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삼국지연의 1 - 정통완역본
나관중 지음, 김구용 옮김 / 솔출판사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삼국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가장 많이 읽히는 책 가운데 하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제대로 읽혀지는 법이 별로 없는 책이기도 하다. 이는 우선 삼국지의 길이도 길이거니와, 기승전결과 주인공의 캐릭터가 분명한 현대소설과는 달리, 뚜렷한 서사구조나 분명한 주인공이 없는 삼국지는 읽는 이가 극적 긴장감을 계속 느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유비, 조조 등 주인공격이라 할 수 있는 주요 등장인물이 거의 다 죽고 난 후반부로 들어가면, 소설적인 서사구조는 완전히 실종되고 거의 기전체의 역사서에 가깝게 전개되기 때문에 더더욱 읽기가 지루해진다. 그래서 '누구나 삼국지를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삼국지를 모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또한 삼국지는 그 지명도에 비해 제대로된 번역본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도 특기할 만한데, 이는 일단 제대로 된 번역자(한문고문과 우리 문학 양 쪽에 실력을 겸비한)가 드물기도 하거니와 대부분의 번역자들이 자기들 멋대로 이야기를 첨삭하거나 가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삼국지는 거의 대부분이 '번역' 이라기 보다는 '편역'이라고 해야 마땅한 것들이었고, 그나마도 중국어 원본보다는 일본작가 요시가와 에이지(대하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작가로 유명함)의 일어번역본을 대본삼아 중역한 것이 대부분이다. (유비가 황하 가에 앉아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번역본들이 그것으로, 그 부분은 순수한 요시가와 에에지의 창작이다)

사실상 국내에 존재하는 제대로 된 완역본 삼국지(역자의 첨삭이나 가필이 없고, 중국어 원문을 가지고 번역한)는 내가 아는 한 김구용 선생이 번역하여 70년대초에 출간된 '삼국지'(일조각)가 유일하다. (그 외에는 중국연변 조선족작가들에 의해 번역되어 90년대초 국내에 소개된 연변판 삼국지가 있는 정도다)

이 김구용 선생의 삼국지는 국내유일의 완역정본이라는 것 외에도, 선생 본인이 한문학과 국문학 양쪽 모두에 조예가 깊은 문학가라는 점으로 해서, 한문고문 원래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동시에 우리말 고유의 구수한 맛을 완벽하게 표현한, 그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문학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72년 일조각판의 삼국지를 읽어보면 문장 하나하나가 한편의 고시를 읽는 듯, 그러면서도 우리말의 구수한 음색과 음율을 잘 살려 마치 겨울밤 화롯가에서 할아버지의 고담을 듣는듯한 정겨운 느낌마저 주고있다.

이번에 출간된 삼국지연의는 70년대초에 일조각에서 출간된 것을 다시 재복간한 것인데, 참으로 유감스러운 것은 재출간을 하면서 출판사가 현대적인 언어감각에 맞춘다는 이유로 원래의 문장을 제멋대로 이리저리 편집하여, 김구용 선생의 번역원문이 가진 맛과 깊이를 채 반도 느낄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편집자에 의해 제멋대로 문장 여기저기에 잔뜩 삽입된 쉼표와 문장부호들은, 원래대로라면 판소리 사설마냥 자연스럽게 물흐르듯 흘러가게 되어있는 말의 흐름을 이곳저곳에서 툭툭 끊어놓아, 마치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강물을 이곳저곳에 댐을 쌓아 막아놓은 듯 답답한 느낌을 주고있다.

김구용 선생이 삼국지 번역본을 처음 출간한 것이 70년대초였으니, 불과 30년 동안에 우리 언어감각이 얼마나 놀랍게 현대화되었다는 것인지 읽는이로써는 짐작이 안되거니와, 이른바 '현대감각'에 맞춘다는 구실로 어설픈 손질을 하여 고전의 가치를 훼손하는 이런 몰지각한 출판사가 앞으로는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상천하 1
Oh! Great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0년 3월
평점 :
절판


90년대 중후반 일본에서 포르노만화 작가로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작가 大暮維人(오오구레 이토)가 일반성인만화 작가로서 전업하며 내놓은 첫번째 작품이자 아직까지 연재가 계속되고 있는 장편 성인물이다.

