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티모어의 서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조엘 디케르의 소설은 항상 아쉽다. 플롯이나 사건은 거창하고 매력적인데, 그 사건을 겪어내는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이 가볍고 겉돈다고 해야 하나. 이게 조엘 디케르의 문체의 문제인지 번역상의 문제인지 항상 헷갈렸는데, <볼티모어의 서>를 보고 나서 작가의 문제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전작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보다 더 실망스러운 작품이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인물들의 인생사를 송두리째 담으려 한 작가의 과욕으로, 이야기는 자꾸자꾸 커지는 대신 알맹이는 사라졌다. 그저 한 집안의 내력을 날짜별로 정리한 연대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창가의 그림자 매그레 시리즈 12
조르주 심농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파리 보주광장의 한 아파트가 배경이지만, 읽다보면 한국의 어느 허름하고 지저분하고 낡은 연립주택이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른다. 스물여덟 가구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에는 벼락부자가 된 한 남자와 그의 전부인이 우연히도(?) 위아래 층에 살고 있다. 그녀는 창문을 통해 전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염탐해왔다. 그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던 그 순간에도.

극심한 피해의식에 젖어있고 지나간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지 못하는 어느 불행한 여인의 질투와 욕심이 만든 비극은, 그녀의 후회와 시기심을 오롯이 옆에서 견뎌내야 했던 전남편과 현재의 남편, 그리고 그녀의 아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기고 셋 중 두 사람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살아남은 한 사람의 남겨진 삶도 제대로 된 삶이 아닐 것임은 불보듯 뻔하다.

평범한 파리의 아파트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일상 속의 비극. 사건의 실상이 밝혀질수록 이런 게 바로 지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없이 밝고 따뜻한 매그레 탐정의 집안 풍경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 소설의 마지막은 이 치정극의 음울함을 더욱더 부각시킨다. 오죽하면 매그레가 ‘이 사건에 매달리기 보다는 차라리 흉악범을 쫓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르웨이의 숲 (30th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허무와 방황의 늪에서 허덕이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나가사와) 더 많이 사랑한다는 죄로 옆에서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하쓰미) 누군가는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견디다 못해 도피아닌 도피를 하지만(레이코) 도망도 못간 채 깊은 어둠의 우물 속에 빠져 영영 헤어나오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기즈키와 나오코)

와타나베는 그들 모두의 곁에 있지만 항상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한발짝씩 떨어져 있었기에 그들에게 물들지 않고 온전히 그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오코는 그와 너무도 달랐다. 때로는 청춘을 뒤흔드는 좌절이 찾아오더라도, 그 좌절이 친한 친구나 애인의 죽음일지라도, 그것은 인생의 한 장이 끝나는 것일 뿐 새로운 장은 언젠가 반드시 시작되는 법이라고, 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기에는 나오코는 너무나 나약했고 아직 어렸다.

물론 와타나베도 상처를 말끔히 극복한 것은 아니었다. 뭐가 됐든 좋아서 연극을 전공으로 택했다는 와타나베는 지도를 ‘진짜‘ 좋아해 지리학을 전공하는 그의 룸메이트 특공대의 상식으론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이상한 사람일 것이고, 자기 감정에 더없이 솔직하고 주위에 신선한 생명력을 힘차게 뿜어내는(p.93) 미도리에게 그는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속을 도통 알 수 없는 사람일 것이다. 이처럼 와타나베는 모든 것에 무심한 태도로 심각해지지 않으려 애쓰며 세상의 주변부를 맴돈다. 상처와 좌절을 겪고도 살아가는 그 나름의 방식인 것이다. 기즈키의 죽음을 겪은 후로 쭉 그래왔고 나오코가 죽은 이후에도 그렇게 꾸역꾸역 버티며 살아가다가 현재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이 보통 사람들이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죽음을 멀리 있는 것, 삶의 저편에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p.48) 그래서 와타나베는 나오코에 대해 자신이 느끼는 책임감을 기즈키에게 고백하며 너와 달리 난 제대로 살아가겠다고, 강해지고 어른이 되겠다고 선언한다.(p.415) 또한 나오코에게는 기즈키와 공유했던 추억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므로 더이상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만 있어서는 안된다며(p.368) 기즈키가 떠난 이후부터 멈춰버린 그녀의 태엽을 다시 감기 위해 애쓴다.

