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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메론 프로젝트 - 팬데믹 시대를 건너는 29개의 이야기
빅터 라발 외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평단에 참여해서 받아 읽게 된 데카메론 프로젝트.
데카메론은 이탈리아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가 흑사병을 피해 피렌체 외곽 저택에 모인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명씩 이야기를 한다는 설정으로 총 백여편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책이다. 이 데카메론 프로젝트는 뉴욕타임즈에서 데카메론의 설정에 영향을 받아 코로나 시기에 대해 29명의 작가들이 쓴 단편소설 들을 모아 만든 앤솔로지이다.
표지의 중세풍 일러스트도 좋고 단편중 몇몇개의 제목 밑에만 그려져 있는 작은 흑백 일러스트도 단편을 다 읽고나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그려져있어서 좋다.
이 29명의 작가 중 내가 이름을 아는 작가는 단 한명 시녀이야기와 증언들의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다. 나는 시녀이야기와 증언들을 정말 재밌게 봤고 작가의 능력에 감탄했어서 마거릿 애트우드 한명의 이름 만으로도 관심이 갔고 코로나 시대를 이야기로 버텨낸다는 책의 의도 자체도 호기심이 생겨서 이 책을 읽어보게 됐다.
각 단편이 시작할때마다 이 작가의 간단한 소개와 대표작이 쓰여져 있어서 좋다.
뉴욕 타임스 책임 프로듀서 케이틀린 로퍼의 서문과 캐나다 작가 리브카 갈첸의 데카메론 리뷰로 부터 시작해 29편의 단편소설들이 펼쳐진다.
단편이라는 한계 때문인지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이 많고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 이게 끝인가? 싶은 결말들이 많아 아쉽긴하지만 짧기 때문에 빨리 빨리 읽을 수 있다는 전에서 지금까지 봤던 대부분의 단편집과 비슷하다.
알아보다 -빅터 라발
뉴욕 워싱턴 하이츠의 6층짜리 원룸 아파트 6층에 살고 있는 주인공과 4층에 살고 있는 필라가 코로나로 봉쇄조치가 시작된 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다.
주인공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도시 외곽 지역으로 잠시 피해있거나 코로나에 걸려 병원에 입원을 하느라 집을 떠난다. 관리인이 빈집의 문에 표시하는 V(vacant 비었다) 표시는 점점 늘어나고 그렇게 표시를 하느라 관리인의 손가락에는 늘 은색 스프레이가 묻어있다. 이게 전염병이구나. 이렇게 전염병이 도시를 텅 비게 만드는구나.
나는 코로나시기를 살아가면서도 주위에 코로나에 걸린 사람도 없고 코로나로 죽은 사람도 없어서 크게 느끼지 못했던 전염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와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이처럼 푸른 하늘 -모나 아와드
주인공은 생일을 맞아 봉쇄조치에도 문을 여는 비밀스러운 고급 스파에서 불행한 기억을 버리고 탱탱한 피부를 얻는다.
그렇게 버린 불행한 기억이 코로나 시절의 기억인지 주인공은 마스크도 끼지 않고 택시를 타고 텅텅 빈 거리와 공원을 즐겁게 활보한다. 코로나의 기억이 없는 사람이라면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이상할까? 그리고 그 기억을 잃은 사람이 평범한 사람 눈에는 얼마나 이상해보일까? 주인공이 마스크를 안 끼고 다녀도 아무도 마스크 끼라고 안 한게 신기하다. 우리나라였으면 택시를 아예 못 탔을꺼 같은데 말이다.
산책 -카밀라 샴지
아즈라는 친구 조흐라와 함께 산책을 나선다. 낯선 파키스탄이 배경이라 머릿 속에 배경이 그려지지 않고 다른 단편보다도 짧은 양에 산책하는 내용뿐이라 소설보다는 일기처럼 느껴진다.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의 일기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기 같다.
