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궁마마
이청은 지음 / 아롬미디어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아롬미디어(아롬은 앎의 옛말이다.)

2013년 9월 2일 초판1쇄 발행

 

시대적 배경은 조선시대, 왕의 나라이냐, 사대부의 나라이냐의 줄다리기로 얼룩진 조선의 역사를 후궁 은빈의 시선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은빈, 본 이름 연영은 좌의정 민수근의 딸로 13살의 어린나이에 후궁으로 궁에 들어오게 된다. 선왕의 유언으로 사대부세력의 중점에 있던 민수근을 제어할 목적으로 간택되어진 인빈은 5년째 후미진 전각에 내쳐진 상태이고 왕이 찾지 않는 그 전각을 궁의 사람들은 냉궁이라 불렀다.

 

2부로 나뉘어 전개되는 이야기는 1부엔 외적인 시각으로 2부엔 은빈의 비밀을 풀어내고 있다. 은빈의 아버지 좌상 민수근은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로 생각하며 임금독단이 아닌 사대부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에 따라 정치를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으며, 왕 이려의 아버지는 왕권주의를 표방했던 사람이며, 등극전 후계구도의 혼란속에서 좌상은 선왕을 제쳐두고 진선군을 왕으로 추대했었다. 그 다툼속에서 은빈은 희생양이었던 셈이다.

 

1부에서 은빈은 조선왕 이려를 훤칠하고 잘생긴 사람으로 그리워하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남몰래 강녕전을 훔쳐보기를 하는 듯의 행동을 보인다. 어느날 합궁을 하게 되고 회임을 하게되고, 냉궁전에 궁녀를 살리고자 회초리를 맞고 다시 유산을 하게 되는등의 사건이 터진다. 그러나 이 모든것은 은빈의 상상속에서 있었던 일이다. 은빈은 철저하게 계획한다. 아버지를 구하고 자신의 자유를 찾기 위해...

 

삼간택의 날, 단 한번의 눈빛으로 연정을 품게 된 남자, 겸사복 벗. 둘의 인연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 좌상을 제어하기 위해 어린 딸 연영이 납치당했던 그날부터.. 어쩜 둘은 운명이었으리라. 실성을 가장하여 겸사복 벗을 가까이 두고 왕 이려를 속이기 위해 무후오라버니라고 칭하며 은빈은 하나 하나 계획한 후 임금으로 부터 자신을 지키고 결국 벗과 함께 사라진다. 궁에서 내쳐저 동학사로 가던길, 은빈은 요금문을 통과해 궐밖으로 나온다. 서거정이 지었다는 요금문은 궁인들이나 왕비가 임금에 의해 쫒겨날 때 사용되는 문이라 했다. 실제로 요금문은 망각의 문으로 알려져 있다. 세상을 또는 궁을 잊어야 할 사람들이 통과하는.. 은빈은 궁에서의 외롭고 힘든 5년의 세월을 잊고자 했다. 그리고 자유롭고자 했다. 큰 비에 휩쓸려가 사라지는 각본까지 짜며... 치밀하고 당차다. 감히 생각치 못할 계획이다. 은빈은 자신의 삶을 어쩔수 없이 받아들여했을 조선의 여인이 아니었다. 현명하고 자기것을 지킬줄 아는 당찬 여자였다.

 

은빈이 왕을 잊지 못하느냐는 벗의 말에 대답한다.

"산불우운이요 수불우곡이라 했습니다. 산은 구름을 탓하지 아니하고 물은 굴곡을 탓하지 아니한다 하는 말입니다. 구름이 산을 지운다 해도 산은 항상 그자리에 있고 물길이 아무리 굽이치다 해도 물은 결국 흘러갑니다. 지나가는 슬픔, 지나가는 나관, 지나가는 인연에 연연해하지 않고 산처럼 물처럼 살고 싶다는 뜻이지요." 은빈의 마음가짐을 잘표현한 문구다. 단 몇장을 남겨두고 소설의 마지막은 지금까지의 비밀들이 한꺼번에 밝혀진다. 책을 읽는 내내 갖었던 가능성을 확인하는 셈이었다.

 

첫장을 시작하여 책을 덮을때까지 한 번에 읽혀진 책이다. 재미있었다. 구어체도 좋고, 툭툭튀어나오는 사자성어들도 좋고, 읊어진 연정의 시들도 좋았고 긴박한 구성도 좋았다. 참 오랫만에 재미있는 책을 만났으매, 서둘러 기억을 정리했다. 은빈의 시 한 소절로 서평을 마무리 한다.

 

낭하가 적막하여 꽃 새소리도 슬프구나.

대낮 빈 뜰에는 꽃을 찾아 날아드는 나비들로 어질한데

이곳에 나와 앉아 현라한 것들을 감상하니

눈은 호화로운데 이 내 마음은 황량하누나.

이 마음 아는 듯 물이 마른 구리 그릇에는

물시계도 움직이지 않는구나.

향불 꺼진 향로에는 그을음만 소복하니

내 섬돌 위에 오르기 조차 버겁구나.

 

2013.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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