가지 까다로운 조건은 없다. 단지 내 마음에 들면 손이 가는 것이다. 누가 이 책을 지루하다 했건, 별로 남의 평가는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 물론 재밌다고 극찬하는 책이 있다면 한번쯤 구입 선상에는 올리곤 한다. 이건 또 무슨 엉뚱한 심보인지 싶다. 하지만 이 책도 지나가며 사람들이 올려 놓은 후기를 보았지만 그렇게 손이 가질 않았었다.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 지는 표지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순수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앙 다문 저 입술 속에서 무언가 숨기고 있는 듯한 소녀의 비밀을 조금이나마 짐작했었기 때문이었다.

 

<책 줄거리>

주인공은 12살 소녀이다. 아기때부터 남다른 과거를 가지고 있었던 소녀는 할머니와 이모, 삼촌 이렇게 살고 있다. 그리고 할머니의 집에는 세들어 사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제각기 비밀들을 소녀에게 들킨 상태이다. 세상에 어떤 비밀과도 마주했을때 놀라지 않을 만큼의 많은 일들이 그 집에서, 그리고 소녀 주위에서 일어 나고 있다. 그렇기에 소녀는 자신만이 가장 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어떤 일이 닥쳤을때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나누어 슬픔도 이겨내고 상처 받지 않게 자신을 다독이며 생활한다.

하지만 소녀도 성장통앞에서는 어쩔수가 없나보다. 첫사랑과 첫키스,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서 소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과 타협하기도 하고, 슬픔을 인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도 그녀는 밖으로 내색할 수는 없다.

 

지금 길거리에 지나가는 12살 소녀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학교앞 구멍가게에서 불량식품을 사먹으며 친구들과 어제 본 티비에 나온 연예인 이야기를 하고, 너도 나도 단짝이라는 이름을 붙여 여러명이 무리 지어 다니고, 외모에 부쩍 관심이 생겨나는 사춘기의 시작쯤?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그때쯤 나도 사춘기의 대열에 들어섰었고, 외모에 신경쓰진 않았지만, 부모님은 모르는 나만의 세계가 새로이 생겨나고 있었음은 분명했다. 그 때의 나도 집에서의 나와 밖에서의 나가 많이 다를 정도로 어느 면에서는 이 책의 주인공인 진희와 조금은 닮은꼴이 아닐까라고 생각도 해본다.

진희의 진정한 아픔과 슬픔 그리고 상처는 무엇일까? 사실 끝끝내 답을 찾진 못했다. 왜 그녀가 자신이 믿지 말아야 할 목록을 작성하고, 구지 가장 가까이에 있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할머니와 이모에게 조차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구분하여 삶을 살아가야 했을지 말이다. 이웃들이 보여주는 다소 충격적인 비밀들이 어린 아이의 마음을 닫게 해서 였을까? 인정하기 힘든 자신의 엄마의 모습 때문이었을까?

중요한건 그 어린 시절에 닫아 버린 마음은 쉽사리 풀리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치유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소설의 말미에서는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대상이 생기는 진희의 모습을 만나보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12살에 이미 다 커버린 그녀에게 기대 하기 어려운 모습임을 이내 깨달았다.

자신이 상처 앞에 한없이 약한걸 알고, 그것이 무너지는게 두려웠던 소녀의 그 선택은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정 진희가 원한건 빨리 성숙해지기보단 그런 성숙함이 자신의 슬픔임을 상처임을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작은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밑줄긋기>

p.9

나는 내 행운의 유효기간이 짧았던 것보다 행운과 불운은 순서대로 온다는 것을 잊은 채 창가자리에 들뜬 엉덩이를 내려놓고 있던 자신의 이완이 더 언짢았다.

 

p.11

나는 사랑이란 것은 기질과 필요가 계기를 만나서 생겨났다가 암시 혹은 자기최면에 의해 변형되고, 그리고 결국은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p.213

여전히 시험문제를 풀 때는 정답을 쓰겠지만 현실에서는 정답을 다른 식으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이들은 그것으로 세상을 아는 것처럼 생각되었고 그리고 그것을 안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어른스러운 태도라고 믿었다.

 

p.346

삶이란 장난기와 악의로 차 있다. 기쁨을 준 다음에는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 기쁨을 도로 뺏어갈지도 모르고 또 기쁨을 준 만큼의 슬픔을 주려고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너무 기쁨을 내색해도 안 된다. 그 기쁨에 완전히 취하는 것도 삶의 악의를 자극하는 것이 된다.

 

p.365

철없는 사람은 마음껏 철없이 행동하면서도 슬픔에 닥치면 불공평하게도 더 많은 사랑과 배려를 받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으레 슬픔을 이겨 낼 수 있으리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그 같은 배려를 받지 못한다. 성숙한 사람은 언제나 손해이다. 나는 너무 일찍 성숙했고 그러기에 일찍부터 삶을 알게된 만큼 삶에서 빨리 밑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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