LA강 이야기 -콜럼 토빈
봉쇄조치 기간동안 남자친구인 h와 싸우고 화해하고 자전거를 탄 이야기로 작가에 대해 알지 못 해 확신하진 못 하겠지만 작가의 일기 같은 이야기였다. 남자친구의 음악이 듣기 싫어 짜증내고 남자친구와 영화 취향이 맞지 않아 괴로워하면서 sns로 다른 커플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왜 우리는 저렇게 행복하지 못 한가를 비교하는 모습이나 지금까지는 청소하기 싫어서 도망을 갔지만 이제는 도망칠 곳도 없어 꼼짝없이 청소를 해야하는 상황들이 현실적이고 공감갔다. 그렇게 삐걱대면서도 남자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며 즐거워하는 장면에서 해방감이 느껴졌다.
임상 기록 -리즈 무어
밤늦은 새벽 아기가 아픈 몇시간을 임상기록이라는 형식으로 담담하게 풀어낸다. 팩트, 근거, 믿음, 방법, 질문, 연구 과정 같은 딱딱한 단어들로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그 안에 아이에 대한 걱정과 사랑이 가득하다는게 느껴진다.
더 팀 -토미 오렌지
오탈자가 있다. 하프마라톤을 21킬로미터가 아니라 미터 라고 써놔서 21미터를 멈추지 않고 뛴다는 것은 당신에게는 대단한 일이었다. 같은 달팽이가 주어인거 같은 문장이 탄생했다. ㅋㅋㅋㅋ
하프 마라톤에 대한 이야기가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이야기가 되고 가족의 이야기가 되고 미국의 인종에 대한 이야기가 되고 코로나를 이겨낼 전세계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로 커진다. 철학 에세이 같은 글이라 이해는 잘 안 가고 내 취향이 아니다.
돌멩이 -레일라 슬리마니
인기는 많지만 작품성은 없는 소설을 쓰는 작가 로베르 브루사르는 신간 출판 기념 강연 중에 갑자기 날아온 돌에 맞는다. 브루사르는 이걸 계기로 프랑스의 영웅, 박해받는 작가가 되어 스타가 되지만 여론은 갑자기 변해 자본주의의 상징,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로베르 부르사르는 그 어떤 것의 상징도 아니었고 그 어떤 주장도 펼치지 않았고 돌멩이를 맞기 전 후로 변한 것도 없었으나 사람들은 그를 제멋대로 재단했다. 쉽게 타인을 평가하고 진실보다는 흥미거리에만 관심을 두는 대중을 잘 묘사했다. 그리고 이 데카메론 프로젝트에서 처음으로 코로나가 나오지 않는 이야기라 신선했다.
참을성 없는 그리젤다 -마거릿 애트우드
바이러스를 피해 격리실에 갖힌 인간들에게 문어처럼 생긴 외계인이 참을성 없는 그리젤다 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내용인데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웃길려는건가? 참을성 없는 그리젤다가 공작을 죽인건 속시원한 결말이긴 하다. 먹어치웠다는건 뭔 소린지 모르겠지만. ㅋㅋㅋㅋ
목련 나무 아래 -이윤 리
변호사 크리시는 어느 한 부부의 유산상속을 위해 서류를 작성해주고 그 과정에서 부부의 자식 하나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평소의 자신과는 달리 위로의 말을 건네는데 크리시도, 이 부부도, 부부의 죽었다는 자식에 대해서도 소설속에서 알려주는게 없어서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바깥 -에트가르 케레트
120일간 격리 생활을 지낸 후 군인들에 의해 사람들이 어딘가로 향해간다. 3페이지 밖에 안 되는 짧은 양에 상황 설명이 전혀 없어서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120일간의 격리 생활이 코로나 때문인지도 확실하지 않고 지금 소설 속 공간이 어디인지, 왜 군인들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는지,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모르겠다. 아무리 단편이라고 해도 너무 내용이 없다.