오오구레 이토(Oh! Great는 작가의 포르노만화가 영미권에 수출되면서 사용한 필명으로, 일본이름 오오구레 이토를 패러디한 것이다)는 90년대 중반 포르노만화작가로서 작품활동을 시작, 섬세하고 정교하면서도 관능적인 그림체로 인하여 3류작가 일색인 일본 포르노만화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그 작품들은 영미권에까지 수출되어 일본 포르노만화의 대명사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당시나 지금이나 일본의 포르노만화 시장은 대충 그려서 대충 팔아먹는, 작품성이나 수준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인데(한국의 에로비디오 시장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오오구레 이토는 그런 포르노만화 시장에서 고집스러울 정도로 공을 들인 정교하고도 관능적인 그림체를 고수하여, 현재까지도 일본의 에로만화계에서는 그의 작품을 능가하는 작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그리하여 그런 뛰어난 그림수준을 인정받아 마침내 메이저성인만화잡지인 영점프에 스카웃 된 그가 98년에 최초로 그린 작품이 이 '천상천하'이다.

말하자면 실력을 바탕으로 3류마이너작가에서 메이저작가로의 변신에 성공한 드문 케이스라 하겠는데, 원래 포르노작가로서 명성을 떨친 작가답게, 이 작품을 비롯한 그의 다른 성인만화작품들(마인, 히미코전 등) 역시 여성의 육체에 대한 관능적이고 섬세한 묘사를 그 장기로 하고있다.

그러나 그 그림체를 비교해보면, 90년대중후반 포르노만화작가로서 절대적인 명성(이래봐야 결국 3류포르노작가로서의 명성이지만)을 얻으며 활약하던 때에 비하면 이미 조금씩 필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더군다나 포르노작가로서 중단편만을 전문적으로 그려오던 그가 장편작업을 하기에는 다소 역부족이라는 느낌이다. (물론 스토리와 콘티는 다른 작가의 도움을 받았겠으나)

大暮維人의 전성기는 역시 95-98년에 걸친 포르노전문작가로서의 시기로, 포르노라는 점을 제외하고 본다면 이 때의 그의 작품수준(주로 그림체의 면에서)은 단연코 메이저만화시장의 톱클라스 작가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것이었다. 뛰어난 재질을 가진 작가가 마이너포르노만화시장에서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것은 반길 일이겠으나, 그 시기가 이미 작가로서의 전성기를 지난 한발 늦은 일이 아닌가 싶다.

또한 이 만화는 형식은 학원물로 되어있으나, 실제는 엄연한 성인물이다. (일본에서 현재 이 작품의 계재지인 강담사의 울트라점프는 영점프의 자매지로, 20세이상 성인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인만화지다.)

이런 작품이 한국에서 18세이하 구독불가로 나오지 않은 것은 좀 문제가 있다 하겠다. 아마도 수익성을 고려한 출판사 측의 농간이겠지만, 엄연한 성인물을 '18세이하 구독가'로 만들기 위해 적지않은 분량을 삭제함으로서, 결국 작품의 질을 더욱 떨어뜨리는 결과가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유키 1
아다치 미츠루 지음, 김현정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은 80년대 초반에 그려진 아다치 미츠루의 초기(말하자면 그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초기) 작품인 동시에 가장 완벽한 작품이다.

아다치는 70년대 중반부터 중단편 위주의 소년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당시 이미 유명작가이자 대작가였던 치바 테쓰야(내일의 죠/ 1, 2, 3과 4, 5, 로꾸)의 소년만화에서 영향을 받은 이 초기작들은 그다지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이 당시의 작품들 중에서는 '하트의 에이스'라는 중단편 정도가 이후의 아다치 작품의 색채를 옅보게 할 수 있는 정도일 뿐이다.(최근 일본 코다마사에서 이 당시의 작품들을 모아 3권짜리 '아다치초기걸작집'을 출간하였다.)

아다치 미츠루가 만화가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70년대말에 그린 최초의 장편야구만화인 '나인'부터이나, 이 역시 치바 테쓰야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초기의 경향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그가 자기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게 된 것은 '나인' 이후 2번째 장편인 '햇살이 좋아'(陽あたり良好!)부터로, 이 작품에서부터 그는 그의 독특한 화풍과 코믹로맨스의 스토리를 본격적으로 선보이게 되고 이후 '미유끼', '터치' 등을 잇다라 발표하며 80년대 최고의 작가의 하나로 꼽히게 된다.

이 '미유끼'는 말하자면 그가 본격적인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초기의 작품이며, 동시에 가장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스토리 구성이나 캐릭터 면에서 가장 완벽하게 균형이 잡힌 작품이며, 단지 화풍 면에서 아직 완전히 완성되기 이전이라 초반부에서 결말부로 넘어가면서 그림체가 다소 변하게 되는 것이 눈에 거슬리는 정도다.

