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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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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79

하느님 이야기를 하자면, 인디언 힐 같은 천국에서 하느님을 좋게 생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1944년 여름 뉴어크에서는 ㅡ 혹은 유럽이나 태평양에서는 ㅡ 그렇지 않았다.



p. 243

사람의 운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누구의 인생이든 우연이며, 수태부터 시작하여 우연 ㅡ 예기치 않은 것의 압제 ㅡ 이 전부다. 나는 캔터 선생님이 자신이 하느님이라 부르던 존재를 비난했을 때 그가 정말로 비난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p. 249

˝하지만 선생님이 보균자라는게 있을 수 있는 얘기라 해도 선생님은 그 사실을 몰랐잖아요. 설마 선생님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지금까지 그 긴 세월동안 자신을 벌하고, 자신을 경멸하며 산 건 아니겠죠. 그건 너무나 가혹한 판결이에요.˝




p. 273

˝자신에게 맞서지 마세요. 지금 이대로도 세상에는 잔인한 일이 흘러 넘쳐요. 자신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지 말라고요.˝

그러나 세상에서 망가진 착한 소년만큼 구원하기 힘든 사람은 없는 법이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혼자 자신만의 상황 감각을 키워왔기 때문에 ㅡ 또 간절하게 갖고 싶어했던 모든 것을 갖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ㅡ 내 힘으로는 그가 자기 삶의 끔찍한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을 몰아낼 수도 없고 그와 그 사건의 관계를 바꿔놓을 수도 없었다.

(중략) 버키는 가혹한 의무감에 시달리면서도 정신의 힘은 거의 타고나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 시간이 갈수록 그의 불행을 강화하고 치명적으로 확대하는 이야기에 아주 심각한 의미를 부여해 큰 대가를 치렀다. 챈슬러 놀이터와 인디언 힐 양쪽에 초래된 대재난은 그의 눈에 자연의 악의에 찬 부조리가 아니라 그 자신이 저지른 큰 범죄로 보였고, 이런 생각 때문에 그는 자신이 한때 소유했던 모든 것을 내놓고 인생을 망쳤다. 버키 같은 사람의 죄책감은 남이 보기에는 터무니없었지만, 사실 불가피한 것이다. 그런 사람은 구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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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합본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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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하고 어처구니 없는 인물들, 허무맹랑하지만 일상적인 사건들이 어떠한 논리나 개연성도 없이 쉴새없이 펼쳐진다. 특별한 게 있다면 소설의 배경이 우주라는 것뿐. 몇몇 인물이나 사건이 중복해서 등장할뿐 시리즈 전체에 걸쳐 일관성을 찾기가 힘든 탓에 책을 읽는 중간 자기도 모르게 길을 잃거나 결국 완독을 포기하게 된다고 해도 충분히 이해된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이유는? 재밌으니까.

더글러스 애덤스가 창조해낸 이 황당무계한 우주는 과학에 기반한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진짜 그럴듯한 우주의 모습이 아니라서 더 매력적이다. 그의 우주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과거에 이 지구에서 일어났던 또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사건들을 떠올리게 하고, 외계인들 역시 인간과 너무나 닮아있다. 배경이 우주적 규모로 확장되어도 삶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토록 정신없고 산만하며 무진장 길기까지 한 소설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는 현실에 대한 조롱과 풍자 혹은 촌철살인의 블랙유머는 치밀한 과학적 근거와 물리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미래 지구의 모습을 묘사하거나, 인간의 이기주의로 인한 무분별한 과학발전과 무자비한 개발이 인류의 존폐를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여타의 다른 SF소설과 차별화되는 이 책만의 치명적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보고인의 공격이 있던 때 지구에서 탈출한 한 명의 외계인과 한 명의 인간은 평행우주와 불가능확률추진기 등을 통해 우주 이곳저곳과 시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하며 다시 지구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이 책의 끝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지구의 종말. 주인공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결말은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날텐데 뭐하러 그렇게 노력해?˝ 따위의 비관주의로 귀결되지는 않는데, 이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아서 덴트이다. 동시에 그렇게 거창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허접하고 시시하기까지한 더글러스 애덤스의 우주에서 유일하게 진정성이 느껴지는 인물 역시, 홍차와 펍을 좋아하며 샌드위치 만들기의 달인이고 사랑하는 여자를 찾기 위해 전 우주를 여행하고 엉겁결에 떠맡게 된 딸에게 부성애를 느낄 줄도 아는 영국인 아서 덴트 뿐이다.

결국 아서가 아무리 노력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광대한 우주 안에서 그는 한없이 미미하고 무력한 존재지만 그럼에도 아서에 대해 독자들이 느끼게 되는 애정만큼은 이 시리즈 내내 일관적일 것이다. 우리도 이 지구에서 숨쉬며 살고 있는, 그와 똑같은 ‘사람‘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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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나 부정적이고 비관적인데 이토록 사랑스러운 로봇이라니! 마빈, 내 최애 캐릭터.


p. 108

˝제가 지금 굉장히 우울한 상태라는 걸 아셔야 할 것 같아요.˝ 마빈이 말했다. 낮고 절망적인 목소리였다.

˝맙소사.˝ 자포드는 이렇게 중얼거리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자, 네가 할일이 있어. 그럼 울적한 생각들도 마음에서 사라질거야.˝ 트릴리언이 밝고 자비로운 어조로 말했다.

˝소용없을걸요. 제 마음은 유별나게 크거든요.˝ 마빈이 청승맞게 말했다.



p. 541

˝너 뭔가 생각이 많구나.˝ 매트리스가 푸루룩하게 말했다.

˝네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마빈이 음침하게 말했다. ˝모든 종류의 정신적 행위에 있어서, 내 능력은 끝없는 우주의 범위 만큼이나 무한해. 물론, 행복의 능력은 제외하고 말이야.˝ 쿵,쿵, 그는 계속 걸었다. ˝내 행복의 능력은 고작 성냥갑에 들어갈 만한 수준이야. 성냥 몇 개를 덜어낼 필요도 없을걸.˝ 그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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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폴리앵에 지다 매그레 시리즈 3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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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레시리즈 전집읽기 도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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