유품 -앤드루 오헤이건
생선가게 에서 일하는 로프티는 열흘만에 어머니에게 연락을 했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인공인 로프티 브로건에 대해 잘 알지는 못 하지만 어른들 때문이니 엄마 때문이니 같은 남탓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걸로 봐서 로프티에게 문제가 있다는 엄마와 형의 의견이 맞는거 같다. 엄마집에 있던 가구와 벽지를 다 태워버리고 그 재를 형한테 보낸다는 것도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인물을 이해할 수 없으니 소설도 이해할 수 없다.
빨간 가방을 든 여인 -레이철 쿠시너
데카메론과 가장 유사한 구조를 가진 소설이다. 주인공은 성에 초대되어 갔다가 바이러스로 인해 그 성에 갖히게 되었고 그 안에서 한 사람씩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노르웨이어만 할수 있어 부인이 영어로 늘 통역을 해줘야 하는 한 노르웨이 남자가 친구인 요한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 이야기 속 요한의 찌질함에 대한 묘사가 촌철살인이다.
'목적이 결여된, 하지만 목적을 찾는 중이라며 늦잠을 자고 많은 영화 비평과 프랑스 철학을 읽고 자신의 시야에 깊이 새겨진 손에 넣기 어려운 여자들에게 골몰하는 우울증 환자들 말이오. 그런 여자들을 사로잡는데 실패한 시간이 남아도는 이 실업자 남자들은 대단히 핍박을 당한다고 느꼈고, 자신에게 기꺼이 시간을 내준 다소 매력없는 여자들에게 분풀이를 하곤 했소.'
'요한은 그녀가 특정한 밴드나 영화를 모르면 짜증이 나기 시작했소. 그녀가 실패한 나라에서 도망쳐 치열하게 사는 동안, 그는 게으름 부리고 문화를 흡수하며 20대 초반을 보냈기 때문에 자신에게 중요한 것에 대한 그녀의 무지를 참을 수 없었소'
이런 식으로 요한이 얼마나 별볼일 없으며 그런 주제에 자기를 대단하게 여기고 남을 무시하는 한심한 인간인지를 날카롭게 묘사한다.
요한은 프라하의 공항에서 만난 빨간 가방을 든 여인을 만나고 싶어 아부다비까지 가고 거기서 결국 그 여자로 추정되는 크로아티아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함께 노르웨이로 돌아오는데 환상속에 빠져살던 요한은 현실의 연애를 감당하지 못했고 여자와 헤어졌다. 그리고 화자인 노르웨이 남자는 요한이 찾던 여자와 자신이 결혼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이라고 말한다.
요한이 찾던 여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말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첫째, 요한이 데려온 크로아티아 여자는 실제로 빨간 가방을 든 여인이었고 요한의 상상대로 아름답고 뛰어난 여자였는데 멍청한 요한이 그걸 알아보지 못하고 복을 발로 찼고 노르웨이 남자가 그 여자와 결혼 했다.
둘째, 크로아티아 여자는 빨간 가방을 든 여인은 아니었지만 요한의 상상만큼 훌륭한 여자였고 노르웨이 남자는 그런 여자의 자질을 알아보고 결혼했다.
셋째, 크로아티아 여자는 빨간가방 여자가 아니었고 노르웨이 남자가 요한이 만난 실제 빨간 가방을 든 여인과 결혼을 해서 부인에게 요한 얘기를 들었다.
넷째, 사실 요한은 화자 그 자신이고 요한이 철이 들어서 크로아티아 여자를 다시 붙잡아 결혼까지 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을 주제로 한 이야기였고 화자가 남자이긴 하지만 실제로 이 이야기를 한것은 통역을 해준 부인이기 때문에 나는 첫번째 해석이 가장 좋다. 헤어지자는 말도 못 해서 메모로 남기는 찌질한 새끼는 제 눈 앞에 제가 찾던게 있는지도 몰라서 지 복을 지가 걷어찼고 여자는 다른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한게 해피엔딩이지!
모닝사이드 -테이아 오브레트
모닝사이드 건물에 사는 주인공은 같은 건물에 사는 화가 베지가 키우는 개 세마리가 사실 베지의 남동생들이고 마법으로 개가 되어 낮에는 사람 밤에는 개로 변한다는 이야기를 믿고 있다. 자물쇠를 딸 줄 아는 친구 에나와 함께 낮의 베지의 집에 몰래 들어갔지만 개들은 여전히 개들이었다.