이 작품이 아다치의 가장 완벽한 작품이라고 꼽히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한 직후이면서 아직 본격적인 유명작가로서의 유명세를 치루기 전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만화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산업의 하나다. 일년에도 수십개의 만화잡지가 나타났다 사라지며, 1회발행에 수십만부 이상을 찍는 초대형만화잡지도 마진율이 불과 2-3% 이하라는 살인적인 경쟁을 견대내야 한다. 이런 치열한 경쟁은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새로운 작가와 소재를 발굴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기작가에게는 시장의 요구에 묶여 자유로운 창작을 제한받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즉 치열한 경쟁을 견뎌내야 하는 출판사에게 스타작가의 확보는 채산성을 맞추기위한 제1의 조건이나, 이런 스타작가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일단 인기작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는, 새로운 시도나 모험을 하기 보다는 시장의 요구(출판사의 요구)에 우선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다. 이는 내용면에서는 이미 독자의 지지가 확고한 기존의 소재와 스타일을 고수하게 되는 경향으로, 형식면에서는 일단 인기를 얻고있는 연재물은 가급적 이야기를 늘려서 장기연재로 나아가는 모양을 띄게된다. 즉 새로운 상품을 내놓기 보다는 '팔리고 있는 것을 계속 팔자'는 쪽으로 가게 된다. (70년대 이후 일본만화의 특색인 30, 40권 이상의 초장편물들은 이런 치열한 시장경쟁의 결과이다.)

따라서 작가로서는 스토리전개의 구조상 이미 종결시켰어야 마땅할 작품을 출판사의 요구에 따라 계속 늘려나가게 되고, 이 과정에서 이미 써먹은 소재를 형태만 바꾸어 반복하거나, 아니면 1,2회로 끝낼 소재를 수회로 늘리는 등의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80년대이후 아다치의 작품은 이런 시장경쟁의 논리에 의해 작가가 어떻게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로서, 작품의 과도한 초장편화(H2, 터치 등), 이미 사용한 소재의 반복와 스타일의 고착화, 무리한 작품활동으로 인한 창작력의 감퇴(미소라 등) 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미유끼'는 아직까지 시장의 요구에 본격적으로 얽매이기 전의, 작가 자신의 아이디어와 스토리에 충실한 '가장 아다치다운 아다치 작품'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꺼벙이 1 - 바다어린이만화
길창덕 지음 / 바다출판사 / 2001년 8월
평점 :
품절


한심이 표류기의 윤승운, 고인돌의 박수동과 더불어 70년대 명랑만화계를 이끌었던 트로이카의 한사람인 길창덕 선생의 꺼벙이는, 길창덕 씨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자 동시에 70년대를 대표하는 만화캐릭터이다. 지금도 인터넷 아이디 중에 '꺼벙이'가 많이 쓰이는 것을 보면 시대를 뛰어넘는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길창덕 씨는 소년중앙과 새소년 등 70년대 소년잡지에 많은 명랑만화 작품을 연재했는데, 그 대부분은 신판보물섬, 요철도사 등과 같은 장편물이었다. 하지만 소년중앙에 장기연재된 꺼벙이는 이와 달리 매회 이야기를 달리하는 단편물로 해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아이들 잡지의 특성상, 매회의 스토리를 다 알지 못하면 다음회를 이해하기 힘든 장편물보다는 명랑물이 더 인지도가 높았다고 할 수 있다. 이당시 달마다 나오는 소년잡지를 매호 꼬박꼬박 사볼 수 있는 집은 드물었으니까)

꺼벙이와 동생 꺼실이,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벌이는 요절복통의 코미디는, 길창덕 씨 특유의 해학적인 그림과 과장된 묘사로 그 당시에는 박수동 선생의 고인돌과 함께 명랑만화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봉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70년대 후기 들어서 다소 딱딱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흘러간 신판 보물섬 등의 작품들 보다는, 섬세한 펜선과 해학적 묘사로 일관한 꺼벙이야말로 70년대 명랑만화의 최고봉이자 길창덕 씨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심이 표류기 1
윤승운 지음 / 바다출판사 / 2001년 8월
평점 :
품절


70년대 길창덕 씨와 함께 명랑만화계를 대표하는 작가이던 윤승운 씨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원래 소년한국일보에 2년여에 걸쳐 연재된 작품으로 원제목은 '한심이 표류기'였다. 그것이 나중에 문고판으로 발행되면서 '두심이 표류기'로 이름이 바뀌었다.

