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들의 어머니 트리플 19
김유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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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소설같지않은소설 #단편소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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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들이 눈앞에 나타나는 꿈을 꾼 것만 같다.

한 줄 평


오늘 기영을 만나고 돌아와서는 「갱들의 어머니」라는 소설을 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첫 문장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의

열아홉 번째 안내서,

『갱들의 어머니』

시인 김유림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담겨 있는 세 편 모두

'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주인공 모두 작가(혹은 지망생)이다.

 

"이 와중에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을 

글로 받아 적으면

그것이 시, 산문, 소설 중 무엇이 될 것인지를

가늠해본다." (「갱들의 어머니」)

 

"일을 관두고 작가가 되려고 하는"

(「핸드폰을 든 채로 죽으면 안 돼」)

 

"회사를 관둔 뒤 줄곧

집과 카페를 오가며 소설이라는 걸 붙들고 있던

나에게" (「두 갈래로 나뉘는 길」)

 

그리고 그들이 쓴 글이

소설 속에 담겨있기도 하다.




 

「갱들의 어머니」

"갱들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예상" 하고,(p. 12)

그렇기에 「갱들의 어머니」라는 소설을

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나'에 대한 이야기다.

 

"일반 시민으로 위장한 채 시민사회에서

능청스레 살아가는 갱들"은

자신들을 "식별해내고 거둘 만한

소양과 재능이 있"(p. 13)는 '나'를

본능적으로 찾아온다.

 

갱들은 누구일까.

아니, 무엇일까.



 


「핸드폰을 든 채로 죽으면 안 돼」

"죽고 싶었던 순간에 대한 짧은 기록"(p. 51)이다.

 

소설은 주인공이 자신의 방을

설계도면을 그리듯 자세히 글로 묘사한다.

읽다 보면 주인공의 방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그런데,

제목이 왜 「핸드폰을 든 채로 죽으면 안 돼」일까.




「두 갈래로 나뉘는 길」의 주인공은

'나'의 개는 아니지만 함께 살고 있는 개, '볼보'가

강아지말 번역기를 통해 전한

"집. 고의. 탈출. 토니. 구하라. 생명"라는 말을 따라

'토니'를 찾아 나선다.

 


 

독특했다.

 

소설은

작가의 이야기를 하는 듯한 내용들로

에세이와 소설 그 어디쯤에 있는 듯하고,

 

"「갱들의 어머니」라는 소설을 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산문을 쓰는 것과 소설을 쓰는 것이 다르고

소설을 쓰는 것과 시를 쓰는 것이 다른 것은 

인지상정." (p. 9)

 

반복되는 단어와 문장들이

마치 말장난 같은, 의식의 흐름 같은

실험적인? 문체로 쓰여있다.

 

"나나 우리의 엄마는

어머니라는 게 되리라고 생각해서 

어머니가 된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된 것이고

나나 우리가 엄마를 엄마로 만든 것이다.

내가 너의 어머니와 어머니를 공유하지만

나도 너의 어머니일 수도 있는 거야." (p. 11)

 

"이 머리는 내 머리, 

내 머리가 될 수도 있었던 머리,

머리는 머리카락이지만 머리카락은 머리가 아니다."

(p. 12)

 

『갱들의 어머니』

해설을 남긴 최가은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소설, 더 정확히는 어떤 '이야기'에 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며,

정작 그것의 내용은 들려주지 않으면서도

용케 이야기로 머무는 소설"(p. 131)인,

'소설 같지 않은 소설'이다.

 

명확하지 않은 이야기가 담긴 세 편의 소설은

마치 꿈을 옮겨 놓은 듯했다.

꿈을 꿀 때는 모르지만,

꿈에서 깨고 나면

말이 안 된다는 걸 깨닫는 그런 꿈.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오늘 기영을 만나고 돌아와서는 「갱들의 어머니」라는 소설을 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운명이다. 운명이라는 게 존재해서 운명을 믿는 게 아니라 운명이 찾아오기 때문에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운명이 찾아오더라도 운명이 운명이 아닐 운명이라면 운명이 아니다. - P14

나에 대해 좋게 말하는 사람이 있어도 하하, 좋네요, 기쁘네요, 그래요 등의 말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게 제일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나를 잘 아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과 함께 그럭저럭 관계 개선을 해나갈 수 있을 뿐이다. - P27

예감과 예상은 다르다. 파탄을 예감하더라도 예상하지 못하거나 예상하지 않으려고 들면, 예감은 예감에서 그칠 뿐이다. 예상은 한 치 앞을 엇나가지 않는다. - P28

사실 저는 이런 편견이나 저런 편견이 모두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일일이 신경 쓰다보면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편견과 마주했을 때의 충격이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오래된 편견과의 관계를 순탄하게 유지하는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는 다소 과격한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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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시 43분. 오후에는 어떤 영혼이든 교환 가능할지도 모른다. 빛이 좋으니까.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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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불투명해지면 또다시 걸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그 순간에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걷는 일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그 순간에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은 사람이 아닌 게 아닐까요. 사람이라면 결국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자꾸 걸어야 하는 거 같다고 말한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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