에나와 베지가 살았던 나라, 에나와 베지가 할 줄 아는 그 나라의 언어가 무슨 은유인거 같긴한데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그저 죽은 베지의 시체를 지키는 로트와일러 세마리가 안타까울 뿐이다.
스크린 타임 -알레한드로 삼브라
태어나서 아직 한번도 tv를 본적 없는 만 2살 짜리 아기와 그 아기의 부모 이야기다. 아기는 비행기 안에서 처음으로 티비를 봤고 부모는 집중하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위해 티비를 본다. 아이는 바이러스로 인해 외출을 할 수 없어지자 예전보다 짜증이 많아지지만 부모는 그래도 하루 중 그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진정한 행복으로 여기는게 감동이다.
그 시절 -디노 멘게츄
바이러스 때문에 더이상 일이 하기 힘들어진 택시기사 삼촌을 방문해 함께 식료품점을 가려하는 조카의 이야기. 지금 현 시점에서 조카와 대화는 나누는 삼촌도 과거 어린 조카와 이야기를 나눴던 삼촌도 몹시 다정하다. 차 뒷좌석에서 다양한 나라의 이야기를 나누며 상상속 세계여행을 떠나게 해주고 호주 이야기를 하다 잠든 조카에게 시차때문에 피곤할꺼라며 푹 잠들라고 말해준다.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삼촌의 다정함과 자상함, 그리고 조카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마지막 버스 클럽 -캐런 러셀
저녁 8시, 발레리는 자기가 모는 버스의 막차를 타는 사람들을 마지막 버스 클럽이라고 부른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전체적인 승객이 주는 것은 물론 그 클럽사람들도 줄어드는데 그 마지막 버스를 몰고 가던 중 안개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앰뷸런스와 부딪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갑자기 멈추고 버스와 앰뷸런스는 충돌직전 멈춘다. 사람들은 여전히 움직일 수 있어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힘에 막혀 사고 장소를 떠나지 못한다. 왜 갑자기 시간이 멈췄는지 알 수 없고 산부인과 간호사 파티마의 명령을 따라 정지된 분만을 다시 시작하는 방식을 통해 시간이 다시 흐르게 되는 과정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기이한 일이 일어나 모두의 목숨을 구했는데도 다들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결말의 분위기 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바란다고 해서 -데이비드 미첼
감옥에 있는 루크는 감방 동료가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혼자 격리된다. 혼자 있어야 할 방에 젬마라는 아시아인이 2층 침대의 윗칸을 차지하고 있고 잘못 배정되었으니 방을 바꿔주고 식사를 2인분으로 달라는 루크와 젬마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젬마가 식사를 거의 하지 않을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젬마는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었고 그래도 루크는 젬마의 도움으로 코로나를 이겨낸다.
시스템 -찰스 유
인간들이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검색하는지를 컴퓨터나 정보의 입장에서 관찰하고 쓴 것 같은 단편이다. 인간들은 다양한 것을 검색해보고 그 내용에 코로나로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녹여냈다.
완벽한 여행 친구 -파올로 조르다노
이탈리아인 주인공은 코로나 사태로 의붓아들인 미켈레가 부인과 함께 사는 집으로 온다고 하자 불편함 부터 먼저 느낀다. 함께 산 이후로 한번도 친밀하지 않았고 성인이 되어 대학으로 떠난 의붓아들과의 관계는 편하지 않고 미켈레가 집에 돌아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거슬린다. 미켈레가 온 이후 부인과의 관계도 소원해 주인공은 이 삐걱거리는 관계를 어떻게 봉합할지 걱정하는데 그 걱정은 미켈레가 건넨 먹다남긴 아이스크림으로 인해 사르르 녹아내린다. 코로나로 오히려 주인공 가족은 더 가족다운 가족이 되었다.