새소년 발행사인 어문각에서 발간하던 클로버문고는 70년대에 발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만화문고로 200권 이상이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주로 새소년에 연재되던 만화시리즈를 단행본 형태로 묶은 것으로, 바벨2세, 유리의 성 등 일본만화의 복제물이 주종을 이루었다. 하기야 당시 새소년 등 소년잡지에 연재되던 만화가 대개 일본만화 복제물이었다. 하지만 클로버 문고에는 새소년 이외 다른 잡지나 어린이신문에 연재되던 작가들의 만화도 적지않이 단행본으로 묶여나왔는데, '한심이 표류기'도 그 중의 하나이다. 역시 소년한국일보에 연재되던 김삼씨의 '소년 007 우주대작전'도 나중에 클로버 문고로 엮여 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문제는 왜 이름이 '한심이 표류기'에서 '두심이 표류기'로 바뀌었나 하는 건데, 아마도 당시 아동만화에 대한 검열과 제재가 엄격하였던 탓으로 보인다. '한심이'라는 이름이 검열에 걸릴 우려가 있다고 생각되어 출판사 측에서 스스로 바꾸어 버린 것.

말도 안되는 이야기 같지만 당시에는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지금도 인식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지만) 천박하고, 규제라는 것이 말도 안될 정도로 단순하고 유치하면서 무지막지한 것이어서, 출판사들은 알아서 길 수 밖에 없는 풍토였다. 이름 뿐 아니라 대사도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을 것 같은 내용(예를 들어 딸이 아버지에게 반항적인 말투로 대든다는가 하는 내용)은 모조리 삭제, 수정되었고, 그림에 피나 상처 같은 것도 전부 수정되어서 출판되었다. (요즘 세태로 보면 정말 이해가 안되는 일이지만) 이 바다출판사의 복각본은 아마도 클로버 문고판 수정본을 그대로 복제해서 출간한 것으로 보여진다. 하기야 신문에 연재되었던 오리지널 원고는 남아있을리가 없겠지만...

클로버 문고판은 오리지널 신문연재본과 비교해 몇가지 흠결이 있다. 우선 이름이 '한심이'에서 '두심이'로 바뀐 것. 생각해보면 참 유치한 얘기인데, '한'심이가 검열에 문제가 될 듯 하니 이걸 그냥 '둘(두)'심이로 바꾼 것이다. 아마 원작자 윤승운 씨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바꿔치기 했으리라 짐작된다. 그 결과 원작의 두명의 주인공 콤비(한심이와 꼴찌)의 이름이 가지는 대비와 비유적 의미가 갖는 재미가 반감되어 버렸다.

또한 이름 뿐 아니라 대사에서도 다소라도 문제가 될 듯 한 것, 예를 들어 한심이가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면서 이를 제지하는 아버지에게 대드는 부분 같은 것은 모조리 대사가 수정되었다. 아마도 교육상 불건전하다는 이유에서 였겠지...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오리지널 원고의 그림이 상당부분 훼손되었다는 것. 오리지널 원고는 타블로이드판 어린이 신문의 하단 전체에 걸쳐 실렸던 것이라 세로는 짧고 가로는 긴, 공책을 옆으로 눞인 것과 같은 포맷으로 되어 있었다. 이것을 문고본 형태로 재편집하는 과정에서 크기가 안맞는 그림들은 마구잡이로 짜르거나 아예 삭제해버려서, 결과적으로 오리지널본에 비하면 반쪽짜리 책이 되어버렸다.

오리지널 원고가 없다는 데 어떻게 이런 것을 알 수가 있느냐고 의아해 하는 분도 있겠지만, 어릴 적 집에서 소년한국일보를 정기구독하여서(실은 아버님의 직장관계로 공짜로 집에 들어왔었다) 거기 연재되던 한심이 표류기를 일일이 스크랩해 다 쓴 공책에 붙여 모아놓은 것이 한 10여권이 되었었다. 나중에 태반은 잊어버렸지만 고등학교 무렵까지 몇권이 남아있었는데, 이를 클로버 문고 단행본과 비교해 보고 참 어처구니가 없어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70년대 한국만화 초창기의 아동명랑물의 대표적인 작품이지만 검열과 만화에 대한 저열한 인식 등으로 인해 이처럼 반쪽짜리 작품으로 밖에 남을 수 없다는 것이 가슴아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