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과 수리공 - 과학을 뛰어넘은 엔지니어링 이야기
권오상 지음 / 미래의창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공학(이 책 저자의 표현대로는 엔지니어링)과 과학 사이의 우열을 논하는 것이 굳이 의미가 있을까?

최근에는 물리학과, 수학과 같은 자연과학을 대표하는 학과들이 없어지는 대학들도 늘어나고 있고, 반면 공학 분야는 학령인구가 줄어듦에도 정원을 늘린다느니 하는 소식이 계속 들려오는데 이런 이공계내에서의 우열 다툼이 할 일없어 보인다. 1부의 제목은 과학이 엔지니어링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엔지니어링이 과학을 이끈다 인데 이런 순서가 인류 역사에 항상 지켜졌고 앞으로도 지켜질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인류가 도구를 만들고 문명을 이루면서 공학이 과학을 이끈 부분이 분명히 있으나, 이 후에는 과학의 이론이 공학의 새로운 길을 열어준 부분도 많았으리라. (옛날 우리 조상들이 이루어온 과학 업적이란 정확한 힘의 단위나 속도, 물질의 변환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의 업적이므로 수많은 손기술들의 노하우가 축적된 공학 업적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2부의 제목, 내용을 포함한 그 제목에도 썩 동의하기 어려운데 과학이란 어떤 최종적인 답을 내려 신과 같이 절대적으로 행사(行使)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학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를 인류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이해한 성실한 노력의 결과이며 따라서 그 자체가 우리 인류의 정성을 전 우주에(또는 신에게) 나타내 보이는 정도일 것이다. 장하석 교수의 말처럼 우주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란 풍선과 같아서 풍선이 팽창하듯이 과학적 지식이 늘어날수록 풍선이 이루는 표면적도 넓어져 미지의 영역 역시 넓어진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계속 풍선을 불어 우리가 이해하는 범위를 계속 넓혀야 할 것이다. 3,4,5부에서는 제목 자체부터가 아예 잘못되었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굳이 공학이 과학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일부의 한국인들 외에는 주장의 타당성뿐 아니라 주장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라 여겨진다.

공학계열 내에서도 서열을 따지고 대학입시에서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 현실이 더 안타깝지 않은가? 이미 선진국에서는 공학이 좋아 공학자로 열심히 살다가 의외로 노벨상을 받기도 하고 나이에 관계없이 계속 실험실에서 근무하기를 좋아하고 이런 것이 아무런 이상한 일이 아닌 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않은가? 저자도 소위 한국에서 최고의 학벌의 지닌 공학도였지만 결국은 끝까지 공학자의 길을 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공학이 좋았던, 남들이 과학이라고 부르는 분야가 좋았던,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할 수 있고 적당한 생활수준을 유지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학과 과학의 서열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업적에 대해 충분히, 그야말로 충분히 인정(appreciate)하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들의 땀과 노력과 지성에 대한 appreciation이 없이, 그 분야를 누가 공학이나 과학이라고 이름 붙였든 과학이 서열이 더 높은지 공학이 더 높은지 따진다는 것은 잘 차려진 음식을 가만히 앉아 받아먹으면서 좋은 음식이 되기 위해서는 재료가 좋아야 된다느니, 요리사가 훌륭해야 된다느니 하고 따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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