친절한 강도 -미아 쿠토
가족도 친구도 없이 혼자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은 코로나 때문에 방문한 보건직원을 강도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건 체온계다, 보건시설에서 나왔다, 아무 증상이 없지만 무증상보균자 일 수 있다, 개인 위생을 지키기 위한 지침이다 라는 등의 보건직원의 말을 모두 강도의 거짓말로 생각하는 주인공은 떠나는 강도를 꼭 껴안는다. 누군가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외로움이 더 무서운 질병일 수 있다.
잠 -우조딘마 이웰라
흑인 남자 토비와 백인 여자 애슐리의 사랑과 이별 재회에 관한 이야기인데 한 문장과 그 다음 이어지는 문장사이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않고 동떨어져있고 이야기의 화자도 갑자기 바뀌어서 가장 이해가 안 가는 이야기였다.
지하 저장실 -디나 나예리
이란 출신의 실라와 캄란 부부는 딸 누신과 함께 프랑스에서 봉쇄조치를 맞이했다. 봉쇄조치로 인해 집 안에서만 지내는 동안 실라와 캄란은 예전 테헤란에서 전쟁이 났을 때 피해있던 방공호를 추억한다. 모두의 성적 욕구를 억압하는 이란 사회에서 방공호 안에서 만큼은 자유로웠던 두 사람이 둘이 사랑을 나눴다는 큰 죄를 치즈를 훔치고 담배를 훔치는 작은 죄로 덮지만 그래도 결국 부모님께 들키게 되고 실라는 온갖 모욕을 들었지만 캄란과 함께 가정을 꾸려 프랑스에서 살게되었다. 그런 시절을 뒤로 하고 상대적으로 훨씬 자유로운 프랑스에서 살면서도 두 사람의 딸은 엄마는 공주가 아니니까 아빠가 엄마에게 키스해선 안된다고 외치는 아이로 크고 있다. 나아졌구나 싶으면서도 답답함이 느껴진다.
내 남동생의 결혼식 -라일라 랄라미
미국 버클리에서 컴퓨터 공학을 가르치고 있는 주인공은 모로코에서 열리는 남동생의 네번째 결혼식에 참석하러 왔다가 모로코의 국경폐쇄로 모로코를 떠나지 못 하고 공항에서 자리가 남는 비행기편을 기다리고 있다.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미국인에게 자기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의 단편인데 이 짧은 이야기에서도 주인공이 가족 안에서 얼마나 답답했을지가 느껴지고 그래서 지금의 국경 폐쇄가 얼마나 불안할지가 느껴진다.
죽음의 시간, 시간의 죽음 -줄리언 푸크스
작가는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상황을 '시간이 더 이상 의미를 지니기를 멈추었다.' 라고 표현한다. 자기 혼자 사는 아파트에서 의미를 멈춘 시간을 느끼고 무기력에 빠져있다 부모님을 만나고 온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내는데 글이 철학적이고 문장을 어렵게 꼬아서 쓰는 방식이라 철학 에세이처럼 느껴진다.
분별있는 여자들 -리버스 솔로몬
텍사스 캐도에 사는 제루샤가 감옥에 간 엄마를 탈옥시키겠다고 다짐하면서 소설이 시작한다. 제루샤의 환경, 엄마가 감옥에 가게 된 이유, 탈옥의 방법, 교도관의 죄등 빠르게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지금까지 단편중에 가장 흥미진진했다.
제루샤가 리타 외이모할머니를 혼자 두고 떠나는 것도 제루샤 엄마가 아빠를 죽인 것도 교도관이 죽은 것도 안타깝지 않은데 교도관의 죽은 부인과 제루샤가 살인을 하게된 사실은 안타깝다. 제루샤와 엄마가 행복하길 바란다.