와타나베가 미도리와 같이 있을 때 가장 와타나베답게 혹은 가장 편안해보인다고 느껴졌다면 지나친 감정이입일까. 그는 나오코에게 깊은 부채의식을 느끼면서도 점점 커져가는 미도리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못했고, 아사히카와로 향하는 레이코를 배웅하고 홀로 남겨졌을 때 그의 머릿속에 생각나는 사람 역시 미도리뿐이였다. 나오코를 사랑한 건 맞지만 그녀가 갈구하는 건 다른 사람의 팔, 다른 사람의 온기였기에(p.54) 그녀를 생각하고 그녀와 함께 있을수록 마음 속 빈 공간은 점점 커질 뿐이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에 이어 사랑하는 사람까지 잃고도 세상에 홀로 남아 계속 살아갈 와타나베에게, 자신을 영원히 기억해달라는 나오코의 부탁은 정말이지 잔인하기 그지 없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 서른일곱이 된 와타나베는 힘주어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오코는 나를 사랑하지조차 않았다.˝(p.22)


-


이렇듯 <노르웨이의 숲>은 삶과 죽음, 기억과 상실, 사랑과 이별, 젊음과 방황에 대한 소설이다. 이외에도 등장인물 중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읽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양한 설명이 여기에 보태질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은 와타나베의 시각으로 전개되고 나 역시 그의 목소리를 따라서 읽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속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해 각기 다른 그들만의 고유한 걸음걸이로 마음껏 활보하게 한다. 마치 아이가 장난감 상자에서 알록달록 다른 옷을 입은 병사들을 꺼내 걷게 하는 것처럼.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저마다의 ‘노르웨이의 숲‘을 헤매고 다니는 모든 부유하는 청춘들의 생각과 삶을 하나하나 다 들여다 보게 되고 그러다가 종국에는 눈을 돌려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내용은 사실상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는 어느날 죽음이 완전히 사라져버려 대혼란에 빠진 한 나라에 대한 이야기이고, 2부는 이런 엄청난 짓(?)을 감행한 ‘죽음‘의 이야기다. ‘죽음‘은 여자 해골의 모습을 하고 있고 그날 죽을 운명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주색 편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죽음을 집행한다. 한국식 저승사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딱 한 명, ‘죽음‘의 명령이 먹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 운명으로 정해진 죽음의 날이 이미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삶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 사람. ‘죽음‘은 궁금해 한다. 이 사람은 과연 누굴까. 그래서 ‘죽음‘은 인간의 모습을 한 채로 이 남자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은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이다. 이 문장을 시작으로 죽음이 사라진 나라의 갖가지 혼란을 자세하게 묘사하며 죽음의 의미를 고찰한다. 그런데 소설의 마지막 문장 역시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이다. 왜일까. 직전 상황에서 ‘죽음‘은 사랑하는 남자의 자주색 편지에 불을 붙여서 태워버렸고 남자의 곁에서 처음으로 ‘잠‘이라는 것을 청한다. 둘다 ‘죽음‘이 여태까지 한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엄청난 일이다.

죽음이 중지되었음을 알리는 똑같은 문장. 그러나 첫 문장이 사전적 의미의 죽음의 중지를 의미한다면, 마지막 문장에서는 ‘죽음‘으로 하여금 자신의 본분까지 잊게 만든 사랑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초와 초 사이의 현재가 계속되어 둘만이 존재하는 그 순간이 사라지지 않고 영원할 것 같은 느낌. 사랑에 빠진 순간에는 죽음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아마도 그녀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리라.

죽음으로 시작하여 사랑에 대한 예찬으로 끝을 맺는 소설.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3.67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별 다섯 개로는 부족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