기원 이야기 -매튜 베이커
미국 디트로이트에 사는 90세 할머니 베벌리는 봉쇄조치에도 그 어느곳에도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기때문에 베벌리와 예전엔 사이가 좋았으나 지금은 누구보다 사이가 나쁜 증손녀 엘리를 포함한 모든 가족들이 베벌리의 집으로 모였다. 베벌리는 가족들에게 엄격한 배급제를 시행했고 다들 저녁에 아이스크림 딱 한숟갈만을 먹을 수 있었다. 가족들의 불만에 베벌리는 잘게 부순 얼음위에 아이스크림을 한숟갈 얹고 그 위에 또 잘게 부순 얼음을 올린 아이스 아이스크림을 개발한다. 이후 이 아이스 아이스크림이 지역 유명 디저트가 되는 것도 뿌듯하지만 이 아이스 아이스크림이 엘리와 베벌리를 화해시켰다는게 가장 뿌듯하다. 실제로 있는 메뉴는 아니겠지만 아이크림속 얼음의 깔끄러운 질감, 얼음조각의 매끈거리는 느낌, 아이스크림이 빛나는 모습 등 소설 속 묘사가 섬세하고 맛있어보여서 아이스 아이스크림을 한번 먹어보고 싶다.
성벽 앞에서 -에시 애두잔
팬데믹이 발생하기 4년전, 남편 토마스가 조카를 차로 치어 죽이기 2년전 중국의 만리장성에 갔다가 길을 잃은 일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건지 전혀 모르겠다. 어떤 의미를 담은 건지 뭘 비유한건지 그러니까 한마디로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모르겠다.
열린 도시 바르셀로나 -존 레이
불성실한 태도로 직장에서 잘린 주인공 사비는 코로나 봉쇄조치로 인해 오히려 이전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됐다. 사람들은 사비에게 일자리는 찾고 있냐는 질문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개 2마리는 키우는 사비는 언제든 산책을 빌미로 밖에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이 산책용 허가증과 개를 가지고 사업을 할 생각을 한다. 외출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개와 허가증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사업을 하던 중 키가 크고 매력적이고 똑똑한 대학원생 마리오나를 만나 연애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봉쇄조치가 끝나고 그 연애는 물거품 처럼 사라지고 사비는 tv를 보며 2차 파동만을 기다린다. 사비는 불성실한 직원이고 무능한 인간이자 한심한 남자지만 그래도 봉쇄조치 이전에도 늘 하루에 2번씩 산책을 시켰다는 점에서 자기 개 한테는 잘 하는거 같다. 자기 개를 남한테 빌려주고 돈을 번다는데서 찌질함도 또 느껴지지만 이런 사람에게는 오히려 코로나 봉쇄조치가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게 아이러니 하다.
한 가지 -에드위지 당티카
결혼한지 16주된 부부 레이먼드와 마리잔은 아이티의 동굴로 신혼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학교에서 일 하는 두 사람은 방학을 이용해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기로 했고 마리잔과 똑같은 이름의 마리잔 동굴을 그 계획의 첫번째 장소로 결정했다. 하지만 레이먼드는 코로나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고 마리잔은 일생의 사랑인 레이와 오직 전화통화밖에 할 수 없다. 코로나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코로나를 소재로 글을 쓴다라고 생각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코로나로 사랑하는 사람을 읽는 과정이 담긴 소설이다.
이 중에서 마음에 들었던 단편은 레이철 쿠시너의 빨간 가방을 든 여인, 리버스 솔로몬의 분별있는 여자들, 메튜 베이커의 기원 이야기 세편이다. 빨간 가방을 든 여인에서 나오는 촌철살인의 묘사가 좋았고 분별있는 여자들의 빠르고 속 시원한 전개가 좋았고 기원이야기 에서 나오는 할머니에 대한 애정어린 감정표현이 좋았다.
코로나가 2년째에 접어든 지금도 현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소설, 드라마, 만화 등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등장인물들은 코로나가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뉴스나 일상 생활에서는 삶을 송두리채 바꾼 코로나를 빼고 이야기를 할 수가 없는 수준인데 창작물에서는 여전히 코로나가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이런 괴리감을 이 소설이 줄여준다. 이 소설 속의 수 많은 인물들은 거의다가 코로나를 겪고 있다. 굉장히 낯설면서도 아주 익숙해서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